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영웅 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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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한순 작성일06-01-23 13:20 조회3,089회 댓글0건본문
지난 해 가을 어느날 밤, 나는 전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나를 큰
박스에 넣어 차에 태우더니 어디엔가 내려놓고는 가버리고 말았다. 내 울음 소리를 듣고 온 길가의 농장 주인이 불쌍한 나를 언덕위의 집으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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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꼬꼬가 버려졌던 곳 농장 주인은
꼬꼬를
저 언덕위의 집 앞뜰로 데려갔다
꽉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와 보니 열 댓 마리의 거위들이 빙
둘러서서 박스속에서 무엇이 나오나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는 농장의 분위기나 거위들의 실력은 알아볼 필요도 없이 대뜸 그들을 공격부터 했다.
상황을 파악해 볼 기회를 주지않고 선제 공격을 하는 것이 상대방들의 기를 죽이는 비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사정없이 덤비는 나를 보고 거위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가 버렸다.
나를 주워온 농장의 주인 여자도 얼이 빠진 채 바라보고 있길래 내친 김에 나의 위용을 보여주고자 나비처럼 날아가서 벌처럼 그녀의 다리를 쪼아
버렸다. 그녀는 피가 흐르는 다리를 감싸쥐고 황망히 달아나다가 그만 물이 고인 웅덩이 근처에서 미끄러지면서 거위 무리들이 질펀하게 싸 놓은
분뇨밭에 나뒹구는 불운까지 당하고 말았다.
오후에는 주인집의 쌍둥이 여자아이 둘이 우르르 나를 보러 나왔다. 나와 친해
보려고 먹이 한 깡통을 들고와서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번개처럼 점프를 해서 한 아이의 코를 쪼아버렸다. 아이들은 먹이 깡통을 집어 던지고
도망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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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고 있는 쿠쿠
곁에서
보초를 서는 꽉꽉이(오른쪽)
내 이름은 보이 꼬꼬, 꽤 늠름하고 잘 생긴 수탉인데 벼슬이 아주 크고
붉다. 몸통은 흰색인데 크기가 보통 닭의 두배만 해서 웬만한 거위들보다도 더 푸짐해 보인다고 한다.농장의 주인 남자는 고목같이 굵고 거친 내
다리를 보고 늙은 꼬꼬라고 부르고 주인 여자는 나를 조폭 꼬꼬라고 부른다.
나의 첫 인사가 좀 난폭했던지 내 주위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아서 넓고 넓은
뒷마당이 더욱 더 크고 적막했다. 그래서 그 고요한 정적을 깨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아무때고 “꼬끼요-오”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
소리야말로 내가 이 농장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농장이 내게 속해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심심해서 울타리 한 켠으로 쫓겨난 거위들 옆으로 뒤뚱거리며 가 보았더니 풀을
뜯고 있던 무리들 중 한 마리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작고 아담한 몸집에 새파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쿠쿠였다.
쿠쿠 곁으로 다가서니 웬 못생긴 거위 하나가 무리들의 호의를 받으면서 내게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 놈은 무리들의 왕자인 꽉꽉이었고 쿠쿠는 그의 여자친구였다. 나는 단박에 꽉꽉이라는 놈을 올라타고 숨통을 조아서 그
일당들까지 일시에 항복을 시키고 예쁜 쿠쿠를 차지했다. 나는 더 이상 혈혈 단신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따뜻한 햇빛을 받고 쿠쿠옆에서 졸고 있는데 난데없이 꽉꽉이라는
놈과 그 일당이 동시에 나를 기습했다. 나는 잠결에 꼼짝없이 포위를 당해서 물리고 뜯기고 차이는 폭행을 당했다. 참으로 비겁한
반란이었다.
졸지에 나는 쿠쿠를 빼앗기고 뒷마당까지 내주고 말았다. 뒷마당 한구석으로
몰려난 나는 재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한꺼번에 덤비는 무리들에게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꽉꽉이와 일대일이라면 자신이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내
사랑 쿠쿠를 되찾을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구월이 시작되니 암컷 거위들이 알을 낳느라고 둥지 만들 자리를 물색하고
다녔다. 야산으로 이어진 뒷마당은 안전하지 못하다면서 주인이 울타리 구멍을 만들어 암컷들이 마음대로 들락거리면서 마음에 드는 곳에 둥지를 만들게
했다. 그 틈에 나도 그 구멍으로 앞마당에 나왔다. 주인들이 사용하는 베란다에 올라가 보니 마당보다 높아서 내 체질에
맞았다.
나는 높은 자리가 좋았다. 게다가 내가 더욱 좋아했던 것은 베란다에 벗어놓은
주인 가족들의 신발이었다. 그 중에서도 굽이 높은 폭신한 가죽 신발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밤에 잘 때는 그 신발을 깔고
잤다.
그런데 아침에 나온 주인 여자가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빗자루를 들고
뛰어나왔다. 내가 깔고 앉아서 밤새도록 푸짐하게 싸 놓은 분뇨덩어리의 신발이 하필이면 그 여자의 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도망가는 척 하다가 그
여자가 들어가 버리면 또 그 신발 위에 앉았다. 아무래도 병아리 시절 때 신발과 내가 무슨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리타분한 신발에서 고향
냄새가 나서 마음이 편해졌다.
주인여자와 내가 그 잘난 신발 한 켤레를 두고 몇 주 동안 으르렁거리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내 사랑 쿠쿠도 무리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둥지를 만들었다. 그 옆에는 꽉꽉이가 혼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이제 그
일당들은 더이상 떼거지로 몰려 다니지 않았다. 암컷들도 저마다 둥지를 틀고 앉았고 수컷들도 모두 각각의 여자 친구 곁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게 기회가 왔으므로 창문 밑에 자리잡은 쿠쿠옆에서 꼼짝앉고 있는
꽉꽉이를 기습하여 얼굴과 목 그리고 몸 등을 가릴 것 없이 쪼아버렸다. 그도 있는 힘을 다해서 꽉꽉거리며 대항을 했지만 결국은 쿠쿠의 둥지 십리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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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를 차지한 후 꼬꼬는
가끔 쿠쿠의 등에
올라서서
쿠쿠가 자기것임을 주위에
알렸다
드디어 나는 내 사랑 쿠쿠를 다시 찾았다. 쿠쿠가 내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알을 품고 있는 쿠쿠의 푹신한 등 위에 올라가서 “꼬끼요-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운 내 소리에 창 밖을 내다보던 주인 여자의 눈이 순간적으로 나와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는 금새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너 이놈 어찌 감히 산모 등 위에 올라가 있는 거냐, 꼼짝말고 기다려라!”하고
사라지더니 예의 그 빗자루를 들고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나를 못살게 구는 저 여자는 좌우간 내가 편한 꼴을 못 보는 모양이었다. 그 여자의
신발은 건드리지도 않았고 내 여자 친구를 내 마음대로 하는데도 저 난리이다.
그 이후에도 나는 더러 쿠쿠의 등 위에 올라 서있곤 했는데 그녀는 싫어도
어쩔수 없이 나의 보호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그녀가 기지개를 켜기 위해 일어나서 날개를 쫙 펼칠 때 보니 둥지
안에 알이 여섯 개가 있었다. 여덟 개나 되었던 알 중에서 두 개는 품기도 전에 잃어버렸는데 이 농장에 사는 험상궂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축구를
한답시고 두 개나 훔쳐가서 이리저리 차며 놀다가 깨버리고만 사건이 있었다.
남아있는 알들을 부화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품고있는 그녀가 대견해 보였다.
그래서 밤이 와도 나는 쿠쿠 옆에 붙어서 잤다. 아침에 쌍둥이 아이들이 지나가다가 “참 별꼴이네, 자기가 무슨 거위 아빠인줄 아나 봐.” 하면서
놀렸다. 이런 내 모습을 꽉꽉이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내 체면과 위엄이 땅에 떨어지고 만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그 날은 봄의 기운으로 햇빛이 유난히 따사로워서 좀 덥다고까지 생각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괴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몸통은 악어같이 거칠게 생겼지만 도마뱀 과에 속하는 그 놈은 길이가 꼬리까지 1.6
미터(수컷은 2미터 이상도 있음)나 넘는 ‘모니터’(monitor)라고 했다.
그 괴물이 사방을 휘저으며 다가오니까 쿠쿠가 소리를 지르며 둥지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 순간 모니터란 놈이 둥지속의 알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쿠쿠는 물러서서 두려움에 질린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는 너무 놀라서 얼어 붙은
채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쿠쿠의 우는 소리를 듣고 뛰어온 꽉꽉이가 그 괴물을 위협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 괴물이 돌연히 고개를 돌려서 꽉꽉이의 날개 죽지를 덥썩 물어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보다 목청이 더 큰 꽉꽉이의 비명소리로 온
농장이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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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 둥지속을 휩쓸고 있는
모니터 이미 다섯
개를 삼키고
마지막 한 개를 먹기 시작이다
이 어수선한 울음소리를 들은 주인 남자와 아이들이 쫓아 왔을 때는 그 괴물이
이미 마지막 여섯 개째의 알을 통째로 꿀꺽 삼키는 중이었다. 사납고 거친 발톱과 통닭 한 마리쯤은 거뜬히 집어 삼킬 만큼의 큰 입이 무서워서
아이들은 다른 거위들과 함께 소리만 지르고 키 큰 주인 남자가 겨우 그 놈의 꼬리를 잡았지만 어찌해야 될지는 역시 감당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아니 너는 벌써 겨울 잠에서 깨어났냐? 거위들이 알을 다 부화시킬 때까지
너를 어쩔까나? 잠시 냉장고에 넣어둘까? 그러면 추워서 한달은 더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주인 남자의 말은 들었지만
그놈의 괴물이 자던 잠을 다시 잔다 해도 쿠쿠의 알은 되찾지 못할 것이다.
울고있던 쿠쿠가 엉망으로 헤집어진 둥지를 뒤적이며 알을 찾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계속 쿠쿠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근처를 뒤적이다가 오래된 화분 뒤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린 하얀 골프공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주둥이로 굴려서 둥지에 밀어 넣고는 품고 앉았다. 충격 때문에 쿠쿠가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영원히 부화되지 않을
골프공을 깔고 앉아있는 쿠쿠가 불쌍해서 닭똥 같은, 아니 내 분뇨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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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라고 있는 주인남자가
겨우꼬리를
잡았지만 어찌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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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의 꼬리를 잡고 있는 주인 남자와
쌍뚱이
아이들 오리들도 지켜보고있다.]
일그러진 내 모습이 쿠쿠보다 더 참담하게 느껴져서 그 자리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기고 만장하지 않았던들 이토록 무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 놈의 괴물 때문에 나는 꽉꽉이에게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날개 죽지가 부러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용감한 꽉꽉이에게 쿠쿠의 옆자리를 내주고 나는 베란다로 돌아와서 주인 여자의 신발을 다시
깔고 앉았다. 내일 아침이면 그 여자가 또 빗자루를 들고 뛰어나와서 이번에는 잡아먹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우울한 분위기에서 그 여자 신발 냄새를 맡으니 어머니 꼬꼬가 더욱
그립다. 문득 옛날에 할머니 꼬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잘못은 다 제 자신이 만든다.”고 말이다.
그래서 전생을 알고 싶으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되고, 또한 내생을 알고
싶으면 역시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보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전 주인에게서 쫓겨났던 업과 지금 왕따를 당하고 있는 과보는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일까.
옮긴이: 빗자루들고 쫓아나오던 주인 여자
손한순님은 호주의 시드니의 북쪽에 있는 와이용(Wyong)이라는
시골에서 남편과 어린 쌍둥이 자매와 함께 행복한 전원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금붕어 양식장을 경영하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금붕어보살이라
불리어진다는데, 바쁜 일과 속에서 꾸준히 정진하며 생활속의 불교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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