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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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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한순 작성일06-01-23 12:02 조회3,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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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할머니는 85세인데
40여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난 후 자식도 없이 혼자서 살아 오셨다.
외출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이웃과의 잡담도 즐기지 않으신 터라 집 안에서만
지내셨는데 쇼핑하시는것 조차 오래 전에 그만 두시고 기본적인 식료품만
일주일 단위로 배달을 시키신다.


육체적인 활동이라는
것이 주치의의 권유로 거실 끝에서 현관문까지 스물다섯 발자국을 지팡이를
짚고 왕복 열 번을 왔다 갔다 하시는 운동이 유일 하다. 그나마 숫자를
헤아리다가 잘 잊으신다면서 아주 열중을 하신다. 안락 의자에 앉아서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시다가도 오후 4시에 맞추어 놓은 알람 시계가
울기만 하면 어김없이 일어나셔서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그 걷기
운동을 하신다. 그 정도에도 숨이 차는 할머니는 심장이 약한 것 외에는
특별히 편찮으신데는 없으셨다.


양로원이나 병원에도
가시지 않고 집에서 끝까지 혼자서 살다가 돌아 가시겠다는 할머니를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 해 왔다. 그 방문은 남편
M씨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작했던거라고 한다. 그
때부터 어린 조카손자인 그에게 매주마다 1실링(12센트 정도)짜리 동전
한개를 용돈으로 주셨는데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어도 할머니가 주시는
용돈은 결코 1파운드(2달러 정도)짜리 지폐로 인상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1960년 초의 화폐개혁 이 후로는 용돈이 1실링짜리의 동전에서
50센트짜리 동전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한다.


마침내 그 50센트에서
1불로 인상돤 계기가 생겼는데 그것은 새 조카손자 며느리가 그들의
정기적인 방문에 끼어 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40이 다 된 조카손자의
용돈이 인상 되어서 주 1불(약 700원 정도)이 되었고 이제 조카손자
며느리가 50센트(약 350원 정도)를 물려 받게 되었다. 그래서 매주 알리스
할머니의 식탁 위에는 1불짜리 금동전 하나와 50전짜리 은동전 하나가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하루 세끼의 식사를
라디오가 알려 주는 시간에 맞추어서 빠짐없이 잘 챙겨 드시는데, 할머니가
드실 음식은 미리 조리가 되어서 냉장고와 냉동실에 일주일 단위로 채워
진다. 매일 그 날의 요일이 씌여진 통을 꺼내서 데워 드시기만 하도록
준비된 것인데 스프를 꺼내서 냄비에 넣고 데우시다가 새카맣게 태우시기도
한다. 그러면 2층에 위치한 할머니 집의 부엌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그 냄비를 휙하니 내던져 버리시곤 한다.


가끔은 그 아랫 마당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화단을 돌보는 관리인 아저씨의 등에 명중되기도 한다.
이 관리인 아저씨는 집안에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을 자주 창밖으로 내버리시는
6호실 할머니의 최근 습관을 아는지라 더러 타다남은 냄비를 주어서
깨끗이 솔질한 후에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 드리곤 한다.(그 관리인 아저씨가
이야기 넷에 나오는 ‘어느 죽음’의 주인공인 린드씨다.)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이
없어져가는 할머니는 창문밖의 세상에는 더 이상 관심도 없다. 라디오의
시간마저도 더 이상 좇아 가지 못하는 할머니는 탁상 시계를 늘 들었다
놓았다 하시면서 시계바늘을 하루에 몇 번이고 마음대로 돌려 놓으신다.
당신 스스로 돌려 놓은 시간에 맞추어서 식사를 하시다 보니 하루가
네끼 식사로 끝나는 날이 있지만 한끼 식사로 끝나는 날도 늘어 갔다.


wyong2.jpg


사십년이
넘게 매주
알리스 할머니를 방문하는
조카 손자 마이클
씨와 함께


밤인가 싶어서
창 밖을 보면 낮이고, 낮인가 싶어서 보면 밤이기도 했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할머니는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신다.


‘몇 시냐?’
‘새벽 2시인데요’ 그리고는 ‘찰칵’. 다른 말씀도 없이 우리만 깨워
놓고 전화를 끊으신다. 심할 때는 하루에 열 번쯤 거신다. ‘헬로?’
‘난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그리고 ‘찰칵’. 어쩌면 우리가 할머니만
이 지구상에 남겨 놓고 사라졌을까봐 우리가 살고 있는 주소 확인을
하시기도 한다. ‘거기 주소에 내 조카가 살고 있느냐?’ ‘물론이죠,
할머니’ 또 ‘찰칵’.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보니 이제 할머니는 탁상 시계를 아예 끌어안고 사신다. 시계는
잘 돌아가고 있지만 한번도 시간이 맞은 적은 없다. 냉장고에 지나간
날짜의 음식이 쌓이기 시작할 무렵,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주치의께서
마침내 할머니가 기능적으로 더 이상 하루 일과를 스스로 돌보실 수가
없게 되었다는 판정을 내리셨다. 그래서 의사와 우리의 설득으로 가까스로
할머니를 너싱홈으로 옮기게 되었다.


wyong1.jpg


조카손자의
쌍둥이 아기를
안아 보는 알리스 할머니의
행복한 한 때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S 너싱홈에는 대부분 스스로 거동하기 힘든 노인분들을 함께 입실시켜서
돌보아 주고 있다. 우리의 정기적인 방문은 이젠 6호 아파트가 아니라
너싱홈이 되었다.


저녁 식사가 5시이고
취침시간이 6시인 그곳에 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가도 항상 7시쯤은 된다.
알리스 할머니가 계신 방에는 침대가 다섯 개 놓여져 있는데 그
중 창가에 자리한 할머니에게 다가 가려면 발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른 할머니들의 침대를 지나야 한다. 천장에 달린 불은 이미 소등이
되어 있었지만 침대 머리맡에 있는 리딩 램프가 켜져 있는 곳도 있다.


알리스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허공을 바라보고 계시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램프불을
켜고 내 결혼시계 가져 왔느냐고 물으신다.


그 시계는 결혼때 할아버지가
주신 것 이라고 하는데 이미 수 십년 전에 잃어버린 것이건만 요즘 갑자기
생각해 내시고는 그것을 찾아 달라고 방문 때마다 부탁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궁리 끝에 그 시계와 비슷한 것을 사 가지고 와서 다행히 찾아왔노라면서
손목에 채워 드렸다. 걱정과 불안으로 찡그려져 있던 할머니의 얼굴이
아기처럼 환하게 펴진다. 그 때 갑자기, 건너편 침대에 누워 계시던
G할머니의 거친 목소리가 어둠 속을 가른다.


G할머니 - 간호원!
여기 내 램프불 안 켜 줄거야?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할머니의 가녀린 목소리가 이어 진다.


V할머니 - 간호원!
내 틀니 좀 갖다 주세요.


알리스 할머니가 어둠
속에서도 시계만을 골똘히 생각하셨던 것처럼 G할머니는 램프를 생각하고
계셨고 V할머니는 틀니만 생각하고 계신 듯 했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외침에도 밖에선 아무 응답이 없다. G할머니는 목청높여 다시 시도 해
보신다.


G할머니 - 거기 아무도
없어? 불 좀 켜 달란 말이야.


V할머니 - 내 틀니가
없어졌다구요.


G할머니 - 거기 정말로
아무도 없는거야?


V할머니 - 여기 내가
있는데요?


G할머니 - 나도 알아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V할머니 - ..........간호원!
내 틀니가 어디에 있지요?


G할머니 - 그렇게 해선
안 된다구, 나처럼 소리를 크게 질러 보라구.


V할머니 - (조금 큰
목소리로) 제발 내 틀니 좀 갖다 주세요.


G할머니 - 흥, 아무리
소리 질러 봐라. 누가 오나!


듣다 못한 나는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간호원을 찾았다. 할머니 두 분이 램프와 틀니를
찾고 있다고 했더니 걱정말라고 한다. 취침 시간만 되면 같은 할머니들이
같은 소동을 벌이시곤 하는데 V할머니에게 가서는 침대 머리맡 설합장위의
소독통에 담겨 있는 틀니를 다시 보여도 드리고, G할머니에게는 이미
켜져 있는 램프를 다시 꺼드림으로써 안심시켜 드리곤 하는데 금새 또
잊으신다고 한다.


늘 저러다가
잠이 드실거니까 걱정 말고 가란다. 다시 그 방으로 돌아오니 틀니가
없어서 내일 아침 식사는 어떻게 먹나 하는 V할머니의 중얼거림은 어느
새 졸음 속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G할머니의 분노에 찬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수면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알리스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끌어당기시며
이번 주에는 1실링을 주지 못해 빚을 졌다고 하시면서 귀를 가까이 가져
오라는 시늉을 하신다. 할머니의 현실은 화폐 개혁 이전으로 건너가
버린 모양이다.


wyong3.jpg


너싱홈의
간식시간 ,부축을 받아서
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함께
앉아서
차와 비스켔을
나누어 드시는 즐거운 모습


알리스 할머니 - (소근거리며)
저 G할망구가 들을지 모르니까 조심해서 들어.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안한
비밀인데 부자가 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단다. 부자가 되려면 말이다,
돈이 생기면 쓰지 않고 자꾸자꾸 모으기만 하면 된단다. 그렇게 열심히
모으다 보면 죽을 때쯤 되어서는 아주 큰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알아 듣겠니? 빚대신 얘기 해 주는 비밀이니까 누구에게도 얘기해서는
안 된다.


대단히 고맙다고 말씀
드리고 램프불을 끈다. ...........굳나잇, 알리스 할머니.........
.


처음에 그 곳에
갔을 때에는 미망에 빠져 있는 할머니들이 불쌍했다. 그런데 방문이
거듭 될 수록 그 곳의 할머니들은 어떤 중간 세계 같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흐르는 공기처럼 자신들을 내맡기고
있는 그 곳은 다음 세계로 가는 길목이 아닌가 한다. 악도 없고
선도 없는 그 길목에서 육신의 명이 다하는 순간을 순순히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을 어찌 불쌍타고 할 것인가. 더 잘나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애착에 몸부림치는 헛된 몸짓들이 차라리
더 불쌍한 것이 아니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지나가야 할 아지랭이 같은 길목들. 그 길목으로 다가서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 어머니도 계신다.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도 홀로
아파트에 사는 독거 노인이시다. 당신 스스로 거동하실 수 있는 날까지
거기서 거주 하시다가 가시는 것이 소원이시다. 지난 번 방문때 보니
어머니의 침실 벽에는 이렇게 씌여 져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천년 자리 만년 자리


내 치수에 맞는 자리


팔 보살이 닦은 자리


황금으로 뿌린 자리


내 일신이 갈 적에는


좋은 날 좋은 시에


자는 잠에 인도 하소.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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