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필리핀 마닐라에서 더욱 깊어지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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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영조(부산불교방송 편성제작… 작성일07-08-10 14:51 조회3,515회 댓글0건본문
자신이 바라는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 보편적인 기도의 개념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기도는 그 단계를 뛰어 넘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필리핀에서 포교를 하시는 법관스님은 그렇게 기도를 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2006년 11월 22일, 마닐라에서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피델 라모스 전대통령 등 2,500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구찌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구찌 평화상은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인데, 이 자리에서 필리핀의 유일한 한국 스님인 불국사 필리핀 포교원의 법관스님께서 인도주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았습니다. 법관스님과 포교원 신도들이 필리핀에서 한 봉사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3월에 제가 필리핀에 가서 스님과 신도들의 활동을 취재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냈기에 그곳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불국사 문중인 법관스님은 90년대 중반에 우연히 필리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난 속에서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필리핀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고,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120곳이 넘는데 반해 한국 절은 한곳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교포들이 한국 절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스님은 필리핀에 내 한 몸을 던져 불교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발원을 한 것인데, 포교원을 열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먼저 해외 포교에 대해 정보가 전무했고 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5년 이상 걸렸고, 우여곡절 끝에 스님의 부족한 사비를 털어서 서울로 치면 안양이나 부천 정도 되는 마닐라 외곽 시장터의 허름한 건물에 간신히 세를 얻었습니다. 그러고는 스님은 발로 뛰면서 포교에 나섰는데, 처음에는 타종교인의 방해가 대단했었고, 현지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던 것이죠.
사실 필리핀의 한국교민들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겠냐는 마음에 흐트러진 생활을 하거나 방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아시아의 모범 사례로서 한국인을 좋아하던 필리핀 사람들도, 일부 한국인이 저지르는 불미스런 사고를 여러 건 접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법관스님은 외국에 나와 있더라도 자기 마음을 놓지 않도록 신도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 기도하는 마음을 이웃을 향한 자비의 실천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천주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엘시가체 재활원을 찾아 신도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합니다. 팔과 다리가 뒤틀리고 의사 표현도 할 수 없는 정신지체 장애인. 아마 가보지 않은 분들은 상상을 못하실 겁니다. 한 신도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지옥이 이보다 더할까 싶더라는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격리된 외로운 그들. 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고, 휠체어에 태워 바깥바람도 쐬어 줍니다. 또 밥도 먹여 줍니다.
그들에게는 스님과 신도들이 지장보살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매달 한 번은 피나투보 지역에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해도 마닐라에서 차로 6~7시간이 걸리는 피나투보 지역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고산지대인데, 여기에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전기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고, 옷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조상들이 살아왔던 대로 과일을 따 먹고 살며, 가끔씩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물물교환으로 쌀을 구해 어쩌다 밥을 한 번 해 먹을 뿐입니다. 그러니 평생 의사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그들이지만 필리핀 정부는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스님과 신도들은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런 소수민족이 사는 곳에 한국인 치과의사나 한의사 자원봉사자와 함께 달구지를 타고 갑니다. 그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옷가지를 나누어 주고, 생활 용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고 마닐라로 돌아오면 밤 12시나 새벽 1시가 넘기 일쑤이고 모두가 녹초가 되어 버립니다.
한 의사는 취재 중에 그런 말을 하더군요. 처음 갈 때는 우리 절 근처에도 도와줄 사람들이 많은데, 구태여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두 번 따라가 보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돕겠는가 하는 스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도와주려면 절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신도들 중에도 돈을 모아 쾌적한 곳에 한국식 절부터 짓자고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러나 스님은 자기 절은 뒷전이고, 그 무더운 필리핀에서 자기 방에는 에어컨도 없이, 주위의 소음에 밤에는 잠도 편히 자기 힘든 낡은 포교원을 지키면서 발품을 팔아 이웃을 도와줄 생활용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피나투보를 다녀오면서 문득 이렇게 고생하면서 도와주는 것에 소수민족들은 고마워하는 마음이나 있을까 싶어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그러시더군요. ‘저들은 주니까 받을 뿐이고,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한국 불자란 것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몰라서 그렇게 살아왔지만, 우리라도 알게 되었으면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우리는 부처님의 법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대의 나라 필리핀의 유일한 한국 스님인 법관스님과 신도들은 그렇게 모든 중생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법관스님의 기도가 아닐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떠신가요? 모든 중생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법관스님의 기도.그런 기도를 하는 불자가 더욱 많아져야 이 세상이 정토가 되지 않겠습니까?
필리핀에서 포교를 하시는 법관스님은 그렇게 기도를 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2006년 11월 22일, 마닐라에서는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과 피델 라모스 전대통령 등 2,500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구찌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구찌 평화상은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상인데, 이 자리에서 필리핀의 유일한 한국 스님인 불국사 필리핀 포교원의 법관스님께서 인도주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았습니다. 법관스님과 포교원 신도들이 필리핀에서 한 봉사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3월에 제가 필리핀에 가서 스님과 신도들의 활동을 취재해서 특집방송을 내보냈기에 그곳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불국사 문중인 법관스님은 90년대 중반에 우연히 필리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난 속에서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필리핀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고,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120곳이 넘는데 반해 한국 절은 한곳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교포들이 한국 절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스님은 필리핀에 내 한 몸을 던져 불교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발원을 한 것인데, 포교원을 열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먼저 해외 포교에 대해 정보가 전무했고 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5년 이상 걸렸고, 우여곡절 끝에 스님의 부족한 사비를 털어서 서울로 치면 안양이나 부천 정도 되는 마닐라 외곽 시장터의 허름한 건물에 간신히 세를 얻었습니다. 그러고는 스님은 발로 뛰면서 포교에 나섰는데, 처음에는 타종교인의 방해가 대단했었고, 현지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던 것이죠.
사실 필리핀의 한국교민들도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겠냐는 마음에 흐트러진 생활을 하거나 방탕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아시아의 모범 사례로서 한국인을 좋아하던 필리핀 사람들도, 일부 한국인이 저지르는 불미스런 사고를 여러 건 접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꼭 그런 것 때문은 아니겠지만, 법관스님은 외국에 나와 있더라도 자기 마음을 놓지 않도록 신도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그 기도하는 마음을 이웃을 향한 자비의 실천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천주교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엘시가체 재활원을 찾아 신도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합니다. 팔과 다리가 뒤틀리고 의사 표현도 할 수 없는 정신지체 장애인. 아마 가보지 않은 분들은 상상을 못하실 겁니다. 한 신도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지옥이 이보다 더할까 싶더라는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격리된 외로운 그들. 그들에게 목욕을 시켜주고, 휠체어에 태워 바깥바람도 쐬어 줍니다. 또 밥도 먹여 줍니다.
그들에게는 스님과 신도들이 지장보살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매달 한 번은 피나투보 지역에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해도 마닐라에서 차로 6~7시간이 걸리는 피나투보 지역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고산지대인데, 여기에는 많은 소수민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전기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고, 옷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조상들이 살아왔던 대로 과일을 따 먹고 살며, 가끔씩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물물교환으로 쌀을 구해 어쩌다 밥을 한 번 해 먹을 뿐입니다. 그러니 평생 의사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그들이지만 필리핀 정부는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스님과 신도들은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런 소수민족이 사는 곳에 한국인 치과의사나 한의사 자원봉사자와 함께 달구지를 타고 갑니다. 그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옷가지를 나누어 주고, 생활 용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고 마닐라로 돌아오면 밤 12시나 새벽 1시가 넘기 일쑤이고 모두가 녹초가 되어 버립니다.
한 의사는 취재 중에 그런 말을 하더군요. 처음 갈 때는 우리 절 근처에도 도와줄 사람들이 많은데, 구태여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두 번 따라가 보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돕겠는가 하는 스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도와주려면 절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신도들 중에도 돈을 모아 쾌적한 곳에 한국식 절부터 짓자고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러나 스님은 자기 절은 뒷전이고, 그 무더운 필리핀에서 자기 방에는 에어컨도 없이, 주위의 소음에 밤에는 잠도 편히 자기 힘든 낡은 포교원을 지키면서 발품을 팔아 이웃을 도와줄 생활용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피나투보를 다녀오면서 문득 이렇게 고생하면서 도와주는 것에 소수민족들은 고마워하는 마음이나 있을까 싶어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그러시더군요. ‘저들은 주니까 받을 뿐이고,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한국 불자란 것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몰라서 그렇게 살아왔지만, 우리라도 알게 되었으면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우리는 부처님의 법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열대의 나라 필리핀의 유일한 한국 스님인 법관스님과 신도들은 그렇게 모든 중생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법관스님의 기도가 아닐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떠신가요? 모든 중생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법관스님의 기도.그런 기도를 하는 불자가 더욱 많아져야 이 세상이 정토가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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