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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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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해경 작성일06-08-09 15:43 조회2,9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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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산사에서
심해경 (서울)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어 할 말 없는 말을 이끌어 낸다.
산사에 가면 느껴지는 지극한 고요함을 내 안에 가득 채운다. 독경 소리마저 적막함에 묻혀버리는 산사, 그 곳이 나에게는 이 세상에 아직 존재하는 청정한 불국토이다.
산사에서 스님으로부터 나는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웠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도 채워지지 않았던 나의 갈증은 단지 나의 분주함이었고 생사 윤회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돌아보지 않았던 가까운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잘 사는 일 자체가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도무지 고마움을 모르고 이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신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때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지만 사실이었다. 지극한 정성으로 자식을 키운 부모에 대해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낀 것은 부끄럽게도 부처님 법을 알고 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은 이루 말 할 수도 없고 살아계신 어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함이 가슴 아프다.
요즈음은 있는 그대로 보기를 연습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당시에 미처 보지 못 한 것을 인화한 후에 보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삶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속성이 있으므로 놓치는 것이 아마 더 많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동시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찰나에 충실하며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다겁생래로 익혀온 이기심은 아주 작은 불편함에도 나와 남을 가르고 아주 작은 일에도 나와 남이 다름을 분별하여 자신을 합리화 하는 데 급급하다. 나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에 더 익숙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아주 많이 소홀한 일상이 대부분인 것 같다. 한 순간 참회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얼마나 많이 관세음보살님과 아미타부처님을 불렀던가.
스님께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지만 아직은 온전하게 신구의 삼업이 이에는 까마득히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보살계는 세세생생을 간다는 말을 믿고 금생에 보살계를 받았으니 언젠가는 보살로 완성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산사의 고요함을 가득 담아와 집에 계시는 어머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다. 마냥 자식의 입장에게 젖 찾는 아이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그런 일상이지만 어머니의 단조로운 일상을 고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겼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봄이 저물어갈 즈음, 화려하게 봄을 알렸던 벚꽃이 지고 버찌가 꽃만큼 많이 달린 산사에서 욕심껏 버찌를 따서 스님께 공양하고 어머니께도 드렸다.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많이 달린 버찌를 따며 문득 나는 내가 이처럼 풍요로운 사람이 되어 마음껏 나누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초라한 마음 살림이 부끄럽기만 하고 넉넉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우란분절에는 지장보살님의 발원으로 지옥문이 열려 크게 고통 받는 지옥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날이라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올 해 나는 입재일을 놓쳤다. 초가을 찬바람이 볼을 스치듯 서늘함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내가 만나는 많은 인연 속에서 나는 행복한 불자로 살고 싶기에 다니는 절 큰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애틋한 마음이 더하다. 마음과 몸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그런 날들로 금생이 이루어지도록, 택처하는 데 신중함을 잃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저자거리에 있어도 도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경지가 되기까지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당신께서 다녀왔으니 괘념치 말라 위로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슬그머니 고개 들던 현재 인연에 대한 원망심이 쉰다. 스님께 전화 드리고는 면목이 없어 애꿎은 안부만 여쭈었다. 무심함이 배어나오는 데도 자비심이 느껴진다. 모든 인연한 자들이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서 편안해지기를 기도할 수 있는 좋은 때인 것 같다.
올 여름은 해외에서 보내게 된다. 오랜만에 가는 곳이라 많이 변했을 것 같다.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이 있으면 참회하고 선업이 있으면 잘 키울 것이다. 여행을 하면 인생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만나고 헤어짐이 다반사인 우리 인생은 나고 죽음 또한 시작과 끝이 아님을 알게 한다. 염불하는 마음 한 자락 가지고 갔던 곳에 다시 가 보면 그 곳은 처음 가는 곳이 될 것 같다. 여행하다 힘이 들면 건성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이 커지니 힘에 부치지 않도록 마음과 몸을 잘 다스려 만나는 인연들을 정성스럽게 가꾸어야겠다.
지금 나는 기도와 염불에도 불구하고 경계에 부딪치면 아우성치며 올라오는 나의 업장을 잘 다스려 고요한 산사에서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부처님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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