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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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국자 (심자재·불교대학 … 작성일05-12-28 20:32 조회3,520회 댓글0건본문
새벽녘에 내린 비 때문에 뽀얀 물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르는 내성천의 이른 아침, 촉촉해지는 피부에 가슴으로 스며드는 시리도록 시원한 물안개를 마시며, 남편과 함께 떠나는 교양대학 5기 성지 순례길.
난생 처음 떠나는 순례길이기에 기대에 부풀어서인지 저녁엔 잠까지 설쳤다. 마치 초등학교 소풍날 저녁에 비 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잠 설치던 그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은 장마 기간이기에 더욱 더 그랬다.큰비가 오면 어쩌나? 교통편은 괜찮을까? 이 걱정 저 걱정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집을 나서는데 비는 그치고 안개까지 피어오르니, 이 어찌 부처님의 가호가 아니었으리……!
7시에 출발 예정이었는데 날씨 관계로 늦게 오신 분, 사정상 못 가시는 분 등을 점검하다 7시 30분에 우리 학생 36명은 부처님의 진리를 배우고자 양산에 있는 통도사로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걱정과 우려가 교차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일일 학감으로 가시는 혜산 스님의 구수하신 입담과 유머에 걱정은 사라지고 웃음이 번진다. 목탁 치며 염불하시는 위엄 있는 스님들은 다가서기 힘들고 언제나 두렵게만 느껴졌다. 진짜 스님들은 이에 고춧가루도 안 끼는 줄 알 정도였다. 그런데 인자하신 달마 대사 모습에 개구쟁이 동자승 모습까지 갖추시고 이야기를 하시는 혜산 스님에게선 인자함과 친숙함이 함께 배어나왔다.
준비한 자료를 차 안에서 미리 공부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우산 들고 자료 보고 하자면 정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통도사에는 마침 우리 축서사에서 공부하시던 혜창 스님이 계셨다. 오늘 우리를 안내해 주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 안에서 예불을 드리고 큰스님 녹음법문을 들으며 통도사에 도착하니 혜창 스님께서 저만치서 우산을 받쳐 들고 계셨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축서사를 드나들면서 낯이 익은 스님이셨다.
혜창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가 도착한 금강계단, 미리 공부를 하고 갔건만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럴 수가? 부처님이 계시질 않네?” 부처님 자리에 계셔야 할 부처님은 계시지 않고 큰 불단만 길게 놓여 있지 않은가? 작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부처님 대신 불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했다. 다른 법당보다 더욱 숙연함이 몰려왔다. 내게는 통도사의 바윗돌 마당의 흙까지 보물로 느껴졌다. 그야말로 보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아름다운 설화가 있는 구룡지에서 사진도 찍고, 혜창 스님의 특별 안내로 박물관이며 자장암도 가보았다. 어사화가 흐드러지게 핀 자장암은 말이 암자이지, 여느 작은 절의 대웅전 같았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이런 날씨에 감자전에 김치 당근 썰어넣고 곡차 한 잔 걸치는 세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이렇게 성스러운 순례길에 동참하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맙고 뜻깊은 일인가? 더구나 이 한여름 더운 계절에도 날씨 잘 맞춰서 시원한 빗방울 옷 젖지 않을 만큼 내려주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 사고 없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배우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절 입구 사천왕상이 무서워 들어설 땐 눈을 감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줄달음치던 나, 쥐 죽은 듯 고요한 법당과 흘러퍼지는 향내가 그리 무섭던 내가 이제는 찬불가와 불교대학에 심취하면서 법당을 들어서면 우선 향내음을 즐기게 되었다. 그 향기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푸근해짐을 느낀다. 이제 진정 불자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피에 깊이 감사드리며 머리 숙여 합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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