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성지순례 가던날/신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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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0:51 조회2,961회 댓글0건본문
송광사 성지순례 가던 날
신태옥(경북 봉화)
송광사에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송광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과 16분의 국사가 나온 승보 종찰로서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가는 아주 거룩한 사찰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들뜬 기분으로 출발지로 향했다. 날씨도 청량하고 늦은 단풍이 아름다웠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늘 하루 홀로 외롭게 지내실 어머님께는 죄송했지만 송광사에 가서 어머님을 위한 불공을 드리면 좋은 공덕이 될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운이 좋았는지 학감 혜산 스님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스님들은 고고하고 두렵게만 느껴지고, 또 나 같은 신참내기 불자가 스님과 대화를 하는 것은 외람된 행동인 것 같아서 무의식중에 스님을 피해왔다. 그런데 오늘 스님은 너무나 편하게 여러 가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나 자신 참회하며 신심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차 안에서 예불 테이프를 틀었다. 그 소리를 듣자 가슴 밑바닥에서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참회와 희열이 올라와 눈물이 나왔다. 나는 간절히 발원했다. 내 마음 속에 증오심이 일어나지 말고 나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이 없으며, 항상 관세음보살님의 온화한 미소를 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아직까지 어떤 것이 불법이고 어떻게 실천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깨우치려고 노력을 해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남도의 경치를 구경하는 사이에 송광사에 도착했다. 율원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축서사의 혜림 스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율원은 강원을 마치고 높은 공부를 하는 곳인데, 전국에 해인사와 송광사 두 곳에만 율원이 있으며 알기 쉽게 말해서 대학교 박사과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스님과는 안면이 없지만 축서사 스님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곧바로 점심공양을 했다. 정갈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공양 후에는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이런 큰 사찰에서 설거지할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크나큰 인연이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게 그릇이 씻겨질 때 내 마음의 때도 이렇게 씻어버리고 맑은 물처럼 담담하게 살고 싶었다. 온갖 집착에 얽매여 있는 나 자신을 정말 방생할 수는 없을까!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는 공양간 기물에서 행자님들의 노고와 수행을 엿볼 수 있었다.
혜림 스님의 안내로 큰법당을 참배하고 국사전, 설법전, 삼일암 등 송광사를 두루 구경했다.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인 보조국사비는 혜림 스님 덕분에 특별히 친견을 할 수 있었다. 불임암으로 오르는 대나무 숲은 장관이었다. 한낮인데도 밀림처럼 하늘이 완전히 가려져 캄캄한 밤중 같았다. 대나무 터널 저쪽 끝에 아득히 출구가 보이는데 부처님의 진리가 비추이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대나무 숲을 지나 위로 오르자 참나무, 단풍나무가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도 가파르고 낙엽이 쌓여서 무척 미끄러웠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낙엽을 한 계단씩 쓸고 계셨는데 우리를 보자 인자하게 웃으시며 합장을 하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맑아보였던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침내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혜림 스님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시 한 번 합장을 하고 헤어져 조금 걷다가 뒤돌아보니 스님이 웃으며 서 계셨다. 차에 오른 도반들의 얼굴이 모두 미소가 가득했다. 오늘은 모두 더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모두 부처님 같다.
우리 모두 작은 가슴에 불심이라는 거룩한 씨앗을 심어 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다. 육바라밀과 오계를 실천하면서 인과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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