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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세상 속으로 나가려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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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미현 (출판인) 작성일07-06-17 23:59 조회2,9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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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 시각, 너는 하루 종일 지친 몸을 누이고 혼곤한 잠에 빠져 있겠지. 우리가 처음 만났던 7년 전 그때처럼 네 모습은 여전히 곱고 평온하겠다. 다만 쏟아지는 일을 감당하느라 굵어진 손마디와 결린 어깨, 불어난 몸무게가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7년 전 어느 하루. 절에 올라갔더니 공양주가 새로 왔다고 보살님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셨어. 절에 있기엔 너무 젊은 공양주라 다들 좀 난감해하는 분위기였었지.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를 쉬 거두지 못하는 신도들님의 방패막이가 필요했던 주지스님의 생각에 따라 나는 그날부터 절에서 회사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하였다.

퇴근 후엔 저녁예불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작도 끝도 없는 후원 일에 밤늦게까지 매달려 있는 너의 곁에서 서툰 손놀림이나마 보태곤 했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늘 씩씩하게 웃는 얼굴로 일을 기도 삼아 하는 너를 보며 나 역시 낯설고 힘들었던 절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 자라면서 집안일을 해보지 않아 통 살림을 몰랐었는데 너와 함께 한 몇 개월 동안 아주 제대로 살림을 맛본 셈이지. 처음, 보살님들의 시선막음용이었던 내 역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양주의 얼치기 조수 노릇만 하던 나의 행자생활 3개월은 막을 내렸다.

이런 나에 비해 넌 그 많은 일 에도 불구하고 물속의 고기마냥 편안해 했어. 그래서 “아마 넌 전생에 비구니였을 거야”라고 놀려대곤 했지. 하지만 그런 나도 막상 하산할 땐 뭐가 그리 아쉽던지 일주문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묘한 기분. 너도 언젠가 하산할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네가 삼십대 중반에 무슨 곡절이 있어 절에 공양주를 살러 왔는지 보살님들이 꽤 궁금해 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어. 너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던 나 역시 너에게 이름 석 자도 나이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아는 게 없었으므로 구업으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일요일이었던가. 스님들도 볼일이 있어 다들 출타하시고 우리 둘만 남은 저녁. 예불시간에 법당에 올라가 고요하게 기도를 드렸지. 천수경에 이어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네 목소리가 안 들린다 싶더니 이윽고 낮은 너의 흐느낌…. 네 마음의 파도가 잦아들기만 기다리며 나는 계속 금강경을 읽어 내려갔었다.

부처님은 우리 맘을 아실 거야. 그 사실만이 우리에게 위안이었고, 희망이었고, 살아갈 힘이었다. 그랬었다. 언제 외출에서 돌아오셨던지 주지스님의 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 마신 녹차 한 잔의 향이 지금도 코끝에 아련하구나.

이젠 모두 기억의 한 켠에 접어두자. 얼마 후 스님께서 다시 선방으로 돌아가시면 너도 절 생활을 접고 세상 속으로 나오겠지. 넌 세상 어디에서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짬지게 살았던 후원 살림만큼 네 마음살림도 반질반질하다는 걸 믿어.

하루 세 번의 공양 차리기, 10시 법당 마지 준비, 한 달에 열 번 가까이 있는 제사, 음력 초하루와 관음재일, 지장재일 법회, 주지스님의 품이 넓어 수시로 찾아오시는 객스님들의 수발이며 사시사철 끊이지 않게 준비하는 밑반찬들(각종 장아찌나 김치 종류). 객스님이 아프시기라도 하면 넌 네 작은 보시금에서 털어 전복죽을 끓여 올렸고, 내가 어디 어려운 사람을 얘기하면 그곳에 갖다 주라고 역시 네 지갑을 열어주었다.

난 그런 네 모습이 참 좋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너를 스승으로 존경했었음을 고백한다.
이제 지난 아픔 다 딛고 환하게 웃음 짓는 모습만 보여주는 친구야. 부처님 품을 벗어난다는 사실이 많이 두렵다는 내 친구야.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인 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거라 확신한다. 빈 몸 하나로 절에 들어와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살아온 너. 처음 몇 달은 방문 걸어 잠그고 남몰래 눈물바람 하는 날도 많았지만 이제 너의 환한 웃음은 우리 절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음정리, 일 마무리 잘 하기를 바래.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그동안 밑반찬 노트를 하나하나 챙기고 있을 네 손길이 관음보살님의 천수(千手)처럼 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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