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선으로 더위를 잊고 선정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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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련 작성일07-08-10 14:47 조회4,123회 댓글0건본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 했다. 고대 서양의 델포이 주민들은 아폴론 신전의 지하에서 발견된 ‘성스러운 돌’을 옴파로스(Omphalos)라고 불렀다. ‘대지의 배꼽’ 혹은 ‘세계의 중심’이란 의미에서다. 세계축(Axis Mundi)이 통과하는 장소로서 우주의 여러 영역 - 죽은 자들의 세계(地下),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地上), 신들의 세계(天上)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양심의 회복과 새로운 탄생을 보증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불교도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세계의 중심’은 어디일까? 그것은 이름하여 “보리도량”이다. 본생경에는 과거 수많은 부처님들께서 성도하시던 순간의 일을 한결같이 특정한 ‘나무 아래에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핍팔라나무(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고, 다른 기록에 의하면 아득한 미래에 미륵보살은 용화수 아래에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어 붓다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푸르고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넓게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나무 밑이 가장 이상적인 보리도량으로 꼽혔음을 알게 된다.
부왕을 따라 시찰에 나선 어린 싯달타는 산 것이 산 것을 잡아먹는 존재의 실상을 목격하고 깊은 상념에 빠졌었다. 태자는 조용히 물러나와 선정에 들었고, 등 뒤의 나무는 오랜 시간동안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태자를 지켜주었다. 그 이름조차 예사롭지 않은 잠부나무… 보살이 나무 아래에 정좌하는 순간 나무는 그저 나무가 아니고, 옴파로스! ‘세계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는 우주목(宇宙木)이 되어 어린 명상가를 4선(四禪)까지 끌어올렸다. 깊이와 영역을 알 수 없는 뿌리들, 견고하고 탄탄한 줄기, 무한을 향해 벋어나간 굵고 가는 가지들과 바람을 타고 유영하듯 흔들리는 무수한 잎사귀들… 상승목(上昇木)으로서, 무상보리에의 도달과정을 가장 완벽하게 형상화 하고 있는 것이 나무다. 나무의 견고하고 탄탄한 줄기는 어떠한 공격과 유혹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불멸하는 붓다의 몸을 표상한다. 하여 불교만큼 나무의 특성을 정확하게 통찰한 종교도 다시없다.
나무 앞에서 눈을 감고 심연의 밑바닥에서 이글거리는 불칼을 들어 올려 나무의 껍질조직을 섬세하게 벗겨내 보시라. 치솟아 오른 거대한 물기둥, 우주의 심장으로 빨려가듯 거꾸로 솟아올라 공중으로 흩어지는 수액(樹液)의 미궁(迷宮)을 보게 될 것이다.
성장의 열정으로 치열한 여름이다. 에어컨 따윌랑 저만치 물리고 짙푸른 녹음 아래 나무선(禪)에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또 누가 알겠는가? 사선은 고사하고서라도 욕계의 모든 악을 여의어 오로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초선(初禪)의 경지에는 이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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