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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刹那와 겁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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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2-22 17:04 조회6,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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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刹那와 겁劫

 

                                                                           선오 스님 (대전 만불선원 주지)

 

불교에서 시간의 개념은 가히 정의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겁(kalpa)처럼 긴 시간이 있는가 하면 찰나(kasana)처럼 짧은 시간도 있기 때문입니다.

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한 시간 개념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겁을 설명할 때 겨자씨나 반석을 동원하여 겨자겁(芥子劫) 또는 반석겁(磐石劫)이라 합니다.

한 변이 일 유순인 입방체로 된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그것을 100년에 1개씩 꺼내서 다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 합니다. 일 유순은 약 1백리 정도의 길이를 말합니다. 또는 한 변이 일 유순인 입방체의 큰 바위가 있는데, 백년에 한 번씩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옷이 스쳐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곱한 시간을 아승지겁이라 합니다. 갠지스 강가에 있는 모래알의 수만큼 많은 시간,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시간이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개념입니다.

이와 반대로 찰나는 극히 짧은 순간을 말합니다. 역시 이것을 측량하기란 범부의 일 밖입니다. 그 짧기가 현대의 시간법으로 계산해 보면 75분의 1초 정도 된다고 하니, 살아있으면서도 감지할 수 없는 최단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설명하는 최장(겁)과 최단(찰나)의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겁이라는 긴 시간은 끊임없이 생사의 고통을 받고 윤회의 바퀴를 굴리면서 과보를 받고 있는 중생의 삶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찰나는 우리의 인생살이가 겁에 비한다면 참으로 번갯불보다 빠르고 순간적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상한 우리의 삶의 본질을 가르쳐 주고 또 집착하는 삶, 욕심 부리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살이는 고작해야 100년이 채 못 됩니다. 아승지겁에 비하자면 극미진의 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많은 과오를 범하기도 하고, 또 악업을 짓기도 하며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열심히 정진하고 공부해서 윤회의 바퀴를 멈추게 하는 일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겁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생사의 고통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번개보다 빠르고 숨 한 번 내쉬는 것보다 짧은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상한 시간, 찰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100년도 짧은 세월인데 하물며 하루하루, 한 달, 일 년은 얼마나 짧은 시간이겠습니까? 탐진치 삼독에 젖어 업장을 두껍게 하는 일로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의 반연을 닦아내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살핀 뒤, 가족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아량을 키워야 합니다. 자비와 보시를 베풀고, 지혜와 공덕을 쌓는 일에 신심(身心)을 써야 합니다. 찰나 찰나 마다 이러한 삶이 연속된다면 무량의 겁 또한 이와 같아서 행복의 문은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뚱뚱했는지, 아버지가 냉장고 문에 테이프를 붙여 놓고 먹는 것을 자제시킬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 아가씨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외모에 관계없이 모두들 좋아해 주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이 아가씨에게 첫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같은 학교 선배였는데, 문제는, 그 아가씨의 친구도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선배는 끝내 친구를 선택했는데, 그 결과의 원인은 뚱뚱한 아가씨 외모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상처를 받은 그 아가씨는 그때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무서우리만치 자신에게 집중하고 주위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유혹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1년 쯤, 살이 빠진 그 아가씨는 마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가 된듯이 눈부시게 예뻐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선배를 보았을 때, 그는 더 이상 아가씨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외모 중심의 세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이루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면, 쇠를 녹일 것 같은 정열과 의지로 실천하는 실천력을 강조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수행하고 공부하는 하는 일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외부의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신심을 증장시켜나가는 일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확연히 넓어지지 않을까요. 그러한 삶이 찰나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는 방법이며, 향기로운 겁의 시간을 지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될 것입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우리는 자신의 근기와 처지에 맞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일로매진 합니다.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품는 일은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비록 삼일 만의 결기로 끝날 만큼 실천력이 부족하더라도, 날마다 새해 같은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하면 일 년이 새롭겠지요. 나아가 찰나와 겁이 모두 새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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