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흉화복과 수행은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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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영(사회복지법인 연화원 … 작성일07-02-25 21:46 조회3,471회 댓글0건본문
부처님은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하시고 시급히 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권하시면서 팔정도를 설해 주셨다.
무상(無常)은 정말 신속해서 어리석음에 푹 젖은 우리의 지혜로는 느낄 수조차 없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세월을 보내다가 죽고, 업력에 의해 다시 태어나 또 정신없이 사는 다람쥐 쳇바퀴의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 사는 모습 속에는 항상 길흉화복의 네 글자가 우리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설레이게도 한다. 이러한 길흉화복에 대해 부처님은 어떻게 가르치셨을까? 그 가르침이 바로 인과이다. 내가 뿌려 내가 거두어먹는 것! 내가 뿌리지 않은 것은 결코 나에게 돌아올 수 없다는 것! 이것을 가르쳐주시고 이 인과법에 의지해 업장을 소멸해 갈 것을 말씀해 주셨다. 모든 것은 내가 뿌린 것이고 그 것을 거둘 자 또한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과는 결코 피해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인과의 작용이 바로 인생의 길흉화복이다.
이 인과는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멸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그 소멸시키는 방법이 기도요 수행이다. 그 소멸시켜가는 과정에서 말로 받아야할 인과를 되로 받는 것 또한 기도와 수행에 의해서 가능하다. 기도와 수행을 통해서 내 목숨으로 갚아야 할 인과를 길 가다 한 번 넘어지는 정도로 갚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모든 인과가 나를 멍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과를 이해하기조차 버거운 것이다. 원인없는 결과가 어디 있으랴. 옛 조사님들 또한 내가 과거 어느 때에 지어 놓은 선연은 내가 아무리 피하려 애를 써도 언젠가 복이 되어 돌아오고, 내가 과거 어느 때에 지어놓은 악연은 내가 아무리 구중처에 숨는다 해도 화가 되어 돌아온다 했다. 그래서 부처님 전에 기도할 때 복을 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지 깊이 참회함이 중요한 것이다. 참회를 전제로 하는 기도와 수행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비심을 일으킨다. 이 자비심은 또한 무량한 부처님의 지혜를 발현시킨다. 이 지혜가 우리를 인과의 법칙을 알게 하고 또한 그 맴돌이에서 벗어나게 한다. 불교가 타 종교와 가장 구분 되는 것이 바로 이 지혜일 것이다. 부처님이 갖추신 지혜와 복덕은 손의 등과 바닥과 같이 하나다. 무량한 지혜가 곧 무량한 복전인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인과 작용은 나에게 길흉화복을 준다.
이 일상사에서 인과의 작용에 집착하지 않고 당당하게 녹이고 나아가는 생활이 바로 우리 불자의 자세라 하겠다. 이 정도가 되려면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무량 지혜를 발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쉼 없이 참회의 기도와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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