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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수행, 삶의 과정에서 기울이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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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원성 (경북 봉화) 작성일05-12-28 20:31 조회3,3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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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절에서 기도하며 몇 달을 지낼 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이었어요. 기도하러 법당에 갔는데, 같이 절에 머물던 어느 보살님이 좌복 위에 엎드려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습니다. 왠지 마음이 짠해서 조용히 법당문을 닫아주고 나왔습니다. 저녁공양 준비를 하던 공양주 보살님에게 말했습니다.


“서보살님이 요즘 힘든가 봐. 법당에서 우는 것 같대. 뭐 맛있는 거라도 해줄까?” “내버려 둬, 다 자기 업이지 뭐.” 하긴 그 말이 맞았습니다. 그 보살님은 인품이 좋은 사람은 못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 뭔가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그 자신의 업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업의 엄정함은 제게는 언제나 풀 길 없는 숙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 불행, 실패 등에 대해 여지없이 들이대어지는 ‘네가 지은 죄업의 과보’라는 잣대가, 비록 어길 수 없는 실상의 법칙이긴 하지만 우리네 삶에는 때로 너무 차가운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아픔을 껴안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자비심이 우선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간절하게 참회기도를 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업이고 무엇이고 간에 다 접어두고, 정말로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못 살았으니 결과가 엉망인 건 당연한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습니다. 업이라는 때로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론을 끌어들이기 전에 아주 단순한 산술적 논리로 생각해 보았을 때 삶은 오로지 자기 책임이라는 말이 그렇게 절절히 가슴에 와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험공부를 안 하고 놀았으면 시험성적이 엉망인 것, 야단맞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몸이나 마음이 병든 사람들, 고통을 겪거나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처해 있었던 이들도 분명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좋지 않은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입맛에 당긴다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고, 술과 담배를 절제하지 못하고, 불규칙한 생활 속에 빠져 있곤 합니다.


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괴로워하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남을 배려하거나 사랑할 줄 모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며, 자기 삶이나 일, 책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쉽게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고 쉽게 불평불만을 합니다.


그렇게 10년 20년을 살면서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과 건강을 바라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진실한 노력’, ‘올바른 노력’을 우리들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기울였는지요. 적어도 서른이 넘었다면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를 점검하고 되돌아보며 ‘삶의 자기책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삶을 바꾸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자기 관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부처님께 가서 빌어본들 무슨 효험이 있겠는지요. 자기 삶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하면서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는 것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요. 수행은 삶의 과정 속에서 기울이는 노력의 총합이지, 다리 포개고 앉아서 호흡의 숫자를 세는 기술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부끄러움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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