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수수께끼, 불법으로 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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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여심 작성일07-06-18 00:01 조회3,126회 댓글0건본문
언제부턴가 화사한 거베라 꽃이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대웅전과 보광전의 불단에 올려져 있곤 했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바구니 가득 꽂혀있는 색색의 거베라 꽃. 누가 올렸을까? 총무스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꽃 농원을 하시는 김자야 보살님이라고 했다. 큰 어려움을 겪고도 화목하고 꿋꿋하게 살고 있는 가족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벌써 일 년도 더 되었단다.
봄 햇살이 가득한 사월의 어느 날, 미리 전화를 하고 봉화읍내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보살님 댁을 찾아갔다. 인사를 드리고 앉자마자, 서둘러 이른 점심상을 내오는 보살님.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내온 차를 마시며 조심스레 가족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 드렸다.
보살님은 25년 전에 직장 동료로 남편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숫기가 없고 착하기만 했던 남편에 대한 작은 관심이 시간이 흐르면서 애정으로 바뀌어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시아버님의 오랜 병환으로 시댁의 살림은 이미 거덜난 지 오래였고 7천 5백 만 원이란 큰 빚까지 지고 있었다.
“지난 25년간 골짜기 마다 밭고랑이 누구네 집의 땅인지 알만큼 남의 집 농사일을 많이 했어요. 언제가는 살림이 좀 펴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힘든 시간을 넘기고, 얼마 전 농업경영인상을 받아서 저리로 지금의 900평 꽃 하우스를 짓고 아이들 둘은 대학까지 보냈어요.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친구처럼 의지하고 싸움 한 번 안했어요. 그렇게 지내온 세월인데, 작년 2월 중학생이던 아들의 뇌에 물혹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딸만 셋을 놓고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하다가 어렵게 얻은 아들. 의사는 위급한 상황이라며 빨리 수술하기를 권했지만 당장 돈이 문제였다. 아이들 교육비, 시댁식구 뒷바라지에 모아놓은 돈이 한푼도 없었다. 게다가 꽃 하우스를 지으면서 많은 돈을 대출 받아 더 이상 돈을 꾸어 올만한 곳도 없었다.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은 보살님의 남편이었다고 했다. 마음이 여린 남편은 아들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트랙터로 하우스안의 밭을 가는데, 비가 와서 천정을 열지 못하고 배기가스를 마시며 작업을 했다. 남편은 빨리해서 마치고 집에 가서 아들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뇌출혈. 병원에서는 살 가망이 없다며 치료도 포기했다.
나쁜 일은 손을 맞잡고 온다고 했던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을 수 있는 상황. 살아오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괴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두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 달 동안 하루씩 번갈아 아들이 입원한 서울과 남편이 입원한 안동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금방 세상을 뜰 것 같던 남편은 다행히 잘 버텨주었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다. 그러던 남편이 아들의 물혹 제거 수술이 있던 날, 공교롭게도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에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보살님은 병원에서 보호자들이 말하던 49재를 떠올렸다. 사후 49일 동안 일곱 번 영가에게 좋은 법문을 들려주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선행을 닦으면 영가가 좋은 곳으로 간다는 데, 하지만 평생 절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막막했다. 그때 마침 친구가 축서사를 소개시켜주었다. 돈은 나중에 드리기로 하고 초재, 3재, 7재만 부탁했다.
첫 재를 마치고 공양간에서 식사를 하는 데, 밥이 목으로 제대로 넘어갔다.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식사를 한 번도 못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남편에게 미안할 만큼 밥이 맛있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게 조금 기운을 차리고 다시 아들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또 한 주가 지났다. 2재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남편에게 인사나 할 겸 절에 올라갔는데, 영단에 남편의 사진이 나와 있고 제상도 차려져 있었다. ‘이상하다, 나는 분명 1, 3, 7재만 신청했는데….’ 의아한 마음에 법당보살에게 물어보니 큰스님께서 일곱 번의 재를 모두 지내드리라고 하셨단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겨진 듯한 짙은 상실감에 빠져있던 보살님은 그 일을 계기로 힘을 얻고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큰스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의 곁을 지키며 간절하게 지장보살을 불렀다. 언제부터인지 지장보살이 마음속에 크게 파장이 되어 주변을 꽉 채우는 기분이 들면서 두려움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49일이 지난 후, 꿈속에서 그리던 남편을 만났다. 어린아이같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남편. 다시 만난 기쁨에 남편을 쫓아가던 보살님은 줄에 걸려 넘어지면서 꿈을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기분이 좋아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하던 어느날, 의사로부터 아들의 뇌에 다시 물이 차기 시작해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들의 상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과 같다는 것이다. 다시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축서사 총무스님인 혜산스님이 몸에 살이 붙으면 뇌에도 살이 붙을 것 같으니 한약을 먹여보라고 권하셨다. 담당의사에게는 비밀로 하고 한 달가량 보약과 먹거리를 챙겨주는 한편 더욱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을 불렀다. 어느덧 4주가 지나고, 재수술이 필요없을 만큼 호전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아들은 차츰 호전되어 지금은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하지만 기도를 하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법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의 사소한 일도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가 없어요. 저는 참 겁이 많은 사람인데, 이제 겁은 덜나요.(웃음)”
이제 가족들 얼굴 어디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거베라 꽃의 꽃말은 ‘신비, 풀을 수 없는 수수께끼’ 라고 했다. 오랜 고통의 터널을 지나 인생의 수수께끼를 부처님의 법으로 지혜롭게 풀어가는 가족들. 아름다운 가족의 마음이 만리향이 되어 세상을 가득 채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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