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無住相)의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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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작성일06-06-11 15:00 조회3,231회 댓글0건본문
무주상(無住相)의 신심
편집부
봉화, 보살들이 깃들어 사는 성스러운 땅이란다. 받들 봉(奉), 될 화(化), 이 지명 자체가 위로는 불법을 받들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념을 내포한 것이란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대승보살의 핵심적 실천 덕목이다.
봉화 읍내에 제법 큰 편이라 할 수 있는 봉화 해성병원이 있다. 그곳 이사장인 권오성(69) 거사는 10년 넘게 축서사 신도회장을 맡고 있다. 부인 따라 드나들곤 했던 축서사는 권회장에게 있어 마음의 가장 큰 휴식처였다.
병원 이사장이란 게 남들 보기엔 그럴 듯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신경 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도시와 달라서 시골 소읍에서는 의료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의 특성상 노인성 질환의 환자들이 많이 오고 의료수가가 낮아서 병원 운영에 애로점이 매우 많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지금의 절반 규모도 안 되는 해성병원을 인수하여 17년 만에 39병상에서 150병상으로 성장시켰다. 치매 병원 병상수는 포함시키지도 않은 수치이다. 그러면서도 빚 하나 없는 운영구조를 정착시켰으니, 권회장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만하다.
스님들이 오매불망 화두를 들고 씨름하듯, 권회장은 사업에 관한 구상과 생각이 떠날 때가 없다. 자연히 수시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속이 답답해진다. 걸망 하나 메고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걸림 없이 떠날 수 있는 스님네들의 삶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권회장은 축서사를 자주 찾는다. 대웅전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막혔던 가슴이 그제야 탁 트인다. 멀리 소백산이 보이고 드넓은 허공이 가슴 가득 안겨드는 축서사의 전면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호쾌하게 열린 허공은 가슴 속에 바글바글 들끓던 망념을 일시에 가라앉히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비로소 속이 편안하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축서사에 가곤 하다가 큰스님을 가깝게 알게 되었다. 큰스님은 권회장에게 신도회장을 맡을 것을 권유했다.
선대 어른 때부터 집안이 불교였던 그에게 불교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불교는 유순하고 인간미가 흘러서 좋다. 뭔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그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냥 성실히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그의 수행이고 종교이다. 그 이상은 복잡해서 잘 모른다. 늙어서 더는 일하기가 어려울 때,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가 평온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 한참이나 웰빙, 즉 잘 사는 법이 세간의 화제였지만, 이제는 웰다잉, 즉 잘 죽는 법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불교에 있어서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지혜이다. 죽는 순간의 의식상태가 윤회하는 존재의 다음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잘 죽기 위해서 수행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스님은 “사람의 나이 마흔이 넘으면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관짝과 수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을 위해 지금 이 찰나를 더 잘 사는 성실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평안하고 내면적으로 풍요로운 임종은 성실하게 살아낸 삶이 주는 축복이다.
권회장은 성실성을 유난히 강조한다. “내 신념은 남한테 피해 안 가도록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저 놈 왜 살아? 이런 말은 듣지 않아야죠. 그러기 위해 철저히 행하는 것, 그것이 제가 사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성실성을 따로 내세울 것도 없다고 손을 휘휘 젓는다. “이 세상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성실하게 삽니다. 불성실한 사람은 극소수예요.”
큰스님께서 권회장에게 축서사 신도회장이라는 무게감 있는 자리를 권유하신 까닭이 비로소 읽힌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적이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 노력하며 산다는 것, 돈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들과 나누고 산다는 것, 누구나 자기 여력껏 절도 돕고 남도 돕는다는 것. 이것이 그의 기본 믿음이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내세울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두고 ‘그의 믿음’ 또는 ‘그의 가치관’이라고 표현할 것도 없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무주상(無住相)의 마음이다. 세상과 삶을 향한 긍정성이 자연스럽게 배인 마음이다. 선대 어른 때부터 믿어온 불교가 깊이 곰삭아 그의 삶 내면에 흐르고 있는 덕분인 듯하다.
큰스님에 대한 신도회장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큰스님 불사 해 놓으신 거, 그거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큰스님 원력이 정말 엄청난 거죠.” 큰스님 앞에만 가면 권회장은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한 말씀 한 말씀이 무게가 있고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됩니다. 신도들을 압도하고 끌고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래서 신도들이 마음 놓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권회장은 큰스님께 선뜻 봉화 해성병원 건물의 널찍한 공간을 뚝 떼어 드려 축서사 불교교양대학 법당을 만드시도록 했다. 요즘 불교대학은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6기에 이른 현재 학생수도 80명이나 되는데, 권회장이 기증한 공간은 법당 겸 강의장으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요즘은 총무 스님, 신도회 사무국장과 셋이 머리를 맞대고 신도회를 구성하느라 여념이 없다. 봉화와 영주, 안동, 대구, 이렇게 3권역으로 나누어 신도회를 재편성할 예정이다. 옛날보다 사찰 규모가 커진 만큼 신도회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이제는 신도도 조직적,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신도 개개인의 성장을 돕기도 하고 사찰의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을 짜임새 있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신도회장의 생각이다.
권회장은 축서사가 성장하고 발전하되 지금의 장점과 성격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스님이나 신도들이 와서 정숙하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사찰, 조용하고 아늑하며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가 살아 있는 도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회를 재구성하는 것도 사찰 규모의 양적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청정 수행 도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불가피하게 맡은 직함이 10여 개를 넘어가지만,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 권회장은 초야에 묻혀 그저 밥 먹고 살면서 제 할 일 다 하는 삶이 가장 좋다. 큰스님은 사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그에게 단전호흡을 권하고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축서사에 올라가 그런 꿈같은 세월을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가끔 큰스님께 슬쩍 말씀을 올린다. 축서사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집 짓고 살고 싶다고. 권회장은 진심인데 큰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아주 여유 있는 어투로 “거, 한 번 생각해 봅시다.”라며 농담으로 받아넘기신다. 축사사에 부는 바람처럼 걸림 없고 여유로운 청복(淸福)을 누리고 싶은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편집부
봉화, 보살들이 깃들어 사는 성스러운 땅이란다. 받들 봉(奉), 될 화(化), 이 지명 자체가 위로는 불법을 받들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념을 내포한 것이란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대승보살의 핵심적 실천 덕목이다.
봉화 읍내에 제법 큰 편이라 할 수 있는 봉화 해성병원이 있다. 그곳 이사장인 권오성(69) 거사는 10년 넘게 축서사 신도회장을 맡고 있다. 부인 따라 드나들곤 했던 축서사는 권회장에게 있어 마음의 가장 큰 휴식처였다.
병원 이사장이란 게 남들 보기엔 그럴 듯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신경 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도시와 달라서 시골 소읍에서는 의료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시골에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의 특성상 노인성 질환의 환자들이 많이 오고 의료수가가 낮아서 병원 운영에 애로점이 매우 많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지금의 절반 규모도 안 되는 해성병원을 인수하여 17년 만에 39병상에서 150병상으로 성장시켰다. 치매 병원 병상수는 포함시키지도 않은 수치이다. 그러면서도 빚 하나 없는 운영구조를 정착시켰으니, 권회장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만하다.
스님들이 오매불망 화두를 들고 씨름하듯, 권회장은 사업에 관한 구상과 생각이 떠날 때가 없다. 자연히 수시로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속이 답답해진다. 걸망 하나 메고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걸림 없이 떠날 수 있는 스님네들의 삶이 때론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권회장은 축서사를 자주 찾는다. 대웅전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막혔던 가슴이 그제야 탁 트인다. 멀리 소백산이 보이고 드넓은 허공이 가슴 가득 안겨드는 축서사의 전면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호쾌하게 열린 허공은 가슴 속에 바글바글 들끓던 망념을 일시에 가라앉히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비로소 속이 편안하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축서사에 가곤 하다가 큰스님을 가깝게 알게 되었다. 큰스님은 권회장에게 신도회장을 맡을 것을 권유했다.
선대 어른 때부터 집안이 불교였던 그에게 불교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불교는 유순하고 인간미가 흘러서 좋다. 뭔지 모르게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그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냥 성실히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그의 수행이고 종교이다. 그 이상은 복잡해서 잘 모른다. 늙어서 더는 일하기가 어려울 때,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가 평온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 한참이나 웰빙, 즉 잘 사는 법이 세간의 화제였지만, 이제는 웰다잉, 즉 잘 죽는 법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불교에 있어서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지혜이다. 죽는 순간의 의식상태가 윤회하는 존재의 다음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잘 죽기 위해서 수행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스님은 “사람의 나이 마흔이 넘으면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관짝과 수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을 위해 지금 이 찰나를 더 잘 사는 성실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평안하고 내면적으로 풍요로운 임종은 성실하게 살아낸 삶이 주는 축복이다.
권회장은 성실성을 유난히 강조한다. “내 신념은 남한테 피해 안 가도록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뿐입니다. 저 놈 왜 살아? 이런 말은 듣지 않아야죠. 그러기 위해 철저히 행하는 것, 그것이 제가 사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성실성을 따로 내세울 것도 없다고 손을 휘휘 젓는다. “이 세상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성실하게 삽니다. 불성실한 사람은 극소수예요.”
큰스님께서 권회장에게 축서사 신도회장이라는 무게감 있는 자리를 권유하신 까닭이 비로소 읽힌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적이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 노력하며 산다는 것, 돈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남들과 나누고 산다는 것, 누구나 자기 여력껏 절도 돕고 남도 돕는다는 것. 이것이 그의 기본 믿음이다. 그런 일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내세울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두고 ‘그의 믿음’ 또는 ‘그의 가치관’이라고 표현할 것도 없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무주상(無住相)의 마음이다. 세상과 삶을 향한 긍정성이 자연스럽게 배인 마음이다. 선대 어른 때부터 믿어온 불교가 깊이 곰삭아 그의 삶 내면에 흐르고 있는 덕분인 듯하다.
큰스님에 대한 신도회장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큰스님 불사 해 놓으신 거, 그거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큰스님 원력이 정말 엄청난 거죠.” 큰스님 앞에만 가면 권회장은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한 말씀 한 말씀이 무게가 있고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됩니다. 신도들을 압도하고 끌고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래서 신도들이 마음 놓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권회장은 큰스님께 선뜻 봉화 해성병원 건물의 널찍한 공간을 뚝 떼어 드려 축서사 불교교양대학 법당을 만드시도록 했다. 요즘 불교대학은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6기에 이른 현재 학생수도 80명이나 되는데, 권회장이 기증한 공간은 법당 겸 강의장으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된다.
요즘은 총무 스님, 신도회 사무국장과 셋이 머리를 맞대고 신도회를 구성하느라 여념이 없다. 봉화와 영주, 안동, 대구, 이렇게 3권역으로 나누어 신도회를 재편성할 예정이다. 옛날보다 사찰 규모가 커진 만큼 신도회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지게 되었다. 이제는 신도도 조직적,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신도 개개인의 성장을 돕기도 하고 사찰의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을 짜임새 있게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신도회장의 생각이다.
권회장은 축서사가 성장하고 발전하되 지금의 장점과 성격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스님이나 신도들이 와서 정숙하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수행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사찰, 조용하고 아늑하며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가 살아 있는 도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회를 재구성하는 것도 사찰 규모의 양적 확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청정 수행 도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불가피하게 맡은 직함이 10여 개를 넘어가지만,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 권회장은 초야에 묻혀 그저 밥 먹고 살면서 제 할 일 다 하는 삶이 가장 좋다. 큰스님은 사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그에게 단전호흡을 권하고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축서사에 올라가 그런 꿈같은 세월을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가끔 큰스님께 슬쩍 말씀을 올린다. 축서사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집 짓고 살고 싶다고. 권회장은 진심인데 큰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아주 여유 있는 어투로 “거, 한 번 생각해 봅시다.”라며 농담으로 받아넘기신다. 축사사에 부는 바람처럼 걸림 없고 여유로운 청복(淸福)을 누리고 싶은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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