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무진시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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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여심 작성일07-02-25 21:48 조회3,413회 댓글0건본문
‘깨끗하여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진기한 보배로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의 11월 마지막 주, 영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서예작품전시회에서 김동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맑은 눈빛과 한일자로 닫힌 야무진 입매가 인상적이다. 한 시간여동안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과 함께 작품 감상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서예반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선생님께서 축서사 불교교양대학에서 서예를 가르치게 되기까지는 제주반점을 운영하시는 처사님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처사님은 수개월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선생님의 사무실에 들러 가벼운 인사와 함께 차 한 잔을 청해 마시다 오곤 하셨단다. 어지간하면 허락하실 만도 하건만,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선생님은 선뜻 수락하기가 어려우셨단다. 더구나 사제지간의 만남이란 그저 차 한잔 하고 헤어지는 일상의 만남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심사숙고 끝에 서예반을 맡으신 후, 과연 이 분들 중에서 몇 명이나 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셨단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얼마 되지 않아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 십상인데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이 하나 둘씩 중도에 그만두게 되면 남은 사람들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단 한 사람만 남더라도 끝까지 지도해주겠다’라는 약속을 미리 하셨단다. 아마 그 말씀에 수강생들이 많은 힘을 얻었으리라.
처음 서예를 시작하게 된 인연을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서예를 처음 접하셨을 때부터 남들의 서예를 하는 모습이나 글씨를 보고 있으면 마냥 좋고,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 하셨다고 한다. 더불어 성격이 폭발적이고 주관이 강해서 다른 이들과 잘 융화를 못하는 당신의 부족한 점을 다듬어야 되겠다는 수신(修身)의 마음과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직장생활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한계들을 서예를 통해 극복하고 나아가 동양에서 왕희지와 버금가는 서예가로 이름을 알리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으셨단다. 하지만 지금은 서예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만족하신다고 한다.
그간 붓을 잡으신 지 27년여 정도 되셨다는데 서예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또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붓은 일찍부터 잡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고 처음부터 정법(正法)으로 제대로 배워야 해요. 서예를 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면, 즉 나중에 창작단계에 들어가면 자신의 기와 예술 감각이 나와야 하는 데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면 권태기에 빠지기 쉬워요. 그 권태기가 열 번 이상은 오고 그걸 극복해야만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 낼 수가 있어요. 서예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 후 해야 되는데, 하다보면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에도 글을 쓰는데, 글이 잘 안 써져요. 그래도 계속 애를 쓰고 또 쓰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씨가 제대로 되는 거예요. 서예를 하다보면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돼요.”
비단 서예만은 아닐 것이다. 기도나 정진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마장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애를 쓰다보면 어느 순간 마장이 스스로 물러가고 애쓴만큼 성장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다듬고 향상시켜 나가는 과정들이 모여 인생이란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해가는 것 아닐까.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나 개인의 의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스승이다. 우리가 삶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스승은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로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또 얼마 전에 겪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며칠 전 밤 늦은 시각에 서예반 수강생 중 한 분이 다음 날 새로 문을 여는 가게의 간판 글씨가 필요하다며 급하게 부탁을 하셨단다. 이에 선생님은 전화를 끊자마자 직접 가서 돌의 크기를 재어온 후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쓴 글씨를 가져다 주셨단다. 좀 무리한 부탁이었겠다 싶기도 한데, 정작 선생님은 그렇게 조르고 부탁하는 마음이 참 순수하고 좋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선생님이 서예를 사사하신 분은 석개 김태균 선생님이시다. 오래전 결혼준비를 하실 때의 일인데, 신부집에 보낼 사주단자가 필요해서 밤 10시에 스승님 댁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스승님은 “야야... 좀 일찍 오지~” 하시면서도 새벽 두 시까지 글씨를 쓰고 또 쓰고, 일일이 풀칠까지 해서 만들어서 주시는데, 그걸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이쿠! 이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드셨단다. 늘 아낌없이 베푸는 스승, 그 고마움을 우리는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여기인(書如其人)’곧 ‘글씨는 그 사람’ 이라는 뜻이다. 글씨를 쓸 때는 한갓 흥미나 미적 창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글씨를 통해 마음을 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며 나아가 더 나은 인격을 형성하는 일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씨를 쓰려면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욕심을 버려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바른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서예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인지 여쭈어 보았다.“다들 뛰어난 글씨를 쓰려고 하지만, 순수한 글씨가 오히려 작품성이 더 좋아요. 필력이라든가 글씨체 같은 것은 시간에 비례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거기에는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하는만큼, 배운만큼 그대로 본인이 드러나도록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해서 써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글씨가 되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어요.”
이렇듯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시는 선생님의 글씨체에서는 부드럽고 정제된 느낌이 많이 드러난다. 서예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작품집. 작품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작 갖고 있는 작품이 몇 점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마지막 욕심은 어느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편안하고 티가 없이 맑고 깨끗한 작품을 만드는 것.
축서사 종무소에는 선생님께서 신년휘호로 써주신 심리무진시진보(心裡無嗔是珍寶,깨끗하여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진기한 보배로다)가 걸려있다. 작품을 볼 때마다 인터뷰하는 동안 보여주신 당신의 해맑은 웃음과 편안함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 초입의 11월 마지막 주, 영주시민회관에서 열린 서예작품전시회에서 김동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맑은 눈빛과 한일자로 닫힌 야무진 입매가 인상적이다. 한 시간여동안 선생님의 자상한 설명과 함께 작품 감상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서예반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선생님께서 축서사 불교교양대학에서 서예를 가르치게 되기까지는 제주반점을 운영하시는 처사님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처사님은 수개월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선생님의 사무실에 들러 가벼운 인사와 함께 차 한 잔을 청해 마시다 오곤 하셨단다. 어지간하면 허락하실 만도 하건만,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선생님은 선뜻 수락하기가 어려우셨단다. 더구나 사제지간의 만남이란 그저 차 한잔 하고 헤어지는 일상의 만남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심사숙고 끝에 서예반을 맡으신 후, 과연 이 분들 중에서 몇 명이나 남을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셨단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얼마 되지 않아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 십상인데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이 하나 둘씩 중도에 그만두게 되면 남은 사람들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단 한 사람만 남더라도 끝까지 지도해주겠다’라는 약속을 미리 하셨단다. 아마 그 말씀에 수강생들이 많은 힘을 얻었으리라.
처음 서예를 시작하게 된 인연을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서예를 처음 접하셨을 때부터 남들의 서예를 하는 모습이나 글씨를 보고 있으면 마냥 좋고,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 하셨다고 한다. 더불어 성격이 폭발적이고 주관이 강해서 다른 이들과 잘 융화를 못하는 당신의 부족한 점을 다듬어야 되겠다는 수신(修身)의 마음과 젊은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직장생활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한계들을 서예를 통해 극복하고 나아가 동양에서 왕희지와 버금가는 서예가로 이름을 알리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으셨단다. 하지만 지금은 서예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만족하신다고 한다.
그간 붓을 잡으신 지 27년여 정도 되셨다는데 서예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또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여쭈어 보았다. “붓은 일찍부터 잡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고 처음부터 정법(正法)으로 제대로 배워야 해요. 서예를 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면, 즉 나중에 창작단계에 들어가면 자신의 기와 예술 감각이 나와야 하는 데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면 권태기에 빠지기 쉬워요. 그 권태기가 열 번 이상은 오고 그걸 극복해야만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 낼 수가 있어요. 서예는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 후 해야 되는데, 하다보면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에도 글을 쓰는데, 글이 잘 안 써져요. 그래도 계속 애를 쓰고 또 쓰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씨가 제대로 되는 거예요. 서예를 하다보면 이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돼요.”
비단 서예만은 아닐 것이다. 기도나 정진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은 마장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애를 쓰다보면 어느 순간 마장이 스스로 물러가고 애쓴만큼 성장해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다듬고 향상시켜 나가는 과정들이 모여 인생이란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해가는 것 아닐까.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나 개인의 의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스승이다. 우리가 삶의 난관에 부딪쳤을 때 스승은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체득한 지혜로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또 얼마 전에 겪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며칠 전 밤 늦은 시각에 서예반 수강생 중 한 분이 다음 날 새로 문을 여는 가게의 간판 글씨가 필요하다며 급하게 부탁을 하셨단다. 이에 선생님은 전화를 끊자마자 직접 가서 돌의 크기를 재어온 후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쓴 글씨를 가져다 주셨단다. 좀 무리한 부탁이었겠다 싶기도 한데, 정작 선생님은 그렇게 조르고 부탁하는 마음이 참 순수하고 좋다며 환하게 웃으신다. 선생님이 서예를 사사하신 분은 석개 김태균 선생님이시다. 오래전 결혼준비를 하실 때의 일인데, 신부집에 보낼 사주단자가 필요해서 밤 10시에 스승님 댁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스승님은 “야야... 좀 일찍 오지~” 하시면서도 새벽 두 시까지 글씨를 쓰고 또 쓰고, 일일이 풀칠까지 해서 만들어서 주시는데, 그걸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이쿠! 이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드셨단다. 늘 아낌없이 베푸는 스승, 그 고마움을 우리는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서여기인(書如其人)’곧 ‘글씨는 그 사람’ 이라는 뜻이다. 글씨를 쓸 때는 한갓 흥미나 미적 창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글씨를 통해 마음을 다듬고 정서를 함양하며 나아가 더 나은 인격을 형성하는 일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씨를 쓰려면 마음을 안정되게 하고 욕심을 버려 바른 정신을 가져야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바른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서예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어떤 것인지 여쭈어 보았다.“다들 뛰어난 글씨를 쓰려고 하지만, 순수한 글씨가 오히려 작품성이 더 좋아요. 필력이라든가 글씨체 같은 것은 시간에 비례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거기에는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하는만큼, 배운만큼 그대로 본인이 드러나도록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고요히 해서 써야 해요.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글씨가 되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어요.”
이렇듯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시는 선생님의 글씨체에서는 부드럽고 정제된 느낌이 많이 드러난다. 서예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작품집. 작품집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작 갖고 있는 작품이 몇 점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마지막 욕심은 어느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편안하고 티가 없이 맑고 깨끗한 작품을 만드는 것.
축서사 종무소에는 선생님께서 신년휘호로 써주신 심리무진시진보(心裡無嗔是珍寶,깨끗하여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진기한 보배로다)가 걸려있다. 작품을 볼 때마다 인터뷰하는 동안 보여주신 당신의 해맑은 웃음과 편안함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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