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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문수산의 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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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계법스님 작성일06-01-23 14:31 조회2,4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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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던 안경이 때로는
걸리적거리고 불편할 때가 있어 가끔 벗어놓곤 하는데, 하루는 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아 온 방안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잠시 다시 생각하며 얼굴을 만지는 순간 뭔가
손에 닿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세상에, 버젓이
끼고 있던 안경을 그렇게 찾아다녔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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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사람이
봄을 찾아서 온 산천을 돌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지쳐서 집에 돌아와서
뜰에 복숭아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하고는 ‘봄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내 집안에 있었구나.’ 하고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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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가 있는 문수산도
2월 중순이 되면 어머니 품같이 포근한 훈풍이 때때로 불어온다. 그러나
수은주가 봉화시내 보다 보통 5도 정도 더 내려가는 문수산의 겨울 추위는
더욱 매섭고 길다. 간혹 예리한 칼날 같은 눈바람이 불어올 때면 꽁꽁
얼어붙은 소나무 가지는 몸서리를 치고, 새벽에 예불하는 손발은 시리다
못해 찢어지듯 아파오며, 법당 처마 끝에 매달려 떨고 있는 풍경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토록 잔혹한 추위에
정녕 봄이 발 디딜 수 있을까 싶지만 어느새 언 땅이 슬슬 녹기 시작하는
3월 말이면 대지에서는 새싹이 살며시 머리를 내밀고, 마른 나뭇가지는
작은 봉우리가 하나 둘씩 맺히기 시작한다. 이윽고 4월에 이르면 다소곳이
봄꽃을 조심스레 피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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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봄이 오면 겨우내
어디 있다 나오는지 온갖 새들이 도량 여기저기를 돌며 신바람이 나서
야단법석이다. 그들의 환희에 찬 노랫소리는 밤낮으로 각양각색이다.
저녁에는 ‘솥 적다 솥 적다’ 하며 올해는 풍년이 드니 큰 솥을 준비하라
하고, 밤에는 ‘휘-ㄱ 휘-ㄱ’ 휘파람을 불며 야경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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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틀 무렵에는 ‘밥만
먹고 잠만 자고’ 하며 게으른 수행자를 경책하기도 하고, 때로는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며 마당 쓰는 행자를 미소 짓게 한다. 낮이면 ‘까-악
까-악’ 하며 염불로 다듬은 듯한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엉덩이에 노란 깃털이 달린 어린 놈은 즐거운 듯 ‘쪼아, 쪼아’
하며 나뭇가지 위에서 꽁지를 까딱거린다. 그렇게 작은 새 큰 새 할
것 없이 제각기 목청껏 노래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훈풍의 감미로움,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묘한 법음으로
들려온다. 모두가 멀리서 봄을 찾지 말고 자기 내면에 있는 봄소식을
찾아 집집마다 풍년이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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