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내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 인터넷으로
퍼진 13세 이라크 소녀의 호소-
이라크 출신 13세 소녀의
평화를 위한 외침이 인터넷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커닝햄 중학교에
다니는 이라크 출신 샬롯 앨더브런(Charlotte Aldebron)양은 3월초 미국내
반전집회에서 “여러분은 내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참석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이후 전세계 반전시위 피켓에는
샬롯양의 호소가 굵은 글씨로 쓰여졌다.
한편 샬롯양의 호소는
‘What About the Iraqi Children?’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청소년
대상 진보 주간지 WireTap 인터넷판(wiretapmag.org) 3월 3일자에 게재됐다.
다음은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샬롯양의 연설문 번역본이다.
“여러분은 내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군복을 입은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나, 총을
들고 있는 검은 콧수염을 기른 군인들이나, 알라시드 호텔 바닥에 ‘범죄자’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걸 아세요?
이라크에 살고 있는 2400만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걸.
이라크에는 1천200만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저와 같은 아이들이요. 저는 열
세살이니까, 어떤 아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을 수도 있고, 저보다
훨씬 어릴 수도 있고, 남자 아이일 수도 있고, 저처럼 붉은 머리가 아니라
갈색 머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아이들은 바로 저와 너무나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입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리 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제가 운이 좋다면 1991년 2월 16일 바그다드의
공습 대피소에 숨어 있다가 여러분이 떨어뜨린 ‘스마트’ 폭탄에 살해당한
300 명의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그날 공습으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았고, 벽에 몰려 있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형체도 없이
타버렸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더미에 붙어
있는 시커먼 살조각을 떼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없다면
바로 이 순간 바그다드의 어린이 병원의 ‘죽음의 병실’ 에 있는 열
네 살의 알리 파이잘처럼 천천히 죽게 될 겁니다. 알리는 걸프전에서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 때문에 악성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어쩌면 저는 18개월
된 무스타파처럼 ‘모래파리’라는 기생충이 장기를 갉아 먹는 병에
걸려서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그저 고통스럽게 죽어갈 겁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무스타파는 단돈 25달러밖에 안되는 약만 있으면 완전히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라크에
취한 경제봉쇄 때문에 이라크에는 약이 없습니다.
아니면 저는 죽는 대신
살만 모하메드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외상을 안고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살만은 1991년 여러분이 이라크를 폭격했을 때 여동생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만의 아버지는 온 가족을 한 방에서 함께 자게 했습니다.
모두 다 살든가, 아니면
같이 죽고 싶어서 살만은 아직도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악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저는 걸프전이
벌어졌던 세 살 때 여러분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알리처럼, 고아가 될
겁니다. 알리는 3년 동안 매일같이 아버지 무덤에 덮힌 먼지를 쓸어내리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빠, 이제 괜찮아요.
이제 여기서 나오세요. 아빠를 여기에 가둔 사람들은 다 가버렸어요”라고.
하지만 알리는 틀렸어요.
아버지를 가둔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이니까요.
아니면 전 걸프전이
벌어져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밤을 샐 수 있었다고 좋아했던
루아이 마예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루아이는 지금 학교에 갈 수 없어서 길에서 신문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여러분의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조카나 이웃집 아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들이 사지가 절단되어서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아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도 없고 편안하게 해줄 수도 없이 그냥 무기력하기만 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딸이 무너진
건물의 돌더미에 깔려서 울부짖고 있는데,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아이들이 자기 눈 앞에서 여러분이 죽는 걸 보고 나서,
굶주린 채로 혼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액션 영화도 아니고,
공상 영화도 아니고, 비디오 게임도 아닙니다. 바로 이라크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입니다.
최근에 한 국제 조사단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라크를 방문했습니다. 조사단이 만나 본 아이들 중
절반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전쟁이 뭔지 알고 있고 전쟁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짜리
아셈에게 전쟁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셈은 전쟁이 “총과 폭탄에 날씨는
춥거나 덥고, 우리가 불에 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열 살 먹은 아에사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을 거예요. 당신이 TV에서 아이들이 죽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때리거나 욕을 하지 말고, 대신에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한 행동 때문에 자신이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제 기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그게 ‘나’라고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에 사는 모든
아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다른 아이들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그 모든 결과 때문에 고통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를 때 두렵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거나 다치게 하거나 미래를 훔치려 할 때 화가 납니다. 우리는
내일도 엄마와 아빠가 살아 있기만을 바랄 때 슬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때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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