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이었다. 운전하고 있던 그 고속도로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고,
어디쯤까지 달려 왔는지 조차도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시외로 빠지는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순간적인 실수로 그만 난생 처음 가는 엉뚱한 진입로로
들어서고 만 것이었다.
바람을 동반한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행여 나타날 도로 표지판을 놓칠 새라 고개를 앞으로
빼서 빗물을 닦아내는 윈도우와이퍼 사이를 열심히 내다보며 그저 앞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설상가상으로 돌발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는데,
헤드라이트가 그만 슬며시 꺼지고 만 것이었다.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원하는 방향에 정지 되지 않고 그저 힘없이
풀려져 내렸다. 그 안에 물려 있던 작은 쇠로 된 ‘볼’이 빠져버렸음이
틀림없었다. 고물차가 기어이 문제를 일으키고 만 것이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고속도로가 갑자기 칠흑처럼 깜깜해져 버렸다.
시골에서 작은
가게 하나를 열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손님들의 애완동물들을 그려
주고 선물용품들도 진열을 해서 생업을 하던 때였다. 그 무렵은 연말이
가까웠으므로 낮에는 판매용 카드를, 그리고 밤에는 대목용 물건들을
실어 와서 채워 넣기에 바빴다. 그 날도 가게 문을 닫은 후, 수업을
끝내고 ‘차일드 케어 센터(직장인을 위한 어린이 보호소)’에 머물고
있던 두 아이들을 찾아 왔다.
그리고 차려
놓은 저녁을 먹고 숙제한 후에 자라고 일러 놓고는 한 시간 반이나 달려서
시드니의 도매상에 물건을 하러 떠났던 것이었다. 늦은 시간에 샘플을
고르는 것도 미안한 터에 주문한 물건을 창고에서 직접 끄집어내어 ‘웨건’차에
가득 실어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J사장의 도매상을 떠난 지 한
시간여가 지났으니 아마 자정이 다 되었을 성싶었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다행히 그 순간에 오가는 차량이 없었다. 만약 뒤에서 시속 110km로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면 그 차의 헤드라이트에만 비춰질 이 차를 보고
갑자기 멈추어 서기는 힘들 터였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속력을 내면서
달려올지 모를 뒤차에 튕겨져 나갈 위기에 봉착 되었지만, 중고차여서
비상 야광판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를 버려두고 고속도로에
드문드문 서 있는 비상전화기를 찾아서 어둠 속을 무작정 걸어가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왼편 길 가에 차를 세워 둘 공간이 있을 리도 없었지만
3차선에서 맨 왼쪽의 ‘슬로우 레인(저속차를 위한 차로)’으로 차를
갖다
붙이려 해도 도무지
차선이 보이지가 않았으니 도대체 얼마만큼 움직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 대처 할 판단도 서지 않는 터에 더구나 가끔씩 내리치는 요란한
천둥 번개 소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순간 내 인생은 결국 이국
땅 고속도로에서 끝나는 것인가 하는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
그 동안 여자
혼자 힘으로 가게의 셔터문을 열고 내리면서,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가게의
물건 박스를 져다 나르면서도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주어진 문제를 감당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이 있을 것이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언젠가 올 것이라고 믿어 왔기 때문이었다. 차에
가득 실린 짐을 밤새도록 정리하고 낮에는 또 가게를 지키고 앉아 주문
그림이나 그려서 아무리 돈을 번다해도 그것은 내 희망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돈 버는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희망은
점점 멀리 달아나는 것 같았다.
깜깜한 이 도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 현실도 저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모든
움직임을 지금 그만 두고 싶었다. 이제는 너무 지쳐서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들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맥을 놓고 그냥 차 속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 진공 상태에 빠진 듯한 그 순간이 그대로
멈추어 져서 영원히 쉬고 싶었다.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은 이 세상에 좋은 것을 보아도 즐겁지가 않았고 재미난 것을 보아도
웃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무엇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인지 생각도 해보고, 그 생각 속에도 나 자신도 한번 찾아보리라고
계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시간을 아직 가져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정작 하고 싶었던 일들은 시작도 못 하였는데.... 마음 놓고 소리 내어
한번 웃어 보는 것도 소원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아직 엄마 노릇을
다 못하였는데.... 집에서 자고 있을 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지금 나는 엄마로써의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짜리 남매에게 엄마 외에는 이 나라에 아무 연고자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런 엄마가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일 터였다.
엄마에게 사고가 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 아이들에겐 엄마의 고국인 한국이 낯설 뿐만 아니라
엄마 대신 아이들을 거두어 줄 만한 친인척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고아원에 보내지거나 다른 집으로 입양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고속도로의 어둠보다도 더 무서운 소름이 끼쳐 왔다.
― 사고가 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 운명이고 사고를 당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운명과 숙명
사이에서 이 마음은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 그랬다. 할 일이 태산같이 남아 있는 인생에서 기본인 엄마의 책임과
의무조차 아직 다 하지 못하였으므로 오로지 마음으로서 운명의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얗게 비어 가던 찬 몸에 갑자기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서
계속 헤드라이트 스위치를 움직여 보았다. 포기하지 않고 반복을 하던
어느 순간에 불이 순간적으로 들어 왔다가 꺼져 버렸다. 다시금 그 위치쯤에서
스위치를 달래 보니 불은 들어 왔으나 손만 놓으면 또 꺼질 판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왼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 손가락으로는
스위치를 그대로 붙들고 운전을 계속 해 나갔다. 그때서야 뒤에서 차
두 대가 질주해 오면서 옆 차선으로 스쳐 지나가 버렸다.
얼마동안 그렇게 가다가
표시판을 보고서야 그 도로에서 빠져 나갔다가 다시 돌아 나왔고 다행히
늘 가던 도로를 찾을 수가 있었다. 한 밤중의 빗속에서 곡예를 하듯이
서너 시간을 그런 상태로 운전을 해서 집까지 돌아오니 어느 듯 새벽이
가까웠고 아이들은 그때까지 잘 자고 있었다.
그날 밤 이후,
그 동안 눌려 있었던 내 존재의 의문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나는
무엇인가? 병들지 않고도, 늙지 않고도, 우리 인생은 아무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가 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시작도 없는 그 옛적은 어디쯤일까? 생(生)과
사(死)를 어떻게 해야 초연히 넘나 들 수 있단 말인가? ― 그 답을 찾고자
나름대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신은 누구이며 성자들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교회나 성당 근처에까지
가서 우두커니 지켜보기도 했는데 주변에 사찰은 없었다. 그런데 종교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약해 보이고 비겁하게 느껴지는 꼬락서니가 신경이
쓰여서 아무도 몰래 책 속에서 그 들의 철학을 훔쳐보기로 했다. ―
종교와 철학의 차이점은 그 실천 강령이 있고 없고에 있다지 않던가.
― 관련 서적을 손쉽게 구할 수가 없어서 목이 말랐지만 오히려 그런
희소가치 때문에 한 줄의 글은 한 방울의 물처럼 금방 흡수가 잘 되었다.
많은 철학자의 이론은 다 진리였다. 그래서 머리로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은 되는데 정작 나의 곤권한 현실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때 어느 친구가
78년도 판이었던 법구경 한 권을 그 해의 우리 이민 가방에 넣어 주었던
것이 기억났다. 다행히 오래 동안 책장에 남아 있었으므로 한 페이지씩
조심스럽게 넘겨보았다. 불법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읽을수록 그윽한
글이어서 맞다 맞다 하면서 맞장구를 쳐 나가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그 책을 읽었지만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이었다. 물 한 모금이 목마른
자와 목마르지 않는 자에게 그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지쳐 가던 몸과 마음이 다 녹아 버려서
어쩌면 내일 아침에는 깨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터에 법구경이라는
책 한권이 어지럽던 마음을 정리해 주었고 힘든 육신도 위로해 주었다.
그 때의 나와,
그 상황을 벗어난 지금의 나는 같은 이름의 나이건만 마음은 다르다.
각기 다른 두 마음 중에서 어떤 것이 실상이고 어떤 것이 허상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전의 희망이 무엇이었던 지도 지금은 다 잊어 버렸다. 다만
이 마음이 아직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생을 살아오며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모든 업장이 소멸되어지도록 조금이나마 참회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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