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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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현스님 작성일06-08-09 16:02 조회3,321회 댓글0건본문
생전예수재와 효행, 하나
은혜 갚는 법
지현 스님 (송광사 율원장, 부산 관음사 주지)
보살은 은혜를 알고, 은혜 갚을 줄 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수많은 은혜에 의해 지속됩니다. 부모, 스승, 삼보, 자연 모든 사람들의 도움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다 은혜로운 분들 특히 부모님은 우리에게 정신과 몸을 주셨기에 그 은혜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은 다 은혜로운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갚을 줄 알면 사람이라 하겠지만 은혜를 저버리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도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옛 어른들은 효도가 모든 행의 근본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은혜나 보은(報恩)의 뜻도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오늘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족 간의 문제, 노인 문제, 청소년 문제, 부부 문제 등의 불행과 고통이 겹쳐지는 문제들로 우리들의 삶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불행한 문제를 푸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효도에 있습니다.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의 도리가 살아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효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보은의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됩니다.
연지대사는 그의 저서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 세간의 효도와 출세간의 효도를 밝혔습니다. 세간의 효도는 부모님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옷과 편안하고 쾌적한 집을 마련하여 정성스럽게 봉양하는 것을 작은 효도라 하고,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서 과거에 급제하거나 어느 한 방면의 최고전문가가 되어서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가문을 빛내는 것을 큰 효도라 하였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는 부(富)의 성취와 가문을 빛내는 귀(貴)를 얻는 것이 세간의 효도라는 뜻일 것입니다. 부귀하여 부모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모시더라도 윤회의 고통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부귀를 누리느라 교만하고 사치하기 쉽기 때문에 애써 이룬 부귀를 금생도 지키지 못하고 죄업으로 빈천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귀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진정한 은혜 갚는 길이 못됩니다.
참으로 은혜를 갚는 길은 출세간의 효도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께 불법을 신봉(信奉)하고 수행하도록 길을 열어서 염불삼매로 자아를 깨닫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 최선의 효도이며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염불(念佛)은 마음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마음이 선법을 지향하고 있다면, 선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법을 생각하면 선업(善業)이 따르게 됩니다.
수행자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죄업을 소멸하기 위해 바른 생각(正念)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염불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염불은 몸과 말과 생각생각으로 짓는 죄업을 소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염불할 때 단정히 앉으므로 불행과 고통을 불러올 신업(身業)을 짓지 않게 됩니다. 입으로는 진리, 즉 부처님의 공덕을 읽거나 외울 때 나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구업(口業)을 짓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명상의 대상을 애써 놓치지 않으므로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하면 몸과 말과 생각의 삼악업은 소멸 되고 삼선업은 자라나게 된다고 했으니 윤회를 벗어나는 최선의 효도일 것입니다.
옛 어른들이 한결같이 ‘수행을 잘하면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정토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하여 ‘유심정토(惟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증명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의식주로 봉양하는 것은 생활의 편리로 도와드리는 일이며, 염불수행을 권하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비유로도 그 공덕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출세간의 큰 효도가 될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자성을 보게 해주는 것을 법공양이라 하는데 보현행원품에서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섭수하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 이라 했으며, 법공양의 공덕이 한없이 큰 이유를 ‘모든 부처님은 법을 존중히 여기므로 법대로 수행하면 많은 부처님이 출생하는 까닭이며, 이러한 수행이 참된 공양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공양이 최선의 효도가 되는 것이니 부모님께 법을 수행하도록 도와드리면 부모님이 고통스런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즐거움만 있는 정토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성불할 수 있습니다.
‘윤회 세계의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고 하셨는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윤회를 끊는 수행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며, 윤회를 끊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공덕을 성취합니다.
범망경 보살계본에도 부모와 스승과 삼보에 효순하는 것을 계라고 하셨고, 효순심과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대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셨으며, 몸소 마른 뼈 무더기에 절하셨고, 어머니를 위하여 도리천에 오르셔서 지장경을 설하시는 등 부처님께서도 몸소 효도를 실행하는 아름다운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세간 출세간의 모든 성현들과 선철들도 한결같이 효성스런 모범을 보이셨으며 효도를 강조하셨습니다.
효도는 거룩한 삼보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은혜로운 부모님의 사랑스런 품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바른 길이며, 밝은 길이며 아름다운 길입니다. 효도는 선택할 일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최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덕목입니다. 바른 길을 잃고 어둠속에서 괴로워하며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최우선적으로 바르고, 밝고, 아름다운 효도를 실행해 보세요. 그러면 단박에 행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의 품은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고, 부처님의 가슴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늘 열려 있습니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따뜻한 사랑의 품안인 부모님의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부처님의 품안으로 돌아갑시다.
효행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효행은 행복을 나누어 주시는 거룩한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며, 은혜를 갚는 최선의 방법이며, 고통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은혜 갚는 법
지현 스님 (송광사 율원장, 부산 관음사 주지)
보살은 은혜를 알고, 은혜 갚을 줄 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수많은 은혜에 의해 지속됩니다. 부모, 스승, 삼보, 자연 모든 사람들의 도움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다 은혜로운 분들 특히 부모님은 우리에게 정신과 몸을 주셨기에 그 은혜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은 다 은혜로운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갚을 줄 알면 사람이라 하겠지만 은혜를 저버리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도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옛 어른들은 효도가 모든 행의 근본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은혜나 보은(報恩)의 뜻도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오늘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족 간의 문제, 노인 문제, 청소년 문제, 부부 문제 등의 불행과 고통이 겹쳐지는 문제들로 우리들의 삶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불행한 문제를 푸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은 효도에 있습니다. 은혜를 갚으려는 사람의 도리가 살아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효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보은의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됩니다.
연지대사는 그의 저서 죽창수필(竹窓隨筆)에서 세간의 효도와 출세간의 효도를 밝혔습니다. 세간의 효도는 부모님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옷과 편안하고 쾌적한 집을 마련하여 정성스럽게 봉양하는 것을 작은 효도라 하고,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서 과거에 급제하거나 어느 한 방면의 최고전문가가 되어서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가문을 빛내는 것을 큰 효도라 하였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는 부(富)의 성취와 가문을 빛내는 귀(貴)를 얻는 것이 세간의 효도라는 뜻일 것입니다. 부귀하여 부모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모시더라도 윤회의 고통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부귀를 누리느라 교만하고 사치하기 쉽기 때문에 애써 이룬 부귀를 금생도 지키지 못하고 죄업으로 빈천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귀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진정한 은혜 갚는 길이 못됩니다.
참으로 은혜를 갚는 길은 출세간의 효도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께 불법을 신봉(信奉)하고 수행하도록 길을 열어서 염불삼매로 자아를 깨닫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 최선의 효도이며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입니다.
염불(念佛)은 마음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마음이 선법을 지향하고 있다면, 선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법을 생각하면 선업(善業)이 따르게 됩니다.
수행자가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죄업을 소멸하기 위해 바른 생각(正念)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염불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염불은 몸과 말과 생각생각으로 짓는 죄업을 소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염불할 때 단정히 앉으므로 불행과 고통을 불러올 신업(身業)을 짓지 않게 됩니다. 입으로는 진리, 즉 부처님의 공덕을 읽거나 외울 때 나쁜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구업(口業)을 짓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명상의 대상을 애써 놓치지 않으므로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하면 몸과 말과 생각의 삼악업은 소멸 되고 삼선업은 자라나게 된다고 했으니 윤회를 벗어나는 최선의 효도일 것입니다.
옛 어른들이 한결같이 ‘수행을 잘하면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뵙고 정토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하여 ‘유심정토(惟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증명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의식주로 봉양하는 것은 생활의 편리로 도와드리는 일이며, 염불수행을 권하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비유로도 그 공덕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출세간의 큰 효도가 될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자성을 보게 해주는 것을 법공양이라 하는데 보현행원품에서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섭수하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 이라 했으며, 법공양의 공덕이 한없이 큰 이유를 ‘모든 부처님은 법을 존중히 여기므로 법대로 수행하면 많은 부처님이 출생하는 까닭이며, 이러한 수행이 참된 공양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공양이 최선의 효도가 되는 것이니 부모님께 법을 수행하도록 도와드리면 부모님이 고통스런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즐거움만 있는 정토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성불할 수 있습니다.
‘윤회 세계의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고 하셨는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윤회를 끊는 수행이야말로 최고의 가치이며, 윤회를 끊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공덕을 성취합니다.
범망경 보살계본에도 부모와 스승과 삼보에 효순하는 것을 계라고 하셨고, 효순심과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대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셨으며, 몸소 마른 뼈 무더기에 절하셨고, 어머니를 위하여 도리천에 오르셔서 지장경을 설하시는 등 부처님께서도 몸소 효도를 실행하는 아름다운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세간 출세간의 모든 성현들과 선철들도 한결같이 효성스런 모범을 보이셨으며 효도를 강조하셨습니다.
효도는 거룩한 삼보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은혜로운 부모님의 사랑스런 품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바른 길이며, 밝은 길이며 아름다운 길입니다. 효도는 선택할 일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최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덕목입니다. 바른 길을 잃고 어둠속에서 괴로워하며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최우선적으로 바르고, 밝고, 아름다운 효도를 실행해 보세요. 그러면 단박에 행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의 품은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고, 부처님의 가슴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늘 열려 있습니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따뜻한 사랑의 품안인 부모님의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부처님의 품안으로 돌아갑시다.
효행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효행은 행복을 나누어 주시는 거룩한 사랑의 품에 안기는 것이며, 은혜를 갚는 최선의 방법이며, 고통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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