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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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담 스님 (유학사 주지) 작성일07-06-18 00:10 조회3,286회 댓글0건본문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신 후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구나’를 외치며, 불성을 지닌 완벽한 인격체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설파하고, 세상 만물 생명 깃든 것의 고귀함을 고요히 일갈하셨다.
그로부터 2천 5백 년이 흘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베푸신 진리의 향기는 한 점 퇴색됨 없이 삼라만상을 물들이고, 시공을 초월해 우리 삶의 좌표로 향을 더하고 있다.
온 천지가 꽃으로 장엄된 참 좋은 계절이다. 이름 모를 풀꽃도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고, 땅 속의 작은 벌레도 웅얼웅얼 함성을 토해내고 있으니,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품안은 이처럼 호기롭다. 그러하니 이 땅에 한 점 사람으로 살고 있음이 가슴이 울컥할 정도로 감사하기도 하거니와,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수행자로 사는 일 또한 감사함이 저절로 일어나는 시절이다.
올해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잔잔한 일부터 큰 일들까지 챙겨야 할 게 많다. 그 중에서도 노보살님들의 연등에 달 등표를 챙기는 것은 아주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가정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등이니, 당신들의 가족 이름이 붙은 등표를 다는 일은 노보살님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알뜰히 살펴서 실수가 없어야 하는데, 매년 한 두 명 정도 이름이 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되어 노보살님의 호통소리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등 곤욕을 치른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고 실수도 없어야 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는 예외 없이 이런 당혹스런 일이 반복되니 대책이 없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불자라면 누구나 부처님께 등을 공양하고자 마음먹는다. 부처님 가까이에 크고 환한 등을 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라, 제일 먼저 부처님 앞에 달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노보살들님의 소박한 욕심이나 애교로 보아 넘길 수만도 없는 일이다.
우리 절에는 연꽃보살이 있다. 가을이 시작되면 연잎을 준비했다가 연꽃 보살님에게 준다. 그러면 연꽃 보살님은 틈틈이 저녁으로 연잎을 꼬고 풀면서, 부처님의 탄신을 장엄하게 될 연등 준비에 정성을 쏟는다. 연등이 다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손가락이 아프도록 연꽃을 꼬아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연꽃보살은 그의 남편이 지어준 사랑스런 별명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연잎을 풀어주면서 아내에게 ‘연꽃보살’이라고 불러준단다. 그래서 일명 연꽃보살로 통하는 보살님은 해마다 연잎을 꼬아오는 담당이 됐다.
2월(음력) 초하루부터 시작하는 연등 운력에는 또 다른 신도들이 참여하는데, 스님들만큼의 실력은 아니어도 직접 연등을 만들어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가를 체험으로 알게 된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감동을 하는 신도들은 해마다 연등 운력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어느 위치에 등을 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이처럼 부처님 가까이에 연등을 달고 가족의 이름을 적어 넣어 복을 빌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아니라 부처님의 거룩함을 찬탄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화택(火宅)에서 분소(焚燒)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한량없이 자애로운 마음에 감사드리고 공경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뒤 부처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연등을 올리고, 거기에 식구들 이름을 적어‘부처님 감사합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바르게 살아감에 감사합니다’이런 마음으로 공양 올리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자세이자 마음이다. 그러할 때 부처님 오신 날은 정말 우리 모두에게 기쁜 잔칫날이 될 것이다.
2천 5백 년 전 왕자로 태어 나셔서, 보장된 앞날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가신 부처님을 단 5분만이라도 생각해보자. 그리고 오늘 내가 이 좋은 도량에서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맙고 복된 일인지도 생각해 보자. 모두가 함께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며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불자의 모습! 내가 다니는 절에서 꼭 필요한 신도가 되고, 내가 말없이 행하는 선행이 연꽃처럼, 연등처럼 향기가 되고 빛이 된다면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의 도량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위치에 연등 공양을 올리든 기쁨으로 밝히는 마음속에는 자비심만 가득할 뿐이다.
부처님 탄신을 봉축하는 다양한 행사로 불교계가 분주하다. 종단에서, 지역에서, 또는 내가 다니는 사찰에서 주최하는 봉축행사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는 동참의식도 부처님께 연등공양 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타 종교인들의 단합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의 조직성을 논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부지런히 불교에서 혹은 사찰에서 진행하는 일들에 동참하고 마음을 내어 협조를 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올해는 내가 다니는 절에 찾아가 대청소는 물론 도량청소부터 등줄 치는 운력까지 직접 참여해보자. 사찰은 법등을 밝히는 소중한 도량이며 진리의 당체이신 부처님이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앉아 계신 곳이다. 그곳을 정갈히 하고 아름다운 연등으로 장엄하는 일에 넉넉한 마음으로 동참한다면, 그 일은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고 공경하는 데 있어 그 어떤 것에 앞서는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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