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서사 템플스테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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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0:48 조회2,982회 댓글0건본문
축서사 템플스테이
김 현 (서울)
찰나! 였다. 큰스님께서 한 마디의 말씀도 없이 그저 옷깃을 여미고 자리를 정돈하시던 그 순간, 나의 때 묻은 얼굴 위에 말갛고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 것은…….
지난 2005년 시월의 어느 날, 참으로 아름답게 산하가 물들던 가을 아침에 우리 가족은 산사에서의 고즈넉한 하룻밤을 꿈꾸며 서울을 떠났다. 아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와 거래관계에 있는 일본 분들과, 우리 가족, 몇몇의 회사 동료들이 함께 템플스테이 여정을 떠난 것이다.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를 몇 차례 갈아타고 우리나라 최장인 죽령터널을 지나니 풍기 땅이다. 정갈하게 차려진 송이전골로 배부른 점심을 하고 영주 부석사로 향한다. 가을에 들어서야 속내를 드러내는 노오란 은행잎은 아직은 그 빛깔이 여물지 않았고 절정에 이른 풍성한 사과송이가 싱그럽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뒤로 하고 살짝 봉화로 넘어드니 앞자리의 이 처사님이 겁을 준다. 축서사의 해발고도가 팔백여 미터 쯤 되어서 조금은 추울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얇은 겉옷 하나로 버텨낼지 설핏 걱정이 된다. 구불구불 산길을 대형버스가 잘도 올라간다 싶더니 마주선 차 앞에서 숨기를 두어 번, 넓은 개활지가 일행을 반긴다. 시야에 들어오는 온통 노오란 산등성이와 그 아래 자리한 씩씩한 건물들……축서사다!
한기가 엄습하여 따끈한 요사채로 들어가니 서울촌놈에겐 생소한 내음이 진동한다. 짐짓 폼을 잡고 총무 스님께 따져 물으니 천연의 춘양목을 제재로 하여 지은 절집에서 나무 본연의 향이 뿜어져 나오는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그 모습이 온전히 갖추어진 것이 불과 며칠 안 되었다는 새 탑사며 단청에서 금방이라도 오색물감이 떨어질 듯한 대웅전 등, 이 깊은 산속에 거대한 불사를 이루어낸 공력으로 절의 이곳저곳을 소상히 말씀해 주시니 그 친근함이 더해진다.
간단히 여장을 풀고 하릴없이 산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백두대간의 장엄한 산줄기를 응시하다보니 어느덧 공양시간이다. 오늘은 특식이라고, 스님들이 매번 이렇게 공양하는 건 아니라고 총무 스님께서 몇 번 강조하시더니 역시나 푸짐한 저녁상이다. 미욱한 길손들 대접하느라 세심하게 배려하신 스님의 노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밭, 셀 수도 없이 많은 은하계의 성좌들을 바라보다 다도의 향기에 취해본다. 토굴에서 용맹정진 중인 스님께서 총무 스님의 부탁을 받자와 따끈한 차와 그림 같은 다식을 내주시어 가진 담소의 시간. 그 옛날 초의 선사와 추사가 그랬을까, 소나무향 그윽한 선방에서 정담이 오고 간다.
아직은 이른 새벽, 산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이 되나보다. 도시에서는 아직 한밤중인 시각, 고요한 공기를 가르는 청아한 목탁의 울림이 퍼져나간다. 차가운 산바람을 뚫고 법당으로 모여드는 진리를 갈구하는 중생들.
새벽예불, 일 배 일 배……. 이어지는 의식 속에 나의 육체는 그리고 마음은 차츰 깨어난다. 자리를 옮겨 선방으로 간다. 이것이 무엇인고? 성급하게 움켜잡은 나의 화두는 풀릴 줄을 모르고 오히려 더욱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나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삼라만상의 티끌보다 작은 나는 과연 무엇인가. 현상의 이 모든 것을 부질없다 할 것인가. 이 무어꼬!
고봉준령을 뚫고 힘차게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가을날의 정취를 만끽할 즈음, 이제는 이별의 시간이다. 손 치르느라 분주하셨을 총무 스님과 또 여러 보살님들과 꼭 다시 찾을 것을 약속하며 ‘나중에 뵈옵더라도 처음 본 듯 하지 마소서’, 농을 건네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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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불자 이야기
이덕영 (경북 영주)
제성이랑 하빈이는 남매입니다. 열 살 먹은 제성이랑 일곱 살 먹은 하빈이는 또래 친구들과 아주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건 매일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고 108배를 하는 불자라는 겁니다.
제성이랑 하빈이는 고모를 따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고모는 제성이랑 하빈이가 서너 살 때부터 관세음보살님에 대해 알려주고, 합장인사하는 법, 절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빈이는 참 똘망똘망하고 귀엽게 생겼습니다. 추운 겨울날, 사과처럼 빨갛게 언 볼에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서 있는 하빈이에게 “부처님이 좋아요?”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되나요?”
하빈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슴에 가지런히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방긋이 웃었습니다. 눈부신 개나리꽃처럼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제성이는 작년 초에 108배로 21일 기도를 했습니다. 설날이 되어 할아버지가 계신 친가에 간 제성이는 집에 가서 절을 해야 한다며 부모님을 졸랐습니다. 결국 제성이는 21일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8배를 했습니다.
각화사 선방 스님들은 하빈이를 참 많이 예뻐합니다. 여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인 스님들 선방에 하빈이만은 예외입니다. 몇 해 전부터 광명진언을 외우는 하빈이는 스님에게 광명진언을 가르쳐 드리기도 했습니다. 축서사에선 큰스님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재롱을 피워 큰스님의 얼굴에 그 자비로운 웃음이 가득 번지게 만들었습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제성이와 경찰이나 간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하빈이. 이 두 꼬마 불자가 언제까지나 순수하고 밝은 마음 잃지 않고 건강하고 올바른 불자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를
김미하 (월정인, 경북 봉화)
제가 가진 작은 재주를 이용해서 미용 봉사를 다녔습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보람과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미용 봉사는 친정아버지가 병환으로 입원하신 것을 계기로 하게 되었습니다.
경로당, 요양원, 병원, 일반 가정 등을 다니며 봉사를 할 때, 그간 배우고 싶었던 봉사의 의미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고귀함에 대해서 새삼 느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환자분의 머리 손질을 해드릴 때마다 정성을 다하여 빨리 건강한 몸과 밝은 마음으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환자들이 기뻐하고 고맙다고 할 때면 작은 봉사가 도움이 될 수 있었음에 저는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들도 참 많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상에서 보이지 않던 환자분들의 임종 소식을 들을 때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그분들께서 극락왕생하시기를 빌기도 하였습니다.
나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내가 그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가치와 감사함과 소중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미용 봉사의 참 의미가 된 것 같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모여서 큰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은 겉보기엔 추하고 불쌍하고 가여워도 모두 큰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나만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모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으므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자타불이(自他不異)’의 마음으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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