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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부처님과 성도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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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세 작성일06-01-23 11:35 조회3,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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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 초8일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날이어서 이 날을 성도일 또는 성도절이라고 합니다.
전국 유명 사찰에서는 이 날을 맞아 기념 법회를 열어 성도를 봉축하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부처님과
성도절에 대한 글의 마지막입니다.


부처님은 오랜 옛날
성불하신 부처님으로서 과거에 500생의 수행을 거듭 성취하시고 하늘나라
도솔천 내원궁에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대사명(大使命)을 수행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범천과 제석천왕 및 천인(天人)들과 평의한 다음 장차
태어나실 나라를 엄선하여 고른 곳이 인도 카필라국으로 정(定)하시고
부모를 정하니 아버지는 정반왕이고 어머니는 대청정 마야부인의 몸을
빌어 4월 8일 룸비니 동산에서 탄신하셨습니다. 19세에 야소다라 부인과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를 낳으시고 29세 때 2월 8일 자시(子時)에 출가하시어
6년간의 각고의 수행으로 부처님이 되시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부귀영화인데 화려한 영화와 임금의 자리마저 버리시고
오직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하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는 누구나 숙명적으로 겪어야 하는데 이대로 살다가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생을 마치는데 부처님이 이 사고를 해결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육체를 6년 동안 하루에 마맥(麻麥) 몇 알로 연명하시며 구도(求道)의
수행으로서 증득한 성도는 대사일번(大死一番)의 고비를 넘겨야 불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수도의 교훈이니 이러한 수도로서
영원한 생명 즉 유한(有限)한 인생의 무한한 대우주의 진리와 만유의
실상을 몸소 체험하시고 너희들도 이와 같이 수도를 하면 성불 할 수
있다고 본보기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도는 인간의
근본적인 인생고의 해결에서부터 생사의 무상에서 벗어나 영원한 이상향(理想鄕)에
도달한 것이며 고(苦)의 세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상락아정(常樂我淨)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과정이
일대사 인연으로 이 땅에 오신 계시오입(啓示悟入)의 가르침입니다.


12월 8일 성도를 하시니
너무나 환희하여 그대로 열반에 들까 하였습니다.


그 기간을 법열기(法悅期)라하며
범천의 세 번의 권청으로 설교를 하시니 처음 녹야원의 5비구입니다.
내가 붓다가 된 것은 생사의 윤회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함 이였는데
내가 법을 일러주지 아니하면 중생들은 영원히 생사고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니 교화하기로 하신 마음이 대자대비심입니다. 참으로 위대하시고
고마운 부처님입니다. 초전법륜에서 나는 이미 태자가 아니라 여래(如來)이다.
여래는 진리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우주만법의 근원(根源)인
진리를 깨쳐서 대도를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으니 너희들도 삼독심을
버리고 수행을 하여 나의 뒤를 따르라고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를
고구(苦口) 정녕히 설교하신 것이 초전법륜이며 이때부터 교조(敎祖)이신
붓다 즉 불보(佛寶)와 교리이신 법보와 5비구로서 승보(僧寶)를 갖추는
교단이 성립되니 비로소 석가모니불을 교조로 모시는 불교가 성립되었습니다.


부처님이 큰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는데 그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깨달았는가 하면
반야심경에 삼세제불이 고지반야로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였으니
즉 반야 지혜를 얻어서 부처님이 되시었다는 뜻이니 반야 지혜는 어떠한
지혜인가? 반야는 만법의 이치(理致)를 원만하게 깨달아서 일체지(一切智)를
아는 지혜이며 최고 최상의 일체종지의 지혜입니다. 부처님이 부다가야
핍파라수 밑에 금강보좌에 결가부좌를 하시고 겹겹이 쌓였던 84,000의
번뇌와 생로병사의 고통이 구름처럼 걷히어 심안(心眼)이 확연히 열리고
드디어 무상정등각을 얻어 대오각성 하시어 붓다가 되시니 이는 실(實)로
인류역사상 가장 뜻있는 성도요, 일대사 인연이었습니다.


부처님이 12월 8일
동쪽하늘에 새벽 별을 보시고 성도하시었는데 우리는 항상 보는 샛별을
보고도 왜 못 깨닫는가? 무엇인가 어디가 다른 것이었습니다. 동천에
어떤 이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샛별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것이란 혹, 업, 고(惑業苦)의 삼장(三障)이 무너지고
추혹 세혹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에서 성성(惺惺)한 적조(寂照)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을 무렵 홀연히 동천에 뜬 샛별과 청정한 법안이 마주칠
때 모든 회의의 번뇌 망상이 살아지고 우주의 대생명을 확철(廓徹)히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석가세존의 밝으신
눈에 비추어진 우주 삼라만상의 대생명 이것을 성도라 합니다.


이리하여 성취한 불성은
불생불멸이며 불구부정이며 거래와 명상이 끊어졌으며 시간과 공간이
초월된 청정무구한 진여법성입니다. 이 성도는 석가세존께서 대원경지의
묘법을 증득하였으며 일체종지를 확철 대오하신 것이니 우주의 본체가
되는 진여법성에 부합귀일(符合歸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불할
수 있는 청정자연한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번뇌 망상과 삼독심에
가로막혀 자성에서 멀리 떨어진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전도와 몽상을
실체로 알고 상락아정을 거꾸로 보아 참된 자성을 발견하지 못하여 영겁(永劫)의
생사고륜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를 못한다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결심으로
분발심을 일으켜 용맹정진과 불휴(不休) 불퇴전의 수행으로 신행을 하여야
합니다.


부처님이 이와 같은
영겁의 생명을 얻기 위하여 6년의 수도를 하였는데 우리는 몇 년간을
어떠한 방법으로 수도를 하여야 성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청정한 본연(本然)의 자성(自性)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 본성(本性)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헛된 꿈과 생각을 본체로 잘못 알고
상락아정을 전도몽상으로 보아 참된 진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영겁토록
생사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되겠다는
굳은 결심과 분발심을 일으켜 용맹정진의 실천수행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인간들은 무엇을 가진 것이 그렇게
소중하여 애착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성도의 문이 훤히 보이건만 가장
적은 소원만 찾고 큰 용단을 내리지 못하여 성도를 못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뜻 깊은 위대한 성도일을 맞이하였어도 무슨 날인지 뜻도 모르고
있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얼마나 잘 되고자 맹목적인 소원만을
빌고자 절에 다니고 있으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바랍니까,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들 얼마나 얻고자 합니까? 얻어서 이루어진들 영구하도록
가집니까. 무상한 그것을 어디에 얼마나 쓰고자 그렇게 힘들게 간절히
찾고 바랍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내 것입니까, 내 것인들 갈 때
가지고 갑니까, 쓰다가 버리고 가면 그만인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은 업장만 가지고 갑니다.


무거운 업장 소멸하고
몸 가볍게 가는 길은 참선 공부가 제일입니다. 다음해 성도일에는 부처님이
보시던 샛별을 보고 우리도 확철 대오각성하여 생사고해를 벗어나고
영원한 큰 생명을 얻어 열반 해탈을 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결심이 성도일을
맞이하는 불자들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끝으로 부처님의 성도지
부다가야를 가봅시다. 인도 부다가야에 있는 대보리사에는 대탑이 성도지를
기념하여 우뚝 솟아 있습니다. 무력으로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많은
사찰과 탑을 세워 30만명의 전상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참회하여 많은
불사를 하였습니다. 3세기경에 사각사면의 높이 52m의 대탑을 세워 성도지를
영구히 기념하고자 세운 탑이다. 한때는 힌두교 사원으로 바뀌었다가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인하여 모래와 숲으로 묻혀 있었는데 1881년에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부다가야라는 지명은
부처님이 가야(伽倻)에서 성도를 하여 붓다가 되었으니 부다가야라는
지명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핍파라수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으니
깨달음은 보리(菩提)이니 나무이름을 보리수라 부릅니다. 이 자리에서
정각을 이루시니 이 자리를 금강보좌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는
1886년에 폭풍우로 없어졌는데 아쇼카왕의 딸 상가밋다 비구니가 스리랑카로
전도를 떠날 때 가지고 가서 심은 보리수의 묘목(苗木)을 다시 인도로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니 지금의 보리수는 그 당시 보리수의 손자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탑 안에는 조그마한 법당에 항마성도 모습의 불상이
모셔져 있고 탑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반석이 있어 참배객들의 예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자리에
대사찰이 세워질 것이라 예상하여 봅니다. 인도정부에서는 계획이 없으니
어느 나라가 세울 것이라 예상하여 봅니다. 탄생지 룸비니 동산에는
네팔과 우리나라에서 절을 지었으니 부다가야에도 세워질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힘을 모아 대사찰을 이곳에 건립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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