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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인정, 사문의 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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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후스님(축서사 선덕) 작성일06-08-09 15:44 조회2,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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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인정, 사문의 효심
기후 스님 (축서사 선덕)


주변이 온통 열기로 가득하다. 이럴 때 화탕지옥의 수은주는 어느 정도로 올라가 있을까? 하안거가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생뚱맞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우란분절이 있기 때문이다.
목련존자가 바라보아야 하는 그의 어머니의 엄청난 무게의 고뇌! 천륜을 되뇌이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집착과 애증으로 바라보는 이와, 그것을 끊고 고통의 나락을 벗어나 보려는 출가인이 응시하는 그 인륜에의 인연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서로 이해하고 소통해야 할 것인가?
여기 그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동산 양개 스님 모자의 편지글을 소개해보려 한다.
동산(洞山)스님! 그는 중국 당나라 때의 (807-869) 고승으로 21세 때 숭산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수행하던 중 담성스님을 참배하고 ‘무정(無情)도 설법을 한다’는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조동종의 개조(開祖)가 되어 선풍을 드날렸다. 그런 그도 출가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학식이 풍부했던 어머니의 끈질긴 설득도 문제였지만, 출가를 극구 만류하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효행이 지극했던 그로서는 무척 힘든 상황이었을 게다. 그러나 출가하여 대자유인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모두 반야용선에 태우고 말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출가하고 얼마 후, 동산스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어머니에게 보낸다.
존경하는 어머니께.
제가 알기로는 모든 성현께서 이 세상에 나올 때 모두가 부모에게 의탁하여 삶을 받았으며 만물이 생길 때도 또한 하늘은 덮어주고 땅은 실어주는 힘을 빌렸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천지가 없으면 자라나지 못하니 모두가 길러준 은혜와 덮어준 은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체중생과 모양 있는 모든 것들은 전부가 무상에 속하기에 생사를 여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온갖 좋은 재물로 공양하고 남의 살로 음식을 지어 보양한다 하더라도 도리어 애착과 살생으로 인한 과보로 인해서 영원히 윤회의 길로 들어서서 서로가 고통을 감수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부모에게 효행을 하려면 질기고도 질긴 그 천륜이란 인정의 끈을 끊어버리고, 출가해서 해탈과 자비의 길을 제시하신 부처님의 법을 배우는 것 만한 큰 공덕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애착의 물줄기를 바꾸고 번뇌로 가득 찬 고뇌의 바다를 뛰어 넘음으로써 천생의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면 삼계의 네 가지 은혜(국토, 부모, 스승, 친구)를 갚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출가하면 구족이 천상에 난다했습니다. 양개는 금생에 몸과 생명을 바쳐 맹세코 집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억겁의 무지를 밝혀 큰 지혜를 깨치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데 부모님께서는 정반왕을 배우시고 마야부인을 본받으십시오. 다른 날에 우리 함께 부처님 회상에서 만나기 위해서 지금 잠시 이별하는 것이니 부모님도 부지런히 정진하십시오. 재차 말씀드리거니와 부모님의 마음에 이 자식을 다시는 기억하지 마십시오. - 아들 양개 올림-


이 같은 편지를 받은 후 그의 어머니가 곧장 답장을 보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나는 너와 더불어 전생부터 인연이 있다가 비로소 모자의 관계가 맺어 짐에 애욕을 취하여 정을 쏟게 되었다. 너를 가질 때부터 부처님과 하늘에 기도를 드려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원하였더니 임신한 몸에 달이 차자 목숨이 마치 실 끝에 매달린 듯 하였으나 마침내 바라던 아들을 얻게 되어서는 보배처럼 아낌에 대소변의 악취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젖 먹일 때도 그 수고로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차츰 성장해가면서 밖으로 보내어 배우고 익히게 함에 간혹 잠깐이라도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곧장 문설주에 기대어 기다리곤 하였다. 보낸 글에는 출가하여 수행하겠다고 했지만 네 형은 인정이 메마르고 동생은 성격이 싸늘하니 내가 어디에 기대야 하겠는가?
아들은 어미를 버릴 뜻이 있으나 나는 결코 너를 버릴 마음이 없다. 네가 훌쩍 집을 나가고부터 조석으로 항상 슬픔의 눈물을 흘림에 괴롭고도 괴롭구나. 그러나 이미 맹세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젠 너의 뜻을 따르겠다. 단지 네가 목련존자 같이 나를 제도하여 고해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높은 불과를 증득하기를 바랄뿐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큰 허물이 될 것이니 부지런히 정진하길 바란다. - 어미가 -


그 뒤 수년이 흘러 동산스님의 어머니가 눈이 멀게 되었고 이젠 아들을 봐도 알아볼 수 없게 된 그는 세수대야를 하나 짊어지고 전국의 큰절 일주문 근처에서 오가는 승려들의 발을 씻어주는 공덕을 짓기로 하였다. 표면상 공덕이지 속셈은 그의 아들 발을 씻어주는 기회를 가져서 모정을 전해 보려는 것이었다. 양개는 선천적으로 오른쪽발가락이 여섯 개였기에 쉽게 찾을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러길 여러 해, 양개스님이 그의 어머니를 발견하고 발을 대야에 담갔을 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혹시 양개스님이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이 스님도 아들처럼 발가락이 여섯 개 인가 보다 하고 깨끗하게 씻겼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동산스님이 한 말씀했다.
“발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을 찾으려는 그 어리석음과 애착심을 당장 거둬 들이십시오. 그래야만 당신 아들의 참 모습을 볼 것이며 당신의 참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목련이 되고 그대는 마야부인이 되어야 부처님 회상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그 순간 어머니는 지금 말하고 있는 스님 바로 아들이라는 직감과 함께 지금까지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어떤 인정의 덩어리가 녹아내리고 속이 시원해지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감겨진 눈으로 아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어머니를 뒤로 하고 걸망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양개스님의 걸음걸음에서 우린 부모의 인정과 사문의 참된 효심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출가를 바라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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