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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수행의 조화, 보살의 마음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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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영애(서울 종로) 작성일06-06-11 17:45 조회2,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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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수행의 조화, 보살의 마음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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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서울 종로)

지난 몇 년 간 세상을 떠나 있다가 환속(?)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산간의 절집에 머물며 기도하고 절일을 거드는 것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다. 그 삶은 때로 지독하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희망과 긍정성, 그리고 삶과 존재에 대한 믿음을 단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충만하고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들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절집에서 충분히 성장한 후엔 세상으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출가의 길은 아름다웠지만 이번 생의 내가 걸어야 할 길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수행자로 존재하는 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세상에 돌아갔을 때 수행자의 정신과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했다. 수행의 길을 걷는 데 세상의 삶이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어야 했다. 나는 절집에 살면서 인간관계와 일에 수행의 정신을 결합시키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은 때때로 쉽고 단순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고난도의 ‘수행’이기도 했다.

나는 매사를 삶과 수행을 조화시키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배웠다. 어떻게 해야 거친 세상에서도 수행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삶과 수행과 일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물질과 욕망과 소비 중심의 세간적 삶을 나와 남이 동시에 이로우며, 성불을 향해 나아가는 대승적 보살의 삶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생활 속의 수행이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과 삶의 한복판에서 흔들림 없이 수행의 중심을 잡아가며, 출가 수행의 길을 걷지 못하는 대다수 불자들에게 불교적, 이상적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 이것은 내가 지닌 불교적 희망이었다. 세상이라는 그 거대한 혼돈과 희망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삶터에 진정한 불법을 심고 싶었다.

세간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재가 수행인으로서 내가 지닌 삶의 원칙들은 이런 것이다. ‘일을 하되 물질적 이익이나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세상과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봉사와 헌신의 마음으로 하는 것. 그 결과 따라오는 물질적 이익을 가치 있게 쓰며, 물질적 가치에 휩쓸리지 않는 것. 일에 매몰되지 않고 내적 중심을 지키며 기도와 수행으로 일이 저절로 되어가게끔 하는 ‘함이 없는 함’으로써 일을 하는 것. 결과 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일하는 과정에서 모두 기쁘고 행복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타인들을 돕는 것. 모두를 부처님으로 여기고 진실하고 순수하게 대하며 삶의 매 찰나에 지극한 정성을 쏟는 것. 이미 인연이 무르익어 다가온 삶의 조건과 작업여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여 삶과 외적 여건을 보다 향상시키고 새롭게 창조하는 것. 하루 일정 시간의 수행과 기도 시간을 반드시 지키는 것.

나는 지난 시간 동안 붓다와 스승들을 통해 진실함과 순수함, 따뜻함, 관용, 자비, 사랑, 양보, 배려, 용서, 통찰, 긍정성, 지혜 등 불교적 가치를 배웠다. 이러한 마음의 속성이 진정한 불성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마음자락 가운데 하나라고 배웠다. 이러한 가치를 삶의 실제 현장에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수행을 위해 기울인 모든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는 헛된 물거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고 물질과 욕망을 추구하는 세간적 방식의 삶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그것은 중생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된다. 일과 삶 속에서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으로 존재하며, 나와 남이 동시에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보살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된다.

그럼으로써 세상이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빛나게 만든다면 우리 모두는 불국토를 이루는 세간의 보살들이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수행과 삶과 일 사이의 조화로움을 얻고 대승의 보살로서, 위대한 부처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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