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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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미 작성일07-02-25 21:45 조회3,640회 댓글0건본문
특별한 계획이나 약속이 없는 일요일엔 집 뒤에 있는 수리산에 올라갑니다. 근처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될 뿐 유명세를 타는 산이 아니어서 깨끗하고 번잡하지 않은 것이 혼자 걷기에 맞춤입니다. 2시간여를 걷다보면 당도하는 곳이 수리사.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라고는 하나 규모는 아주 작아 대웅전이 새로 지어진 것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 내 일상에서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동안 내 머리속에서 들끓던 갈등과 욕심들이 차분히 가라앉고 내 몸 구석구석에 쌓였던 어둡고 거친 먼지들이 어느정도 씻겨져 나가는 듯 합니다. 푸른 산기운을 담아 내려오는 발걸음은 그래서 가볍습니다. 한 생각에 빠져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던 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지요. 산길을 걸으며 하늘도 올려다 보고 잘생긴 나무들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을 부드럽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세상엔 참 고마운 일들이 많다고…
정해진 종교가 있는 집안이 아닌 이유로 어릴 적엔 교회도 나가보고 했지만 그저 막연히 불교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지요. 절에 다녀야 한다거나 불경을 공부해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친구를 따라 가입한 곳이 ‘부처님 나라’라는 컴퓨터 통신모임이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산사체험’이라는 문구에 끌려 여행을 갔다가 새벽예불의 장엄함에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나도 모르게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친구는,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참선은 왠지 어렵게만 느껴지고 염불은 낯설어 경전공부하는 모임 쪽으로 조금씩 참여하고 여행이나 산행길에 잠시 들르던 것이 전부였던 절에서 생활도 해보고 수계도 받으면서 조금씩 불자가 되어가는 듯 했지만 늘 중심에 다가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듯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백팔배를 빼놓지 않고 올린다는 사람들, 하루 한 시간은 꼭 앉아 참선한다는 사람들, 염불독송을 하는 사람들, 절에 자주 다니며 스님들과 가까이 지내거나 가족들 모두가 불자인 사람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더 깊어지곤 했지요. 부럽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내게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그건 기도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몰랐습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비는 건가? 그건 아닌것 같은데…그럼 뭐지? 그러던 중 같은 모임에서 활동하는 법우가 제안을 해왔습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49재일까지 매일 다라니3독을 하려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구요.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다라니독송은 45일을 넘겼고 그 후엔 금강경 사경으로 이어졌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와서 오후 8시가 가까워서야 돌아가는 생활에서 10번씩 반복해서 해야 하는 사경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사경하며 몰입되는 느낌이 좋아 1달여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만…하려는데 이번엔 능엄신주경독송을 하자고 했습니다. 잘 풀리지 않는 발음으로 또 한달 이상을 능엄신주경에 매달렸고 다음으론 매일 아침 금강경독송를 했습니다. 그렇게 겨울에 시작한 기도는 여름까지 계속 이어졌지요.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기도인 줄을 몰랐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특별한 형식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때까지도 몰랐던 것이지요.
매일매일 약속된 것 만큼 실행하고 모임의 게시판에 일기형식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어느날은 피곤함에, 어느날엔 게으름으로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약속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계속 이어졌고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보호받고 있다는 든든함까지…새롭고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듯 했구요. 아하, 이런게 기도의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법우에게 참 많이 고맙고 함께 해 준 이들에게도 그 고마운 마음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불교모임으로 이끌어 주었던 친구도 새삼 고마웠고 이 세상에 불교가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웠고 이 모든 것의 기본을 마련해 주신 부처님이 또한 고마워졌습니다. 다시금 일상생활에 쫓겨 규칙적인 기도를 하고 있지 못하지만 마음은 늘 기도하려는 것에 머물고 있음과 어렵고 멀게만 생각되던 금강경 외 경전들이 가깝게 다가서는 것도 즐거운 변화입니다. 매일 되풀이 되는 생활. 하루도 물흐르듯 고요히 지나가는 날은 없습니다. 불만과 갈등과 후회로 하루를 채워 넣고 피곤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마감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그렇게 쉼없는 삶에 숨쉴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발디딜 틈 없이 복잡한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되뇌이다 보면 마음속 불안이나 두려움이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바쁜 일과에 쫓기다가 잠시 시간이 나면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등을 써 보곤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거나 잠들기 전에 금강경을 독송해보곤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욕심이 작아지고 밉거나 억울하거나 좌절하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어쩌면 체념과 포기가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그보다는 집착을 버리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공부엔 발끝도 들이지 못하고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시작된 기도일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조금씩 불법에 다가가고 싶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고마워하며,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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