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육진불오 환동정각
六塵不惡
還同正覺
40.
지자무위 우인자박
知者無爲
愚人自縛
41.
법무이법 망자애착
法無異法
妄自愛着
42.
장심용심 기비대착
將心用心
豈非大錯
43.
미생적란 오무호오
米生寂亂
悟無好惡
44.
일체이변 양유짐작
一切二邊
良由斟酌
45.
몽환공화 하로파착
夢幻空華
何勞把捉
46.
득실시비 일시방각
得失是非
一時放却
39. 六塵을 不惡하면
還同正覺이라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진여대용인은 육진을미워하지
않으면 바로 정각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에 분별을 지으면 육진이고,
분별을 짓지 않으면 육신통(六神通)입니다. 육진을 버리고 정각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마치 동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육진을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40. 知者는 無爲어늘
愚人은 自縛이로다.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한 도는 그대로 원만구족하기
때문에 버릴래야 버릴 것이 없고 취할래야 취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취하고 버리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승자박하여 육도를 만행하며 온갖 고생을 하는 것은 이 취사심
때문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본래는 ‘함이
없다(本自無爲)’고 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것도 무위법에 떨어진 것이 됩니다. ‘함이 없다(無爲)’고
했지만 실제는 함이 없는 것을 찾아볼 수도 없고, 구경처를 깨쳐도 본래면목을
찾아볼 수 없는 구경에서 하는 말이지, ‘함이 없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41. 法無異法이어늘
妄自愛着하야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은 다른 법이 없습니다.
중생이 생각하고 집착할 법이 없는데 공연히 스스로 애착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이란
우리 마음자리를 말합니다. 지금 듣고 말하고 있으며, 중생도 부처도
아닌 마음자리가 법입니다. 온갖 법이 이 마음자리에서 나옵니다. 이
마음은 하나 뿐이지 둘이 아닙니다. 마음 밖에 무엇이 있다면 번뇌망상
뿐입니다.그런데 스스로 마음을 버리고(떠나서) 무엇을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일체의 분별과 애착심을 버려야 합니다.
42. 將心用心하니 豈非大錯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쓸데 없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 어찌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번뇌망상을 없애고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고요하게 하고자 하면서
생각을 일으키면 고요해질 수 없고,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면 수행이 될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공부에 간절한
생각이 들수록 공부가 되고 안 되는 데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말고 오직
애쓰고 애써야 공부가 됩니다. 성부해야겠다, 열반에 들고 싶다, 생사를
초탈해야겠다는 마음도 내지 말고, 오직 담담하게 애쓰고 애쓰길 바랍니다.
한 생각을 일으키면 곧 허물이 됩니다.
43. 米生寂亂이요 悟無好惡이니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미혹이란 마음이 흐린
것으로서 깨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흐리니 고요했다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성성했다가는 어둡기도 합니다.그리하여 좋다, 나쁘다 하는 취사심이
생기고 집착심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은 생사열반의 양쪽을 왔다 갔다
하게 됩니다.그러나 깨닫고 나면 좋다, 나쁘다의 구별이 없게 됩니다.
일체의 취사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진실로 깨달아서는
깨달음이란 없습니다. 깨달아서 깨달음이란 없는 곳에 무슨 고요함이
있을 것이며, 어려움이 있으며 좋고 싫은 것이 있겠는가. 이렇게 깨달은
것이 정법이니 그렇지 못하면 바른 깨달음이 아닙니다.
44. 一切二邊은 良由斟酌이로다.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변’은 양쪽이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두 견해, 즉 양변을 말합니다. 태어났다, 죽었다,
부처다, 중생이다, 밝다, 어둡다와 같은 두 가지 견해가 이변입니다.이
양변을 버려야만 일승인 대도로 갈 수 있습니다. 본래 법에는 양변이
없는데 전도된 생각으로 분별심을 내는 것을 짐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짐작인 취사심을 버리면 전체가 현전하여 대도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45. 夢幻空華를 何勞把捉가.
꿈
속의 허깨비와 헛 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공화는 눈을 비벼서
자극했을 때나 눈을 다쳤을 때 불꽃이 피고 꽃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은
일체의 변견을 말합니다.이 세상의 모두가 꿈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낮꿈을 꾸고 있고, 밤에는 밤꿈을 꿉니다. 금생에도 한 바탕 꿈을 꾸고
있고, 무수한 과거는 꿈의 연속입니다. 인생대사인 생사도 꿈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이 영원히 그대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환각에서 생겨난 것들이므로, 있는 것치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갓 꿈이요, 꼭두각시요, 허공의 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불하려는
것도,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도 모두 꿈이요 헛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생각과 불법이니 세간법이니 하는 것도
다 놓아야 하는데 왜 이를 잡으려고 애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46.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은
변견입니다. 이러한 양변을 버려야만 본래면목이 저절로 나타납니다.
버려도 일시에 몰록 버려야 하고, 버리는 마음이 없이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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