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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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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은 작성일06-06-11 14:55 조회2,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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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김기은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축복이지만, 나에겐 첫아이가 관세음보살님께로 향하는 돛단배였다. 임신 8개월때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장군감인지 태아의 머리둘레는 크고 산모의 아기길은 좁아서 걱정이라고. 그때 나는 허리 19인치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였다. ‘협골반’이니 제왕절개를 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지만 나는 자연분만을 고집했고 이삼일 동안이나 허리가 끊어졌다 붙었다 하는 끔찍한 통증을 겪으며 3.2kg의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가는 젖만 먹으면 낮과 밤을 모르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가의 잠든 모습을 보면 산고의 고통도 모두 다 잊혔다. 그런데 아가한테 이상이 생겼다. 삼칠일이면 자연히 없어지는 황달이 노란빛을 띄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해지더니 가끔 회색 변을 보며 자꾸 칭얼댔다. 병원에서는 ‘선천성 담낭 폐쇄’라고 했다. 태어난 지 59일 만에 아가는 배를 가르고 창자를 떼어내 쓸개관을 만드는, 무려 세 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을 해야만 했다. 온갖 검사로 까까머리가 되어버린 아가…….
입원한 한 달 내내 나는 아기를 업고 다독이며 간절히 관세음보살님만 불렀다. 수술하는 데 피가 모자라 산후조리 중인 내가 아기에게 헌혈을 해주어야 했다. 내 몸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기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헌혈 후 영양제를 맞고 있는데, 그 자그마한 몸에 네다섯 개나 되는 호스를 단 아기가 내 옆에 뉘어졌다. 그 콩알 만한 것이 마취에서 깨어나느라 온몸으로 끙끙 신음을 하며 주사기가 꽂힌 채 반 깁스한 팔을 밤새 까딱까딱하며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하도 아프니까 저도 모르게 그러는 것 같았다. 어미로서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고통 받는 어린것의 모습을 보며 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외우기만 했다. 비몽사몽 중에 새벽녘이 다가왔다. 컴컴한 철조망, 그리고 숱한 검은 그림자들이 높은 산을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금빛 칼을 휘두르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오색의 찬란한 햇살이 가득히 퍼지는 것이 보였다. 문득 아가의 신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수술은 잘 되었지만 워낙 어린 핏덩이라 살아날 가망성은 50%밖에 안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가는 그 시련을 이기고 생명을 유지해 주었다.
그 후 아가의 병원 뒷바라지가 시작되었다. 수술 후 3~4년 동안 매일 통원치료를 했다. 그 힘든 시절이 다 지나가고,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피듯 우리 집에도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천지사방 온 들판이며 마을을 발에 흙 묻히고 뛰어다녔다. 온 동네가 자기 집이고 온 동네 냉장고가 자기 냉장고였다. 주변 어른들은 갓난애가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 대견하다고 사랑만 듬뿍 주셨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새 스무살이 넘은 청년으로 훌쩍 성장했다. 군대를 꼭 가고 싶어 학교까지 휴학했던 아들은 배 전체에 나 있는 수술 자국 때문에 입대 불가판정을 받았다. 덕분에 갑자기 시간여유가 생겨 졸업 후를 대비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렇게 건강하고 성실하게 자라준 우리 아들, 모두 관세음보살님 덕분이다.


언제나 자비롭게 와 닿는 님의 손길
님을 향하는 이 마음
또다시 태어나도 오직 님만을 사랑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15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 정진을 하며 진실한 불자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김기은 보살님의 글을 이번 호부터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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