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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아내의 만년위패를 축서사에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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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원철 작성일07-08-10 14:49 조회3,8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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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히 만나 결혼하기까지 8년이나 뒷바라지해준 아내가 고마워서 마흔이 다 되어 떠나게 된 신혼여행은 조금 무리를 해서 호주로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중 나온 가이드는 호주냄새를 물씬 풍기는 시원하면서도 수수한 차림의 위압적이리만큼 다부진 몸을 가진 호남이었습니다.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해서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호주는 소문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게다가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니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가이드 덕분에 여행은 더욱더 즐거웠는데, 물개처럼 바다에 뛰어들더니 잠깐사이 손바닥만한 전복 여덟 개를 따서 아내 앞에 내밀며 “남자를 대표해서 8년을 기다려준 감사의 선물을 드립니다”라고 말해 아내를 행복의 눈물바다에 빠뜨렸습니다. 또 라면이 먹고 싶다며 칭얼거리는 아내를 위해 잘 끓인 라면을 호텔 룸서비스로 보내주어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비행학교 학생이었던 가이드 덕분에 4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시드니의 아름다운 야경을 내려다보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정말 가이드를 잘 만난 덕에 생애 최고의 7일간의 꿈같은 신혼여행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출국하는 날, 가이드와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너무 고맙기도 하고 돈이 궁한 유학생 처지를 모르지 않는 터라 사례비를 좀 넉넉하게 넣은 봉투를 건네주고 출국장을 나서려는데 헐레벌떡 쫓아온 가이드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경비는 이미 여행사에서 지불했는데요?” “그게 아니라, 너무 고마워서 팁으로…” “신혼여행이 처음이라 잘 모르시나본데요. 이정도면 됩니다”라고 하더니 지폐 한 장만을 꺼내곤 다시 봉투를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3년 전, 사랑하는 아내는 암으로 저의 곁을 떠났습니다. 아내와의 이별을 겪으면서 뒤늦게 불법을 만나게 되었고 수행법을 배우기 위해 조계사 간화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축서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와본 축서사는 역시 선찰(禪刹)답게 정갈함과 청량함이 배어나오는 아름다운 절이었고 무여 선사님은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대도인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서 환영인사를 하시며 절 소개를 해주시는 스님을 멀리서 바라보는데 “아~” 18 년 전 그 가이드였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는 체를 하면 출가하신 분께 혹시 누가 될까싶어 반가운 인사도 하지 못하고선 철야 참선정진 내내 아내를 그리워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회향식 때 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시며 자기는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는 행운아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실 때는 정말 스님이 잘되셨다싶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곤 축서사에서 만년위패를 봉안한다는 것을 알고 바로 아내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좋은 절, 좋은 스님들이 계신 곳. 그리고 그런 스님들이라면 불법세계로 잘 안내해 주실 것이라 확신하고 사별 후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연인 것 같습니다. 자주 가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절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스님은 정말 그대로시더군요. 다음에는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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