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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불교와 인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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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1-23 15:53 조회2,9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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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1) 불자의 마음 자세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그 때
우리는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불·보살님의 가피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생을 두고 자신을 희생해온 공덕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들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 해도 모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지옥중생조차 모두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있고, 자신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부르면 모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서원도 있다.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중생을 위로하는
관세음보살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도 있다. 이러한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 하나하나는 스스로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에서 끝난다면 불교인이 세상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그러므로 바른 불교인은 불·보살님의 본원 가피력에 힘입어 스스로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듯이 중생구제의 큰 서원을 세워 일체중생에게
그 공덕을 회향해야 한다.


또 세상사람들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한다. 그러나 불교인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재난이나 환경이
모두 내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난을 당하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알고 깊이 참회해야 한다. 그
허물은 금생의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고난을 당해서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역경은 과거에 지은 잘못의 과보가 현재에
나타남으로서 소멸되는 것이니 잠복 중에 있던 나쁜 원인이 소멸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며 새로운 희망이 싹틀 전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불자는 고난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극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은 바 원인이 있어서
고난이 나타나는 것처럼, 희망은 오늘 새롭게 씨를 뿌림으로서 커 가는
것이므로 고난을 당해서도 새 희망을 일으키고 용맹정진하여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불자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운명 그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마음가짐은 보왕삼매론에 잘 나타나 있다.


2) 병자를 위하여(구병시식)


구병시식은 병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찰에서 행하는 일종의 재례의식이다. 시식이란 업력에
의하여 고통받는 영가(영혼)들에게 법식을 베풀어 천도하는 의식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우리 몸에
발생하는 병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는데, 하나는 음식이나 몸과
마음가짐을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고, 두번째는 과거에 저지른 온갖
악업의 결과가 현세의 질병이라는 과보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특히 누군가를
몹시 괴롭히거나 미워할 경우 그 업의 힘이 잠복해 있다가 현세에 자기
몸의 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몸이 병들었을 때 육체적인 원인을
찾아 물리적으로 다스리는 현대의학적 처방도 당장은 중요하지만, 자신의
업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주변의 모든 원한관계를 해소하고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 공덕으로 병고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구병시식은 육체와 정신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연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복덕을 지어 병고와 액운을
이겨내려는 데에 본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아난존자에 의해 비롯된
불교의 시식은 배고픈 귀신들을 법식을 통해 굶주림을 채우고 불법에
귀의하여 법문을 듣고 하루 속히 안락국에 태어나라는 천도의식이지,
귀신을 겁주어 쫓아내려는 굿과 같은 주술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만족시켜 원한의 마음을 풀게 하는데 있다.


구병시식의 절차 중
영혼에게 드리는 향화청가영(香花請歌詠)을 살펴보면,


빚진 사람 원수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치지 못해


지금 시식을 베풀어
법식을 제공하니


무릇 깨달아 원한을
푸소서


로 되어 있어 구병시식이
전생의 빚을 갚고 원한을 풀어 현재의 병고를 이겨내는 의식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불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시식, 특히 구병시식은
일반불자들이 행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다.


이웃과 더불어 - 자비의
실천


불자로서 실천해야할
신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수고이다. 일반적으로 불자의
수행이나 신행은 대부분 기도와 참선 또는 법회와 각종 의식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불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신행은 바로 이웃을 위한 헌신 즉, 이타행의 실천이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은 이타행을 수행으로 삼는다. 이타행이 곧 보살행인 것이다.
따라서 이타행의 실천 역시 불자의 중요한 수행인 것이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돕는 것, 병든 이웃을 돌보는 것, 외로운 이웃을 위로하는 것, 잘못된
길에 들어선 이웃을 인도하는 것, 작은 힘이라도 필요한 곳을 찾아 수고하는
것 등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도 많다. 이러한
실천의 현장을 찾아 헌신하는 것은 나 중심의 신행을 이웃을 향한 회향으로
전환시킨다. 보살의 구체적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이 바라밀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타행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자가 실천해야할 보살도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이를 위한 실천으로는
자원봉사 활동, 간병 활동, 각종 위문 활동과 기부 활동, 상·장례
부조활동, 장기 기증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러한 활동을
진행할 기관 역시 매우 다양하다. 가깝게는 자신이 다니는 재적 사찰의
여러 가지 일을 거드는 일에서부터 스님을 보좌하는 활동, 지역 사회의
여러 가지 시설과의 결연과 같은 지역 친화적 활동,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회 각 분야의 비정부기구(NGO)활동과의 연대까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른바 사회복지 활동이 실천의 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을 조직하거나 사회복지 기관에 참여 또는
후원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손 돕기 활동


① 복지시설 일손 돕기


② 공공기관 일손 돕기


③ 병원, 보건소, 요양원
등의 일손 돕기


④ 농어촌 일손 돕기


⑤ 학교 내 일손 돕기


2) 위문 활동


① 고아원 위문


② 장애인 위문


③ 집단 수용소 위문


④ 병약자 위문


⑤ 자매 부대 및 경찰
위문 활동


3) 지도 활동


① 학교 생활에서 지도


② 특기 지도


③ 사회 교육 지도


④ 교통·안전
지도


4) 각종 캠페인 활동


① 공공질서 확립 캠페인


② 교통·안전
캠페인


③ 학교 주변 정화,
청소년 보호 캠페인


④ 환경 보전 캠페인


⑤ 자연자원 절약운동
캠페인


5) 자선·구호
활동


① 재해 구호 활동


② 불우 이웃 돕기


③ 헌혈 및 신체의
일부를 기증하는 봉사 활동


④ 국제 협력 및 난민
구호


6) 환경·시설
보존 활동


① 깨끗한 환경 만들기


② 자연보호


③ 근검 절약 정신의
생활화 운동


④ 문화재 보호


7) 지역 사회 개발
활동


① 지역 실태 조사
활동


② 지역사회의 건전하고
아름다운 환경 가꾸기


③ 지역 홍보 활동


④ 지역 행사 지원
활동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사람을 육체로만 판단할
때 사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지수화풍(地水火風
= 흙·물·불·바람) 네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이
육체는 미혹한 중생의 마음 상태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인연이 다하여 육체는 없어진다고 해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미혹한 상태는 남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혹한 마음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깨달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또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미혹 상태에 집착하여 육체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어리석게도
미혹의 세상을 헤매이다 미혹된 몸을 받는다. 이것이 윤회(輪廻)다.
생전이냐 생후냐 하는 것은 오직 육체를 보느냐 못 보느냐의 차이뿐이다.


윤회하는 영혼(識)을
중유(中有 또는 中陰)라고 부르는데, 아직 다음 생을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의식은 바로 이
단계에서 행해진다.


1) 불교의 장례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을 시다림(尸陀林)이라고 한다. 원래 인도의 시타림(sita-vana)에서
유래한 말로, 시체를 버리는 추운 숲(寒林)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우리 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으로 뜻이 변했다. 시다림 법문은 신라 시대
이후로 관습화되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은 불교장례법으로
일반화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망자에게
〈무상게〉를 일러주고, 경전은 보통 『아미타경』, 『금강경』,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불을 부르며 발원한다.


불교의 전통적인 장례법은
화장이다. 이를 다비(茶毘)의식이라고도 한다. 유교 풍습의 여파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사대(육체)는 물질(흙,
물, 불, 바람)의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까지 육체에 집착하여 화장보다 매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다면 화장 후 납골을 수습해서 본처(본래
고향, 땅)로 흩어주고 절에 모셔서 천도재를 잘 지내드리면 좋을 것이다.
천도재를 올리고 난 다음에는 위패를 납골당에 모시든지 아니면 가까운
곳에 성스러운 가족탑을 세워서 모시는 것이 좋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병들어 아픈 사람도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 받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 피와 살을 모두 다 준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죽은 이후에 이 육신에 대해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것인가. 살아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데
나의 장기가 쓰여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불자들은 자신과 남이
더불어 사는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


2) 나와 남을 위한
공덕 - 재(齋)


재(齋)는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닦는 의식이다. 재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인
우포사다(uposadha)에서 유래되었는데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
대개 스님들에 대한 공양은 집안의 경사나 상사(喪事), 제사 때에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전환되었다. 『목련경』에는 공양을 받는
스님들의 숫자에 따라 오백승재의 명칭이 나오고, 중국에서는 양 무제가
사람의 숫자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로이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반승(飯僧)이라는 명칭으로
행해졌다.


원래 이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집행하고 공양에 임했으나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 되어 호국법회의 형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나중에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로 되었다. 요즈음은 스님들에 대한 공양부터 기도, 불공, 시식, 제사,
낙성, 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3) 천도재


자손이 조상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근본을 귀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천도재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를 지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었던 모든 업을 소멸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그 내용은 영가에게 〈무상게〉를
이러주어 죽음이라는 현실을 만물 변화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영가로 하여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라 원래의 청정한 마음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또한 영가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재에 참석하여 공덕을 짓는 이들에게도 생사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재의 공덕은 7분공덕이라고 하여
망자와 동시에 재를 올린 이에게도 공덕이 돌아간다.


재의 진행은 주로 도량장엄을
하고 시련, 대령, 관욕, 불공, 시식등으로 행해지며, 그 종류도 49재,
100일재, 기제(忌祭), 등의 정기적인 천도재와 수륙재, 필요에
따라 시설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 등이 있다. 정기적인 재의 경우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하여 매 7일마다 계속하여 49일 되는날까지의 7번과 100일재
등을 하는데, 이는 명부의 시왕(十王)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명부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의식을 행하는 절차에
따라 상주권공재(常住勸公齋), 각배재(各拜齋), 영산재(靈山齋) 등의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상주권공재이고 여기에 명부신앙의례를
첨가한 것이 각배재이며, 법화신앙을 가미한 것이 영산재이다. 절차는
시련(侍輦)에서 영가를 맞아들이고, 대령(對靈)에서는 영가를 간단히
대접하여 예배케한다. 관욕에서는 불보살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영가를
목욕시키고 신중작법으로 모든 신중을 맞아들인다. 상단권공에서 불단에
공양드리고 법식을 베풀어 받게 한다. 그리고 봉송편에서 불보살을 모시고
영가를 봉송하고 마치는데, 불자는 망자를 위한 기도로서 최소한 49재만이라도
지내야 할 것이다.


4) 수륙재


수륙재(水陸齋)란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이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사생육도(四生六道
; 四生 = 태·란·습·화, 六道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하자 지공 스님에게 부탁하여 수륙재를 행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2년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처음 시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고 견암사, 석왕사, 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이 수륙재는 많은 물자와
인원이 동원되는 행사로서 국행(國行)수륙대재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인
지원으로 진행되었다.


5) 영산재


영산재(靈山齋)란 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모습을 이 세상에 재현한
의식이다. 즉 온 세계 모든 성현들과 온 세계 스님들을 청하여 봉양하며
법문을 듣고 시방의 외로운 혼령들을 천도하고 무주고혼 영가들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먼저 도량을 장엄하는데
영산회상을 상징화하여 법당 밖에 괘불을 시설하고 의식 도중에 범패
등의 불교음악을 공양하여 장엄한다. 단의 구성은 법당과 같이 상단은
괘불 앞에 설치하고 향·차·꽃·과일·등불·쌀
등을 공양하고, 중단은 신중단으로, 하단은 그날의 영혼에게 제사 드리는
영단으로 구성한다.


절차는 49재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에서 시작하여 의식단 앞에 이르고 잠시 정좌한 다음 각단마다 권공예배와
축원을 하고 영단에 이르러 시식을 하고 회향하게 되는데 의식을 맡은
스님들을 선두로 참가한 대중이 도량을 돌면서 회향한다. 이 의식은
자작자수(自作自修)라는 수행과 기원, 회향, 추선공양이라고 하는 교리적
발전과 함께 발전된 의식이며, 우리 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또한 민간신앙까지 수용한 불교의식이자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재이기도
하다.


6) 예수재


예수재는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의식으로서, 속설에는 자신의 49재를
미리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49재는 순수하게 죽은
이를위한 재이나, 예수재는 살아 있는 이가 자신의 사후를 위해 미리
준비함으로써 살아서나 죽어서나 행복을 함께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례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참회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지계와 보시로서
스스로 내생의 복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여 해탈과 열반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것이며, 불보살님과 명부시왕을 비롯한 많은 성현들에게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다.


불보살님과 호법신중의
가피력 아래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의례인 예수재는 불교신앙의 전통을 대중과 함께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의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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