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 수련화입니다.
점점 무더워지는 요즘입니다. 건강하신지요? 저는 이곳 서울에서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큰스님, 저 수련화는요,
아직도 2001년 2월 11일, 그때를 가끔 회상합니다. 금생에 큰스님을
처음 뵌 날이었고 당시 저는 다시 태어났지요. 그때 저는 불연에 닿은
지 겨우 반년 남짓된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였습니다. 동호회에서 축서사
참선법회가 있다기에 무작정 가고 싶어 일착으로 신청하고 떠난 길이었지요.
부끄럽지만 당신이 어떤 분인지 법명조차 듣지 못했던 상태였습니다.
축서사에 도착한 다음날
친견시간에 여러 법우님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앉으며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법문 한 말씀 듣기도 전에 당신의 미소와
눈빛을 마주하고는 그만 서럽게 숨죽여 울기 시작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전신을 감싸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럴 수가
있다니…… 이럴 수도 있구나……
그후 서울로 돌아와
열병을 앓았습니다. 이상한 건, 1박 2일 동안 제가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큰스님의 얼굴만이 커다랗게
다가오며 깊숙이 제 마음에 자리잡았습니다.
중학교 이후로 ‘왜
사는가?’와 ‘나는 누구인가?’는 제게 있어 숙제였습니다. 이렇게
사는 건가? 공부 잘하고 직장 잘 들어가고…? 아냐…그것이 전부는 아닐
거야…. 그럼 뭐지? 무얼까? 답을 찾아 방황도 해보았지만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만나면서 그 질문, 그 괴로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부처님처럼 살고 싶었고 당신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수행을 시작하면서 어지간히도 많은 질문으로 당신을 괴롭혀 혼나기도
했습니다. 당신께 법명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2002년 정월 초하루에
생전 처음 혼자 15시간 넘게 낑낑거리며 삼천배도 올렸습니다. 그 다음날
새배 드리러 올라갔을 때 당신은 하얀 봉투를 내주셨지요. 그 안에는
‘수련화(秀蓮華)’라는 법명이 담겨 있었습니다. ‘빼어난 연꽃이 되라’는
말씀과 더불어 당신은 함박 미소를 지어주셨습니다. 당신 말씀을 쫓아
그 길로 법당에 내려가 부처님 전에 봉투를 올려놓고 삼배 올리며 울고
웃었던 신고식(!), 얼마나 기뻤던지…! 이후로 여름휴가 때마다 축서사로
달려가 정진하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2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제가 종국에 가야할 길을 알고 싶었습니다. 정진에 목말라 있었기에
직장이며 이것저것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 하에 두 번의
백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금생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가끔 당신은 무서움, 환희심, 괴로움, 아상 등 여러
경계에 끄달리던 제게 가슴 아리고 매서운 경책을 내리셨습니다. 감사해서
울고, 가슴 아려 울고, 부끄러워 울고…처음 겪는 매서운 산중의 겨울
추위에 떨며 법당에서 참으로 많이도 울었습니다. 200일간 관세음보살
정근 속에 울고 웃었던 보광전은 그후 제 요람이 되었습니다.
기도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방향의 삶과 회향을 서원하였습니다. 불법 안에서 세세생생
살면서 주변과 나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항상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큰스님을
스승으로, 또 한 분의 어버이로 모신 지난 5년간 당신과 축서사가 없는
제 삶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삶 또한 그러하겠지요.
이제 주변의 많은 분들은
‘윤경’이라는 이름보다는 ‘수련화’라는 이름으로 저를 불러주십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속의 큰스님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현재는 부족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보살이 되고자 애쓰겠습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당신에
대한 제 마음 또한 깊어갑니다. 전 정말 복 많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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