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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지어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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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리, 혜산 작성일06-08-09 16:03 조회3,1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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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지어가는 사람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대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대,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생사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 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두어 놓으려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 아침에 의심덩어리를 깨뜨리면, 생사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공부를 지어가는 사람은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않으며, 산을 보아도 산인 줄 모르고, 물을 보아도 물인 줄 알지 못하며, 가도 가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은 줄 몰라서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도 한 사람도 보지 못하고, 온몸 안팎이 한 개의 의단(疑團)뿐이니, 의단을 깨뜨리지 못하면 맹세코 마음을 쉬지 말지니라. 이것이 공부에 긴요한 것이 되느니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여 헤아려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 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가 거의 없으리라. 공부를 지어가는 사람은 문구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공부를 지어가되 털끝만치도 딴 생각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만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이 상한다’하니 배우는 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나니라.
공부를 짓되 다만 한 가지 공안에 마음을 쓸지언정 온갖 공안에 따져 알려고 말지니, 비록 풀이해 알게 된다고 할지라도 마침내 이것이 알음알이요, 깨친 것이 아니니라.
공부를 짓되 의근(意根)을 향하여 헤아리고 따지지 말 것이니, 공부로 하여금 한 조각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의정이 일어날 수 없게 하나니, 사유척도(思惟尺度) 네 자는 바른 믿음을 막고 바른 행을 막는 것이며, 겸하야 도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이것을 마치 원수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공부를 짓되 잠깐이라도 바른 생각을 잃지 말지니, 만약 참구하는 한 생각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이단에 들어가 아득히 돌아오지 못하리라. 어떤 사람이 고요히 앉아 맑고 깨끗한 것만 기뻐해서, 순수하고 맑고 티끌이 끊어진 것으로 불사(佛事)를 삼는다면, 이는 바른 생각을 잃어서 맑은 데 떨어진 것이라 부르는 것이요, 혹 능히 강설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할 줄 아는 것을 그릇 앎으로 불사를 삼는다면, 이는 바른 생각을 잃고 식신(識神)을 잘못 안다 할 것이고, 혹 망령된 마음을 가지고 억지로 눌러 망령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불사를 삼으면 이를 불러 바른 생각을 잃은 것이라, 돌로 풀을 눌러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독의 맛, 진리의 맛,
편안한 마음의 맛을 보게되면
뜨거운 괴로움도 없어지고 죄과도 없어진다.
- 사죄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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