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속에서 만난 부처님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07-11-21 14:53 조회3,388회 댓글0건본문
이상문 (경기도 안양시)
“피고 이상문!”
“네.”
“징역 10년에 처한다. 피고는 강도 상해 및 특수 공무집행 방해죄로 공무를 집행하던 경찰관에게 의식불명의 중상을 입힌 자로서 국가의 치안과 공권력에 막대한 손실을 가한 바, 사회의 안정과 치안 유지를 위해 사회와의 장기적인 격리가 불가피하여 위와 같이 선고한다.”
죽음과도 같은 중형(重刑)선고였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오직 죽음만을 생각했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하룻밤 꿈만 같았다. 아니, 하룻밤 꿈이길 간절히 기원했다. 하지만 양손에 채워진 은빛 수정(수갑)은 지금의 현실이 꿈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법무부 요시찰이란 이름으로 24시간 채워진 은빛 수정은 나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했고 면회 오시는 어머님과 아내를 통곡하게 만들었다. 오열하시는 어머님과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목을 조르는 듯 한 느낌에 숨이 막혔다.
나의 머릿속엔 오직 죽음의 생각뿐 그 무엇도 없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죽음의 생각과 함께 36년의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3년여의 군 생활,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사회의 첫 발걸음,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 귀여운 아들….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로웠고 행복했다. 나는 당시의 이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영원히 행복하리라 믿었던 나의 가정에도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IMF의 경제 위기, 운수 사업의 경영난, 부도….
갑자기 찾아온 큰 시련에 나는 몹시 당황했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술과 성적 쾌락으로 괴로움을 달랬다.
하루하루 나의 머릿속엔 헛된 망상으로 가득 차게 됐고 일확천금(一攫千金)만이 지금의 시련을 극복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결국 도박과 경마에 손을 대 가정의 생계 수단이었던 특수 화물차와 전셋집마저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하던 나의 가정에는 근심과 걱정만이 남게 됐고 아내와의 다툼은 커져만 갔다.
인생의 실패자란 생각과 무능한 남자라는 자책감은 나를 더욱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내 가정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나는 오직 ‘돈’만이 잃어버린 나의 행복을 되찾아 줄 것이라 믿었고 이러한 헛된 망상들은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어리석은 망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내게, 뒤바뀐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났고 나의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내 자신을 설득했다. 내 가정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머릿속에 가득했던 헛된 망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뒤바뀐 한 생각(一念)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이웃에게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급기야 검거 중이던 경찰관을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뜨리는 용서 받지 못할 중죄(重罪)를 짓고 말았다.
0.8평의 콘크리트 무덤과도 같은 싸늘한 독방에서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숨 막히는 이 순간들을 피할 수만 있다면 이 목숨 기꺼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양손에 채워진 은빛 수정은 내 목숨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절망’ 그 자체의 삶이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내가 있지만 내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죽음과도 같은 어둠의 터널 속을 헤매고 있던 나에게 부처님을 만나는 인연(因緣)이 다가왔다. 아니, 부처님의 자비광명(慈悲光明)은 항상 나를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단지 나의 어리석음과 무명(無明)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했을 뿐….
법무부 요시찰인 나를 유심히 관찰하던 인천 구치소의 김영호 부장님께서 내가 절망 속에서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 청담 스님의 수행록인 <마음>이란 불서를 건네 주셨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 주셨고 36년 동안 믿어왔던 행복의 의미 또한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행복이 물질적 욕망과 명예, 오욕락에 있다고 믿었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집에서 살며 더 좋은 차를 타는 것만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행복이 아니었다. ‘감각적 쾌락’이었다. 내가 굳게 믿어왔던 행복이 감각적 쾌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는 죽음과 같은 절망과 고통이 필요했던 것 같다.
청담 스님의 수행록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진리(眞理)에 무지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과거를 알고자 하느냐? 지금 네가 받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알고자 하느냐? 네가 지금 짓고 있는 것이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깨어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모든 행·불행은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인과(因果)의 법칙은 내가 왜 이 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뼛속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 백천만년을 살아도 만나기 어렵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는 이렇게 만났다.
오직 죽음만을 생각하던 나에게도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고 선지식들의 말씀과 불서, 참선 수행을 통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가며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글은 현대불교신문 신행수기 공모 당선작 가운데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