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제(解題) -
신심명은 중국 선종의
제3조인 승찬(僧瓚) 대사께서 지은 글입니다.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일체의
선법을 기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도를 공부하는 기초가 되고, 믿음으로
부처의 눈을 뜰 수 있으며, 믿음으로 불법의 큰 바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떠한 공덕도 이룰 수 없으며, 어떠한 선법(善法)도
기를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고인은 “세상 사람은 쌀이 양식이지만
수도자는 믿음이 양식이다”고 하였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굶어 죽듯이
믿음이 없으면 수도를 할 수 없습니다.
신심명에서 신심(信心)이란
돈독하고 투철한 믿음을 일컫습니다. 믿음도 보통의 믿음이 아니라 불법이나
수도에 대하여 온전히 믿음이 결정되어 조금도 의심치 않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발심할 때부터 마지막 성불할 때까지 가져야 하는 믿음입니다.
명(銘)은 잠(箴)과
같은 뜻으로 마음 속에 깊이 새기어 둘만한 것을 일컫습니다. 신심명은
도의 본원이며 진여법계에 사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인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글입니다.
신심명은 사언절구(四言節句)로
해서 146구 584자로 설한 운문체(韻文體)로 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조사선의 핵심을 운문의 세계로 나타낸 것이 특징으로 8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1천7백공안의 격외도리 전체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심명은
옛 어른들이 ‘선지(禪旨)를 표현한 문자 중에서 최고의 문자이다’라고
칭찬해 온 것으로, 참동계(參同契), 보경삼매(寶鏡三昧), 증도가(證道歌)
등과 함께 옛부터 선승들에게 널리 애송되어 온 심오한 글로서 선종
발전과 교단 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소의경전(所依經典)입니다.
1.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지극한 도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깨달음의 경지를 일컫는
말로써 구경의 진리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 多羅三貌三菩提)를
말합니다.대도는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옛 어른은 ‘성불하는 것은
아주 쉽고도 쉽다’ 하였습니다. 흔히 견성(見性)하는 것은, ‘세수하면서
코 만지기 보다도 쉽다’ ‘손바닥 뒤집기 보다도 쉽다’고도 합니다.
어떤 선사는 ‘무릎 아래를 바로 보아라, 그 자리가 바로 부처
자리다’ 하면서 세상에 쉬운 일이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어떤 도인은 깨치고
나서 사흘이나 엉엉 우시더랍니다. 왜 우시느냐고 물으니, ‘깨치고
나니 너무 좋아 울음이 나오고, 눈만 바로 뜨면 부처 아닌 것 없는데
그렇게 고생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괴로워서 운다’고 하더랍니다.
눈을 바로 뜨고 바로
볼 줄 알면 그 자리가 깨침의 세계요, 삼라만상(森羅萬像)과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꽃은 꽃대로 진리를 보여주고, 새들은 노래하고
짐승들은 춤추면서 무상의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려운가?
오직 간택하기 때문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좋다, 싫다, 이익된다, 손해된다, 이것은 해야겠다, 저것은 안해야겠다는
간택심을 가지고 분별하기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도의 문에
들어가려면 간택심을 버려야 합니다. 위대한 도는 간택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중에 들어오고자 하면서 간택하는 마음을
없애지 못하면 설령 애쓴다 해도 한갓 수고로울 뿐입니다.
2.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툭 트이어 명백하리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없으면 대도는 훤하게 트여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애증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작가는, ‘일생은 애증의 세월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고, 무엇은 사랑하고, 무엇은
미워하며 괴롭게 삽니다. 심지어 참선자도 부처님은 좋아하고 마구니는
미워하고, 세법은 싫어하고 불법은 좋아하는 증애심을 끊임없이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마음은 늘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이 증애심만 버리면
어둡고 캄캄하던 것이 툭 트여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도를 성취하기를 바라거든 취하고
버리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간택심 중에서도 증애심이
가장 문제가 됩니다. 중생이 극복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 증애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증애심만 버리면 무상대도는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이상의 네 귀절이 「신심명」의
골자입니다.옛날에 낭야각(瑯邪覺) 선사에게 한 재상이 여쭈었습니다.
“「신심명」은 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지극한 보배입니다. 이 글에 대하여 자세히 주(註)를
내려주십시오.”낭야 선사가 답하기를,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이 첫 귀절만 큼지막하게 쓰고, 나머지 뒷구절은 모두 조그마하게
써서 주해로 붙여 버렸습니다.
「신심명」의 근본
뜻은 네 귀절에 있으므로 나머지 귀절은 주해 또는 사족과 같다는 것입니다.
후세 사람들은 낭야 스님의 답장을 「신심명」의 명 주해라 하여 극찬을
하였다고 합니다.그러므로 「신심명」을 바로 알려면 간택심을 갖지
말아야 하고, 간택심 중에서도 증애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이 증애심만
버리면 구경각(究境覺)은 저절로 성취될 것입니다.
3.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이라는
뜻은, 간택심을 버리고 증애심을 버려야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을 조금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도 벌어진다는 것입니다.한
생각이 털끝만큼 들려져도 대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어집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멀어집니다.
본분 상에서는 어떤
생각도 망상이며, 망상을 없애려고 하는 것도 망상이며, 부처가 되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도 망상이라, 그리하여 입만 벙긋해도 십만
팔천리나 멀어집니다.간택심과 증애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추호도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4.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대도로 나아가려면
따름(順)과 거스림(逆)을 버리라는 것입니다.순과 역은 상대법으로서,
순은 순조롭고, 즐겁고, 도리에 맞는 것을 뜻하며, 역은 이와 반대로
모순되고 거슬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순과 역은 표현은 다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는 것은 간사한
분별이나 이기적인 정식(情識)같은 일체의 상대적인 모든 중생심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지극한 도를 얻으려면 역과 순의 마음을 내어서는 꿈에도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볼 수 없습니다.
5.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니,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수행자의 마음에는
어떤 다툼이나 갈등도 없어야 합니다.수행자는 마음에 맞느니 안 맞느니,
좋으니 나쁘니, 있느니 없느니, 크니 작으니 일체의 시비곡절이 없어야
합니다. 심지어 참선자 중에서 어떤 화두는 좋고 어떤 화두는 나쁘다는
분별심을 내기도 합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시비를 하고 분별심을 내면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비나 분별심은
‘나’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 나라는 생각마저도 버려야 합니다.근본당처(根本當處)에는
본래 아무 생각도 없는데 망상을 일으키고 시비를 하여 마음 가운데
위순을 두는 것이 큰 병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약에 따르고 거스름이
털끝만큼이라도 일면 사해의 물을 다 마셔 버리고 수미산을 부수는 능력이
있다 해도 결국에는 그 재주와 능력이 오히려 병통이 되어 생사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수행자가 어긋난다 맞는다 하며 다투어서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면 부끄러운 일 중의 부끄러운
일입니다.
6. 不識玄旨하고 徒勞念靜이로다.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사람들은 참으로 지극한
뜻은 모르고 공연히 마음만 고요히 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참선자들은
대도를 성취하려면 ‘누구나 가만히 앉아서 고요히 생각해야지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닦아도 바르게 닦아야 합니다.
근원적 조치를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을 가장 어지럽게 하는 간택심과
증애심과 역순심을 버려야 합니다.이런 마음을 버려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쉽게 안정이 되고 궁극에는 대도를 성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적인
마음은 철저히 버리고 쉬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저절로 드러나듯 무상대도는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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