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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수행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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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세 작성일06-11-23 16:43 조회3,9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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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낭자와 의상대사의 수행정신



이광세 (경북불교대학 강사)

영취산 반고굴
안함법사가 입적하시자, 의상대사는 영취산 반고굴에 있는 원효대사를 찾아갔다. 원효대사는 6부 촌장 최, 이, 손, 배, 설, 정(崔, 李, 孫, 裵, 薛, 鄭) 중에 설 씨의 자손이다. 한신공의 누님의 아들이니 고모(姑母)의 아들로서 의상대사에게 고종사촌형이 되며 8년 연장이다. 원효대사는 발심과 수행에 대하여 법문해 주며, 스승인 낭지스님을 찾아 가자고 한다. 낭지스님은 영취산 혁목암(赫木菴)에 주석하고 계셨다.
낭지스님은 신라의 승려로서 문무왕 때의 이승(異僧)인데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고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셨다. 신통력이 대단하여 중국을 비롯한 먼 거리를 구름을 타고 다니는가 하면 또는 물속으로 다니기도 하고 혹은 샘 속으로 들어가 자유자재로 왕래했다. 제자로서는 자장, 원효, 지통, 의상이 있었다.
낭지스님은 이들에게 ‘초장관문(初章觀文)’과 ‘안심사심론(安心事心論)’에 대하여 법문하셨는데 “너희들은 아직 그릇과 마음이 깨끗하게 되지 않고 있다. 일체는 고(苦)이며 제행(諸行)은 무상하고, 제기(諸技)는 무아(無我)니라”라며 삼법인(三法印)을 설해 주신다. 원효대사의 유명한 발심수행장은 낭지스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날은 중국 청량산에서 두순(杜順)화상께서 화엄경을 설하고 있어 잠깐 가서 듣고 왔는데, 낭지 스님은 십지(十地) 보살로서 시방세계 어느 곳이든지 필요한 일이 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녀오는 신통력이 있었다.
어느 날, 낭지스님이 제자들을 향해 “자네들 이 세상에 크게 깨닫고 멋있게 사는 도인을 만나보게” 하시면서 입정(入定)에 들라한다. 한참 있다가 눈을 뜨니 하얀 눈썹을 가진 거룩한 도인이 앉아 계신다. 그분이 고구려 보덕 화상이라고 하신다.
원효스님이 열반경에 대하여 물으니 ‘여래의 진수(眞髓)요 부처님의 고향’이라고 하신다. 모든 중생이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적멸의 고향에 돌아가 금강법신을 얻고 상락아쟁의 불성을 깨달아 해탈자제하게 된다고 한다. 불법은 누구를 의지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성(自性)을 관하여 깨닫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생각을 그치고 생각이 고요해지면 만상이 그 가운데 나타날 것이라 하신다. 참으로 큰 법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원효와 의상의 마음에서 이때부터 깨달음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보덕화상의 법문을 듣고 있을 때 승만왕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보덕화상이 “승만사자후일승방편방광경을 읽어주면 승만왕의 병이 즉시 쾌차 할 것이니라” 하시면서 즉시 떠나라 한 뒤, 원효의 대법인연(大法因緣)은 중도(中道)에 있고 의상은 중토(中土)에 있다, 그리고 의상은 부석에서 유통이 시작되고 원효는 분황(芬皇)에서 교법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의상대사가 낭지스님과 보덕화상에게 인사드리고 서라벌에 와서 승만왕을 친견하니 생명이 운명 직전이다. 이때 승만사자후일승방편방광경을 읽어주자신기하게 완치되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무슨 경을 읽어 이렇게 깨끗이 완치 되었느냐고 묻는다. 보덕화상을 만난 전후사정을 말씀드리니 의상대사에게 일승불교를 실천하여 만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정토를 이루어 달라고 당부한다.

당나라로 유학가다

중국 당나라로 유학 간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치하지 않는다.
송고승전에서는 669년, 의상전교에는 650-659년, 부석본비에는 661년이라 전한다. 그러나 스승이었던 당나라 지엄스님이 668년에 입적하셨고, 법성게 완성이 668년 7월이니 시기가 서로 맞지 아니한다. 도착지에 대해서도 송고승전에는 동주라 하고, 의상전교에서는 양주라고 하였다.


선묘 아가씨

의상대사가 상선을 타고 661년 동주에 도착해서 유숙한 곳이 주장 유지인(劉知仁)의 집이였다. 이 집에서 여러 날 쉬고 있을 때, 유지인의 딸인 선묘(善妙)라는 아가씨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선묘는 갖은 방법으로 의상을 유혹하였으나 의상의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다. 끝내 의상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선묘는 도리어 의상의 인격과 도력에 감복하여 도심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내 나이 37세이고 그대는 20대니 앞으로 20년간을 세속의 정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불연을 맺어 몇 만 년을 함께 있겠는가?”하니 선묘는 의상에게 삼배를 올리고 “대원(大願)을 세워 세세생생(世世生生) 스님에게 귀명하여 함께 공부하고 항상 따라 다니고 싶습니다. 대사께서 대승(大乘)을 공부하고 대사(大事)를 성취하시도록 단월이 되어 뒷받침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의상대사는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 문하에 들어가서 화엄학을 8년간 공부한 뒤, 대선지식(大善智識)이 되어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신세를 진 유지인의 집에 사례 인사차 들렀다. 그러나 선묘는 집에 없어 못보고 어머니에게 인사드리고 나와 배를 타러 나갔다. 그때 선묘가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의상이 공부를 끝마치고 신라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방금 다녀갔다는 말에, 선묘는 의상을 위해 만들어 놓은 법복이 든 상자를 들고 정신없이 선창가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배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의상을 바라보는 선묘의 마음은 애절했다. 선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돌렸다. 이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고 천지신명이 있다면, 나의 정성이 다하여 의상대사의 가슴에 안기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그런 뒤 옷상자를 바다 쪽 하늘로 던지니, 부처님이 감응하시어 그때 그곳에만 돌개바람이 불어 옷이 의상대사의 가슴에 안기지 않는가?
기도가 신기하게 이루어짐을 본 선묘는 또다시 기도를 올렸다. 이 배가 무사히 신라까지 도착하게 해달라는 것과 그 후에는 구름이 되어서 항상 의상대사가 가시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도우겠다고 대원(大願)을 세웠다. 그리고나서 바다에 몸을 던지니 과연 선묘의 몸은 용(龍)이 되어 그 배를 무사히 감포 앞 바다에 닿게 하고, 용은 구름을 타고 의상대사가 가는 곳을 따라다녔다.
선묘는 신라국 경주에 있을 때 묘화라는 여인이었다. 묘화는 의상대사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승만공주의 투기로 처녀사음 품으로 가다가 중국 앞바다에 투신자살하게 된다. 그 후에 선묘라는 처녀가 되어 의상대사를 만났으나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불연의 인연이란 이처럼 무량한 화장세계인가. 세속의 사랑보다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사랑인지 우러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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