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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백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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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l 이매림ㆍ 삽화 l 정동… 작성일06-01-23 15:21 조회3,0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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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또 백일기도를 시작한다. 오늘이 입재. 내년 3월 초순 내 생일이 회향일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렇게 일정을 잡았다. 작년 기도는 절실하고 절박했던
마음에서 출발했다면 올해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고행도 벗어나면 그리움으로
남듯이 작년 나의 삶이란 얼마나 곤고困苦했던가. 애년艾年을 눈앞에
두고야 삶이 만만찮다고 실감하며 부처님 전에 오체투지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중생인가.


그러나 이제는 지난날을
신산했던 날들로만 반추하지 않으니 어찌 부처님의 위력을 의심하리.
삶이란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들을 하나씩 깨치고 가는 길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 분명 그것은 사실이었다.


큰애의 중학교 입학식
날부터 나에게는 불행과 줄긋기를 하는 단어들이 앞을 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회사부도, 채무자, 채권자, 실직, 해약, 담보… 설상가상이라는
단어까지 합세하여 협공해 올 줄이야.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시어른마저
퇴직금 전액을 바람에 날리고, 당신들이 거처할 곳으로 우리의 눈치를
살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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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통과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했고 그 절망은 그대로 큰애에게로 전이되어 갔다.
자연히 녀석의 학교생활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시어른·남편·아이.
이들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면서도, 내 삶의 뿌리를 흔드는 사람들이었다.
끝없이 밖으로 향해 쏘아대던 원망의 화살이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로
되돌아옴을 느꼈다. 결국은 내 욕심 때문인 것을.


자생력 없이 수동적으로
살아온 내 삶이 문제였다. 결코 나의 어머니는 이런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셨는데, ‘나는 왜 이러한가?’ 하는 자괴심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이십여 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는 나에게는 관음보살이었다. 모두가 어려웠던 지난 시절.
그래도 어머니는 그 시절의 어려움을 굳이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셨다.
열두 폭 치마 폭으로 사남매를 이리저리 감싸면서 넉넉하게 우리를 키워주셨던
어머니. 이제사 간절히 어머니가 그리워지니, 나 또한 어머니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 허방을
짚고 울며불며 어머니를 부른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어머니시니
어디 계신들 막내딸의 소리를 듣지 못하시랴.


“아가, 울지 말고
부처님 품에 안기어라. 거기 길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새벽예불로 아침을
열고 관음정근으로 하루를 마감하며 평생을 신심에 의지하셨던 어머니.
스님 대하기를 부처님 친견하듯이 행하셨던 어머니. 알음알이만을 좇는
우리들의 신심을 향해 “무조건 믿어라. 기도의 끝은 있다. 기도의 끝은
분명히 있다”를 강조하셨던 어머니.


이런 어머니의 신심을
맹신이라고 비웃었던 어리석음 때문에 내 삶이 이토록 피폐해진 것일까?
죄책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래, 엄마인들 삶이
어찌 버겁지 않았으랴. 기도의 끝은 있는 거야. 무조건 믿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나는 분연히 일어나 기도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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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관음암을 찾아가던
날은 10월 관음재일이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간간히 내리던 빗방울은
마당바위를 지나면서 눈발로 바뀌었다.


첫눈이다. 불혹의 고개를
넘은 지 오래이건만 첫눈이 내릴 적마다 나는 소녀가 된다. 서설瑞雪이리라.
만장봉을 바라보니 이미 백발의 부처님은 입정에 드셨고 사방은 극락세계이다.
관음암에도 백의관음이 시현하셨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은 조급해졌다.


눈길을 재촉하며 두어
시간 만에 관음암에 도착하니 등허리는 땀으로 흥건하다.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여기가 천상이
아닌가. 수많은 돌부처님은 백의관음이었고 간간히 울리는 풍경소리는
대웅전 처마 마루에 올라앉은 산까치와 화답을 나눈다.


눈사람이 되어 들어서는
나에게 주지스님께서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얼른 문을 열어 주신다.
녹차향 그윽한 아랫목에서 스님은 온화한 미소로 옛날 이야기 하듯이
법문을 설하신다.


‘영향상종影響相從’의
경구를 인용하며 신信은 실체요 행行은 메아리인 것을 어찌 나누어 생각하겠느냐며,
넌지시 나의 오만함에 변죽을 울리듯 하셨다. 덧붙여 종교를 거부하는
과학은 교만이요, 과학을 거부하는 종교는 미신이라며 행의 지극함과
기도의 성취에 대하여 여러 일화를 들려주셨다. 백일간의 관음기도를
하는데 일주일에 세 번은 부처님 전에, 나머지 날은 집에서 지극 정성으로
행한다면 주변에서부터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신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셨다.


오전에는 천수심경,
관세음보살 보문품경, 고왕경, 몽수경, 법성게,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백팔참회와 명상으로 하루의 기도를 끝맺으라고
하셨다.


결연한 각오를 하면서도
이 한 겨울, 도봉산에서 제일 높은 관음암을 일주일에 세 번 오르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몸 고달프다고
어찌 기도를 포기할 수 있으랴. 차라리 정신이 받는 고통을 몸이 대신할
수 있다면 어디인들 몸을 못 던질까 하는 처절한 오기가 치솟았다.


2


1996년 12월 8일에
시작한 백일 관음기도 입재일을 잊지 못한다. 근 한해를 폭음과 미혹에
빠져 무명 속을 헤매던 남편도 선뜻 동참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배반으로 되돌리는 인심을 향해 무수히 주먹질을 하다 지친 끝에, 운運을
바꾸어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정법을 멀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의 신심을 기리며 분연히 일어서는 나의 용기에 남편 또한
발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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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에
맞추어 부처님 전에 절을 하는데 무슨 연유인지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합장하고 고개 숙일 때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아만투성이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런 나를 묵묵히 내려다 보시는 부처님께
한없이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나는 친정어머니께 어리광 부리듯 부처님
옷자락에 매달려 간절히 발원했다. ‘부처님, 옛날 어머니가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도 제 가정의 바람막이가 되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신심을
닮게 해 주십시오.’라고.


화·목·일요일.
아침 8시 40분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열면 절망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도봉산 봉우리에는 희망이 떠오른다.


속살을 드러낸 산속으로
들어서면 다람쥐·청설모·까치·박새·까마귀가
저희들만의 대화로 한 세상을 열고 있다. 엿듣는 나 또한 절로 환희심이
차오른다. 천지에 불법이 닿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그야말로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임을 실감한다.


가빴던 숨결을 천축사
돌계단에서 잠시 고르고 사시예불 시간에 닿게 걸음을 서두른다. 염송·묵언·묵상…
저절로 기도의 기운이 온 몸에 스며든다. 얼음판에 미끄러지고, 더운
숨을 내쉬고, 등덜미에 땀이 차오를 때마다, ‘아! 내 몸이 지금의 내
삶과 같구나. 그래도 고개를 넘으면 부처님이 계시니까 해결해 주실
거야.’


얼음판을 딛고 일어서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아울러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하여 주변의
친지들에게 백일기도 중이라는 이야기를 흘렸다. 한결같이 나의 신행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건강을 염려해 주었다.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 여러 사람에게 공증을 세운 셈이었다.


하루하루 생활은 활력과
희망에 넘쳤고 절로 경전의 경구를 흥얼거렸다. 무기력한 남편, 눈치만
보는 큰애, 의기소침한 시어른. 모두를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신념까지
생겼다.


그러나 한껏 부풀었던
풍선이 순간 터지듯 보름 정도가 지나자 기도에 대한 회의가 밀어 닥쳤다.
흔히 말하는 마魔가 낀다는 것이었을까? 나는 서러웠다. 내가 이 한겨울
눈밭에 몸을 던져 기도를 하지만, 결국 지금의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을 마음 편하게 인정하기 위하여 기도를 하는
것일까? 변화없는 현실에 절망할 때 스님은 또 나를 닥달하실 게 분명하다.


“보살님, 신심이 부족해서
부처님 가피를 못 입은 거예요. 더 열심히 기도하셔요.” 이런 모범답안을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릇인가!


나는 눈물 범벅이 되어
따지듯 스님께 대들었다. 스님은 단호하게 나를 꾸짖었다.


“보살님. 지금 기도
다 끝내고 하는 소리요? 매일 <보문품경>은 왜 독송하는 거요?
보살님 같은 사람 때문에 경전에 시고수상념是故須常念하되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라는
구절이 있지 않소. 조금도 의심을 내지 마소. 끝까지 기도하고 나서
나에게 말하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는 주변을 위한 기도를
드리소. 열차는 혼자를 생각해서 만든 차가 아니라 여러사람을 태우기
위하여 만든 차이잖소.”


작은 내 그릇에 스님은
따가운 질책을 쏟아부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며칠간 스님을 대할
수가 없었다. 허나,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의심없는 신심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하루를 마감하며 드리는 기도는 마음을 한없이 평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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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꼬리 끝에 입춘이
고개를 내민다. 마른 나뭇가지는 소리없이 물을 올리기에 분주하고 양지녘에
서 있는 진달래 꽃봉오리는 젖살 오르듯 봉곳하다.


회향을 보름 남짓 앞두고
막연한 불안감이 또 나를 조여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또 어디에다 마음을 붙여야 하나’ 초조했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나
얼굴빛은 맑아졌다고 주변에서 입을 모았다.


그러나 스님은 나의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하루는 차나 한잔 하자면서 나를 잡았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스님은 나의 기도에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쑥스러운 마음과
함께 코끝이 시큰했다. 얼른 찻잔을 드는데 눈물이 먼저 손등에 떨어졌다.


스님은 회향의 의미를
간곡히 설하셨다. 마음은 입재 때와 같은 각오를 지니고, 모든 공덕은
부처님께 돌려야 한다며, 회향 3일 전부터는 매일 천 배씩 절을 하라고
하셨다.


시종여일始終如一이라는
글귀를 떠올리며 하산을 하는데 발걸음이 한층 가벼웠다.


3


1997년 3월 17일. 그
날은 백일관음기도 회향일이었고, 내 생일이기도 했다. 굳이 일정을
그렇게 잡지 않았는데 묘하게 날짜가 일치하니 스님은 좋은 징조라며
나를 마음 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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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많은 절을
한지라 몸은 젖은 솜 같았지만 마음은 새털같이 가벼웠다. 남편과 큰애도
정성스레 지고 온 공양물을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함께 회향을 했다. 무엇보다도
큰 기쁨은 내가 해내었다는 자신감이었고, 또한 어머니의 신심이 내
심전心田에 발아하고 있다는 환희심이었다.


법당을 나서며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마주한 우리의 눈에는 물기가
그득했다. “기도의 끝은 있다.”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은 진리였다.


지난 5월 1일. 남편은
건강한 생활인의 모습으로 첫 출근을 했다. 안정된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얻은 셈이다.


큰애 또한 물 만난
고기가 되었다. 10월 초, 체육특기생으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이미 배정을
받았고, 지금은 탄탄대로를 위하여 더욱 정진하고 있다. 단지 시어른만이
그대로일 뿐이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무슨 욕심을 가지랴.
그저 건강하게 지내시는 것만으로도 내 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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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있으랴.


오늘 백일관음기도를
다시 입재하며 간절하게 발원했다.


“해마다 입재 때 같은
마음으로 겨울기도를 행하게 해주십시오.”


불자의 수행십과


1. 신심견고(信心堅固)


불자는 삼보에 대한
믿음이 금강과 같이 견고하고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2. 조석예불(朝夕禮佛)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것은 불자의 도리이다.


3. 간경구법(看經求法)


불자는 경을 읽고 법을
깨달아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어야 한다.


4. 염불선정(念佛禪定)


부처님을 생각하고
마음을 밝히는 일은 수행의 근본이다. 불자는 염불과 참선으로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5. 참회발원(懺悔發願)


불자는 참회와 발원으로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6. 보시이타(布施利他)


불자는 항상 능력에
따라 베풀고 남을 이롭게 해야 한다.


7. 지계청정(持戒淸淨)


계율을 지켜 신구의
삼업을 깨끗이 하는 일은 불자의 몸가짐이다. 불자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청정한 지계생활을 해야 한다.


8. 인욕수순(忍辱隨順)


참고 수순하는 일은
화합의 바탕이 된다. 불자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참고
수순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9. 용맹정진(勇猛精進)


위와 같은 일상수행을
게을리하지 말고 쉼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수행자의 태도이다.


10. 전법도생(傳法度生)


바른 진리를 전해 주어
무명중생을 깨우치는 일은 제 보살의 한결같은 원력이다. 불자는 모름지기
언제 어디서나 전법도생을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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