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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부처님 믿는 마음은 곧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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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미자 (충남 천안) 작성일05-12-28 20:29 조회3,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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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라는 중년의 나이에 잘 쓸 줄도 모르는 글을 쓰게 되어 지나간 일들을 곰곰이 되돌아 보았습니다. 아직도 제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는 아픔이 보이는 듯합니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고통스러운 일이 내 일로 닥쳐오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에 나는 목 놓아 울었습니다.


5년 전 가을,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 나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남동생과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나를 잘 아는 남편이 평생 나를 보호해 주며 의지처가 되어줄 줄 알았는데, 남편이 그 믿음을 깨뜨리자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증오심은 너무나 컸습니다.


친정에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서러웠습니다. 늘 딸을 안쓰럽게 여기시는 친정 어머니가 아시면 그대로 돌아가실 것 같아 조바심하며 가슴만 치고 있었습니다. 대신 시댁 식구들이 나서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 조강지처보다 나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라며 남편을 달래고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도 남편에게 내 잘못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며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전보다 더 잘해주며 갖은 애를 다 썼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정말 혼자 감당하기 너무도 힘들고 벅찬 일이었습니다. 한달 여 동안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물만 겨우 넘기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원망하며 지내다 보니 몸은 대꼬챙이처럼 말라갔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말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때 큰애는 고1이었고, 작은아들은 중2로 한창 사춘기였습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생각하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나까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내가 살 이유가 없을 것 같아 몸과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방황하지 않고 스스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처님께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의 힘든 고비에서 피어오른 한 생각으로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절에는 초하루, 보름 때만 겨우 가는 불자여서 신심은 돈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부처님 믿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지, 왠지 부처님께 매달리면 힘든 마음이 덜어질 것 같았습니다.


절 인연도 따로 있나 봅니다. 다니던 큰 절을 뒤로 하고 동서가 있는 절을 찾았습니다. 그때 동서는 작은 절에서 공양주를 맡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작은 절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늑해 보여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받아줄 듯 보였습니다. 동서의 소개로 주지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내가 겪은 힘든 이야기는 동서가 이미 해서 다 알고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시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는 기도를 해보세요.”


나는 남편만 돌아온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고 더욱 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절을 하기만 하면 눈물이 솟구쳐서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법당에서 큰 소리로 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열심히 기도를 했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깊어가는 원망에 기도도 잘 되지 않고 마음은 답답해졌습니다. 어느 날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제가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 걸까요? 남편은 도대체 왜 제게 이렇게 몹쓸 짓을 하는 걸까요?”


“모두 보살님께서 지으신 업보 때문입니다. 보살님께 일어나는 일들은 어느 생에선가 보살님으로부터 원인이 있어 이 생에 과보를 받는 이치, 즉 인과응보에 따른 것입니다. 보살님의 업장이 두터워 이렇게 일이 터진 다음에야 후회하는 것이니, 남편 탓을 하지 마시고 오직 내 잘못이라고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시며 마음만 닦고 또 닦으세요.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자신을 낮추고 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대할 수 있도록 마음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나서야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을 인과응보로서 받아들이니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는 마음이 들었고, 모든 것이 허망하고 부질없는 집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으로 남편에게 매달렸던 것을 그냥 놓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편안해지고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그때부터 스님의 말씀대로 내 자신이 닦아 나가야 할 부분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나의 남은 삶을 위해 필요한 수행이었습니다.


그전에 나는 남들에게 별로 베풀지 못했고, 자신의 처지를 가리기 위한 자존심이 대단해 남에게는 거만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잘 웃지 않고 딱딱한 얼굴 표정은 사람을 가까이 다가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타인을 긍정적으로 보고 칭찬해 주는 일에도 인색했습니다. 가끔은 진실하지 못한 마음도 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실 난 속마음은 여리고 정에 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좋지 않은 겉모습으로 살았는지…. 아마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열등감에 파묻혀 현명하지 못하게 살았던 때문인가 봅니다. 세세생생 쌓아온 두터운 업 때문에 밝음을 보지 못하고, 더구나 자신의 마음을 닦을 줄 몰랐기에 어리석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나 자신의 못난 점들을 깨달아가며 참회하고 기도하는 수행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엄마가 방황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니까 아이들의 마음도 안정되어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시 1년 뒤에 큰딸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특차로 들어갔고, 아들아이는 사춘기를 잘 넘겨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 부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 생활에서 참모습을 찾아가고 있을 때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자신의 아픔만 보지 말고 더 넓게 주위를 돌아보시면 좋겠네요.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는 참다운 불자가 되셔야 합니다. 보살님께서는 상담공부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어요?”


“나 자신도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는 것이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요?”


누가 비웃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좁은 소견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이만큼 설 수 있게 해주신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서울로 상담 공부를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 공부는 또한 나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불교연합회 중앙본부에서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가정폭력, 성폭력, 이혼예방, 청소년 문제에 대한 상담과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교육을 받으며 그간 몰랐던 다른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 부분은 내 이야기만 같아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 공부 또한 길은 아직 멀기만 합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열심히 해서 부처님께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가꾸어 다른 이들에게 회향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법 인연 맺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늘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며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항복받고자 자신을 추스릅니다.


불교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닦아 행복해지고, 이웃이 행복해지고, 나아가 사회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종교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얼굴에 편안함이 나타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불어 편해집니다. 마치 향 하나를 피우면 방안 전체에 향내가 서서히 퍼져가듯 좋은 기운은 주위에 퍼져나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늘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부처님!


진정으로 하심하여


누구에게든 부처님을 대하듯 하게 하옵소서.


하심했다는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진정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아픈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가 했다는 마음이


나지 않게 하옵소서.



이 글은 [현대불교신문]에 실린 신행수기를 인용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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