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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마음의 결제, 그리고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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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미희 (현대불교신문 기자) 작성일06-01-23 17:55 조회2,4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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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 한 켠에 놓인
의자 위에 바구니 부케가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비닐로 포장된 그 바구니
안에는 갖가지 과일과 비스듬히 기울여진 와인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결혼 1주년을 기념하며 강릉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도반들이 그 여행길에 가져가라며 알뜰하게 준비해 준 것이었다. 신혼여행
때는 ‘쑥스럽다’는 이유로 마다했던 바구니 부케를 이때에는 거절하지
못했다. 우리 부부의 결혼을 가족의 일처럼 함께 해주었던 도반들의
마음을 두 번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명한 비닐로 포장된
그 바구니를 보며 내일이면 떠날 여행이며, 벌써 일년이 지나버린 그
동안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법 늦은 시각에 울린 전화벨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서울에 살고 계신 시어머니였다.
늦은 밤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전한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시아버님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은 갑작스런 서울행으로 없었던 일이 돼 버렸고 그 바구니
부케는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때부터 매 주말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아버님의 치료를 이어나갔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고 온 가족의 애를
태웠다.


아버님의 갑작스런
병환은 온 가족의 리듬을 일순간에 흔들어버렸다. 매주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전 두 차례만 허용되는 중환자실 면회를 거듭하여도 아버님은
갖가지 장비를 달고 누워만 계실 뿐 대답이 없으셨다. 그러나 나는 짧은
면회 동안, 반야심경과 스님의 법문을 이어폰으로 들려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의식이 없는 것은 외형적인 현상일 뿐 분명 그 법문을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서.


꼬박 21일이 지나서야
아버님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리고 중환자실, 중중환자실, 일반실로
옮기며 조금씩 호전되어 갔다. 목에 끼워진 호스로 겨우 유동식을 드시던
아버님이 죽을 드시기 시작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밥을 드시기 시작했을 때와 휠체어에 몸을 똑바로 세워 앉게
되었을 때의 기분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매 주말 아버님과
함께 병실에서 보내며 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걷고 말하고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일임을 알아가고
있었다.


퇴원 후, 아버님의
한방 치료를 위해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모두가 부산의 우리 집으로
내려오게 됐다.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서 아버님
간호에 매달려야 했던 도련님과 어머님은 그 동안 살던 서울을 등지고
낯선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그런 가족들을 향해
난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수련대회에
간다고 생각하세요. 원래 수련대회 가면 평소보다 훨씬 힘든 일정을
보내잖아요. 그렇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면은 강해지고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잖아요!”


부산으로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 있던 시댁 가족들이 억센 부산 사투리가 묻어나는
황당하고 씩씩한 나의 선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부산 집에서 다섯 가족의 수련대회가 시작되었고, 때론 함께 울고
때론 함께 웃으며 아버님은 걷는 연습을 할 정도로 건강을 찾아갔다.
수련대회 동안 어머님과 나는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곤 했다. 몇
달 간의 부산 생활을 끝낼 무렵에는 아버님의 병환을 통해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음을 말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 간의 수련대회는 아름답게 회향됐다.


결혼 1주년 기념 여행이
그렇게 무산된 이후 벌써 결혼 4주년을 맞았지만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나면 나는 부산의 특산물인 싱싱한 생선을 사들고
즐거이 시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차를 달리며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궁 속을 걸어가고
있는 나의 현재를.


바구니 부케를 앞에
두고 강릉 바다를 상상하며 부풀어 있던 나는, 바로 직후에 들려올 아버님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어디 그뿐이랴. 깊고 깊은 경남의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도 나는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얼음 위를 껑충거리며
뛰어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제 어떤 일이 내 앞에 닥쳐도 그 일이 결코 침범하거나 흔들
수 없는 뿌리인 내 근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님 병환이
온 가족의 수련대회가 되었듯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어떤 일도 나를
성숙시킬 내 공부의 재료이고, 우리 가족의 마음공부를 이끌어 줄 스승이
되리란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인도 사람이 쓴 어떤
책에 보면 ‘이 지구는 학교이며 나는 이 지구라는 학교에 못다 푼 숙제를
완성하기 위해 온 학생’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지구라는 큰 학교에
떨어진 나는 도대체 무슨 숙제를 더 해야 하고 뭘 더 배워야 하는 것일까?


난 알고 싶다. 내가
이 지구에 사람 몸을 받고 온 까닭을. 그것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내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사를 건 선지식들의 수행처럼
치열하진 못하다 해도 나는 일상의 크고 작은 경계 앞에서 마음의 수련대회,
마음의 결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 생각이 일어날 때가 결제이고
그 한 생각이 스러질 때가 내 마음의 해제가 되도록, 그래서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을 반복하는 나의 전생애가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부단한 결제가 될 수 있기를 발원한다. 그래서 생사윤회의
긴 꿈에서 깨어 광대무변한 우주 속으로 스미는 진정한 해제를 맞이할
수 있기를. 꼭 그렇게 되기를…….


모든 스승님들과 도반,
그리고 나의 주인공에게 감사와 사랑의 삼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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