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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부처님의 무량한 축복과 생명력이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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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인선 (무심월·축서사보 편… 작성일06-01-23 17:56 조회2,4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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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병원문을 나설
때였다. 이상하게도 한량없이 따스하며 너그럽고 푸근한 기운이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법(法)이 높은 스승들을 뵈었을 때
마음의 문이 열리며 저절로 순수해지고 진실해지는 듯한 느낌……. 그가
분명 선지식은 아닐 것인데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극한적인 상황에서 절망을 이겨낸 그가 주는 감동일까.


축서사 불교대학이
위치한 봉화 혜성병원에 한 청년 불자가 있다. 8년 전 고압선에 감전당해
1급 장애자가 된 방진호 씨(38)이다. 선량하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전신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타 죽을 만큼 갈증이 나도 바로
곁에 있는 물도 마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를 만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맨처음 본 것은 불교대학 열쇠를 가지고 있는 간병사 보살님을
만나러 갔을 때였다. 간병사 보살님은 축서사 신도였고, 말 그대로 보살의
헌신적인 삶을 사는 분이었다. 다들 친어머니로 착각할 만큼 진호씨에게
지극정성을 쏟는 장정각도 보살님(60)은 다음 생에는 꼭 장애인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열쇠를 받기 위해 들린 병실에서 나는 그를 설핏 보았으나
그 육신의 불행을 마주보기 버거워 이내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가 매우 맑고 밝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는 축서사 소식지
봄호를 전하러 갔을 때였다. 나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죽음에 가깝도록
앓았다. 그후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을 키워온 나는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앓고 있는 그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월정사에
가신 큰스님께 올릴 책을 챙겨두고 나서 내가 누구보다도 먼저 책을
전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
30분 정도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솔직했고 진실했다.
그는 여전히 맑고 밝았으며 여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열려 있었다.
우리는 업과 그의 아픈 육신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는
사고 이후 불자가 되어 아미타 염불을 한다고 하며, 수행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고 겸손해 한다. 그는 새벽 다섯 시면 라디오로 예불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틈틈이 불교 서적을 읽고 운동도 한다. 마비된 몸이지만 감각이
남아 있어서 통증이 자주 그를 괴롭힌다. 그가 통증과 경련에 대해 얘기하자
더 이상 시선도 마음도 둘 곳이 없어진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잠시 아무
말도 못했다. 다행히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와 대화하는 것은 놀랍게도,
즐겁다! 그는 간병사 보살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참 행복한
놈이에요. 정말 복 많은 놈이에요. 제 주변엔 좋은 분들이 너무나 많아요.”
이런 진호 씨를 사람들은 아끼고 사랑한다.


수행을 설명하는 몇몇
책들에는 강인한 영혼들은 스스로 불행한 삶의 조건을 택함으로써 영적
진보를 이룬다고 쓰여 있다. 진호 씨는 ‘우리가 현재의 의지로써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의 현재의지로
육신의 불행보다는 마음의 자유를 선택한 그는 밝고 행복하다. 이후
그의 삶은 어떤 형태이든 분명 더 나은 것이 될 것이다.


좁고 부자유한 육신은
우리의 실상이 아니다. 육신은 신기루와 같고 물거품과 같은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광대무변하며 변함없는 영원한 실상 생명으로서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본래부처이다. 그의 마비된 육신 안에 깃든 불성(佛性)이
염불수행을 통하여 빛을 발하며 주변을 환히 밝히는 것을 본다. 그는
육신의 법당 안에서 아미타불을 염(念)하며 자신을 정화하고 동시에
우주를 밝힌다. 그는 육신이 자유롭되 좁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고통받는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부처님의 대자비와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실로 간절하게 엎드려 빈다. 그러나 이 기원이
무색하도록 그가 이미 광명과 축복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의
놀라운 의지력과 부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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