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씩 넘기는 그 걸음으로 삶은, 읽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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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5-21 13:17 조회2,970회 댓글0건본문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페허라고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달음에 목표에 이르려는 욕심이 만든 페허가 적나라 합니다. 헤어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욕망이, 세상을 바삐 살게 합니다. 잘 다듬어진 직선도로를 고속주행하는 것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교통수단입니다.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잘 드러납니다. 빠른 것에 몸을 실으면 아주 멀리 있는 것만 볼 수 있게 됩니다. 빨리 달릴수록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길가 가로수 풀섶이 차창에서 제일 먼저 지워져버립니다. 바삐 살면 좋은가? 찬찬히 살피고 기다려가며 살면 안 되는가?
볼 것을 보고, 만날 것을 만나고, 누릴 것을 누리면 안 되는가?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걸으면서 살피면, 살아 있는 것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길녘에도 풀섶에 여치 있고 오줌싸개 있습니다.
- 소리를 주제로 한 이철수 판화산문집 『소리 하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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