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   종무행정   >   계간지   >   최근호및지난호

최근호및지난호

신심명(信心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무여 큰스님 작성일06-01-23 13:28 조회2,623회 댓글0건

본문


Investigation.jpg


7.
원동태허 무흠무여


圓同太虛
無欠無餘


8.
양유취사 소이불여


良由取捨
所以不如


9.
막축유연 물주공인


莫逐有緣
勿住空忍


10.
일종평회 민연자진


一種平壞
泯然自盡


11.
지동귀지 지갱미동


止動歸止
止更彌動


12.
유체양변 영지일종


唯滯兩邊
寧知一種


13.
일종불통 양처실공


一種不通
兩處失空


14.
견유몰유 종공배공


遣有沒有
從空背空



7.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어늘,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대도는 ‘둥글다’
하기도 하고, ‘허공과 같다’고도 합니다.


참으로 원융하고 장애가
없기 때문에 비유한 말입니다.


그리하여 묘도(妙道)라고도
합니다. 너무 묘하기 때문에 말로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도는 조금도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습니다. 그것은 깨쳐서 눈 밝은 사람이나 미혹한 중생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무상대도에 무엇이 남을 것이고 무엇이 모자랄
것이며, 무엇을 보탤 것이며 무엇을 들어낼 것입니까? 그것은 그대로
완전하고 무결합니다.


그런데 우치한 중생들이
자기 경계에 빠져서 모자라고 더함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중생이니
부처이니 구분하고 생사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8. 良由取捨하야 所以不如라.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지극한 도는 취하려
하고 버리려 하니 여여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여하다는 것은 같다는
말이며, 같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대로 진여(眞如)입니다.


이것은 물질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며, 남성도 아니요 여성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고 남음이 없지만 근본진리를
깨치지 못하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취사심 때문에 선과
악이 있고 극락과 지옥이 생기는 것입니다. 중생이 대도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이 취하고 버리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 莫逐有緣하고 勿住空忍하라.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유연(有緣)이란 인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일이란 뜻으로 세간법과 같은 의미입니다.‘공의 지혜(空忍)’란
모든 현상은 인연과 인과관계로 존재할 뿐 실체가 없이 공하고 적멸한
상태인 출세간 법을 뜻합니다.


세상의 일도 쫓아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가 다 병이기
때문입니다.있음에 머물면 이것도 병이고, 반대로 공함에 빠져도 이것도
역시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있음을 버리고
공함을 취하거나 공함을 버리고 있음을 취한다면 이것이 취사심이라는
것입니다.때문에 대도를 성취하려면 세간의 인연도 버리고, 출세간의
법도 버리고 있음과 없음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0. 一種平壞하면
泯然自盡이라.



가지를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일종’이란 구경의
경지를 말합니다. 일체의 선과 악, 있음과 없음, 좋고 나쁘다를 떠난
깨달음의 경지를 뜻합니다.


민연은 다 없어져서
아무 흔적도 없이 되는 것입니다.


일종을 바로 지니면,
즉 구경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면, 일체의 변견과 일체의 허망이 다 없어져서
항사묘용(恒沙妙用)이 원만하게 구족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본래면목입니다.


11. 止動歸止하면 止更彌動하나니,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움직임을 그쳐서
그침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움직이는 마음을 그쳐서 고요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움직이는 마음을 그쳐서 고요하게 하려면 고요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움직이게 됩니다.



마음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신경쓰지 말고 오직 정진만 해가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인다고 해서 마음을 누르려고 하면 움직이는 마음이 자꾸
일어납니다. 움직이는 마음이 일어나든 말든 의식하지 말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그대로 두고 일어날수록 지극하게 정진해가면 움직이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용해질 것입니다. 움직임을 버리고 고요함을 좋아하고
고요해지려고 하면 더 큰 움직임이 옵니다.



12. 唯滯兩邊이라
寧知一種가.


오직
양변에 머물러있거니


어찌
한가지임을 알 건가.


‘양변에 머물러 있으니
어찌 구경처인 본래면목을 알겠느냐?’ 하였습니다.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고요한 곳을 찾는다든가 지옥이 싫어서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란다든가,
생사가 싫어서 열반을 구하는 등 양변에 머물러 있으면 일종인 자성청정지(自性淸淨地)는
볼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마음을 닦는 사람은 절대 양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양변을 떠나야 구경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3. 一種不通하면
兩處失空이니,


일종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에
빠져 공덕을 잃으리니,


일종에 통하지 못하면,
즉 본래면목에 계합하지 못하면 양쪽 공덕, 움직임과 고요함의 공덕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14. 遣有沒有요
從空背空이라.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유(有)는 현상계의
존재를 말합니다. 무(無)나 공(空)이나 무위(無爲)의 반대를 뜻합니다.


현상계의 존재가 싫다고
해서 존재를 버리려고 하면 더욱 존재에 빠지고 맙니다. 존재를 버리려는
생각이 생겨서 존재를 더 의식하게 됩니다. 공이 좋다고 해서 공함을
쫓아가면 공함을 등지게 되고 맙니다. 공이란 본래 따라갈 수도 없고
따라갈 마음도 없어야 합니다. 공은 따라갈 마음을 낸다면 공과는 등지게
됩니다. 존재를 버리고 공을 따르려고 하지 말고, 반대로 공을 버리고서
현상을 따라가려고도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취사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취사심을 버려야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