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자비, 부처님의 대자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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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5-21 17:29 조회3,975회 댓글0건본문
우리들의 자비, 부처님의 대자대비
유동호 (광동중 교법사·전국교법사단 단장)
이미 오신 부처님, 우리가 가서 뵈어야 하니
부처님이 오셨습니다. 기쁘게 맞이해야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하신 분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존귀하신 분이라면 ‘잘’ 맞이해야 할지언정 굳이 ‘기쁘게’ 맞이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즐겁고 만족스런[喜足] 도솔천의 나날마저 뒤로 하고 이 탁한 사바에 오시어 우리 모두를 편안케 하시고자[三界皆苦 我當安之] 평생을 몸 바친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가야할 길, 가야할 곳을 밝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조차 넘어선 흔들림 없는 행복, 즉 열반에의 길을 잘 가리켜 주시는 위없는 스승(無上師)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자비(慈悲), 중생을 향한 한결같은 우정
부처님께 나아가면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당신의 마음, 즉 자비의 힘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비(慈悲)는 애초 자비희사(慈悲喜捨)에서 떨어져 나온 말입니다. 자비희사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한 삶에 꼭 필요한 최선의 마음가짐이라며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덕목입니다.
흔히 사랑으로 풀이되는 ‘자’(慈, maitri)는 본래 ‘우정’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이요 꽃 한 송이 돌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복된 삶을 위한 나의 벗으로 받아들이란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갖춰지면 주변의 슬픔(悲)과 기쁨(喜)은 자연스럽게 나의 슬픔과 기쁨이 됩니다. 자신의 희비를 함께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에게는 누구나 친애의 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짓밟으면서 자신의 출세와 영화를 도모하는 삭막한 생존 경쟁의 현실 앞에서 그러한 마음은 수시로 배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어.”라는 원망과 “너 같은 인간을 그렇게 대한 내가 잘못이지.”하는 후회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곤 합니다. 그토록 훌륭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속절없이 퇴전(退轉)의 위기에 내몰리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사’(捨)의 마음입니다. ‘사’(捨)는 내 기대에 어긋나는 주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의미합니다. 마치 숲속의 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것처럼, 나를 실망케 하고 분노케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휘둘리지 않고 한결같은 사랑(慈)을 품은 채 담담히 지켜봐 주는 마음입니다.
위의 마음들을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합니다. 한두 명의 사람에게, 어쩌다 한두 번 일으켜야 하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한없이 지녀야 하는 마음이란 뜻입니다. 행복한 삶을 부르는 최선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비(大悲), 귀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부처님의 마음
그렇다면 자비희사의 마음이 과연 부처님의 마음일까요?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비희사는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삶과 죽음의 세상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고자 하면 지녀야 할’ 마음으로서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비희사의 마음은 삶의 허망함과 죽음의 고뇌까지는 벗어나게 해 줄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대자대비’(大慈大悲)라 하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털끝만한 마음조차 그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을 바퀴 돌며 온갖 괴로움에 힘겨워하는 중생들을 향한 순수하고도 애틋한 연민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대자대비 중에서도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대비’(大悲)입니다. 오직 부처님만이 가졌다는 열여덟 가지의 덕(18不共法)에도 ‘대비’(大悲)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에게 중생은 함께 행복을 추구해야 할 동반자(벗)라기보다는, 그 고통을 보노라면 너무나 슬퍼 모든 것을 제쳐두고 구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런 부처님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부모의 사랑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우리들을 불자(佛子)라 하신 까닭이 짐작됩니다. 예경하지 않을 수 없고, 공양 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신명을 다해 귀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성한 열매도 작은 씨앗으로부터 비롯되듯이 부처님의 큰 공덕도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득한 옛날 내가 범부였을 때, 나는 지옥에서 수레를 끄는 고된 형벌을 받고 있었다. 내 앞에서 수레를 끌던 사람이 지쳐 쓰러지자 지옥의 간수는 채찍으로 마구 때렸고, 그는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온갖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불쌍한 생각에 나는‘간수님, 내가 대신 수레를 끌 테니 그 사람을 조금만 쉬게 해 주십시오’ 부탁하였다. 화가 난 간수는 쇠창으로 내 목을 찔렀고, 나는 그 때의 자비심으로 인해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일으킨 자비심이었고, 그 이후로 보살의 길을 걸어 이렇게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 『대방편불보은경』
이러한 부처님의 고백은, 누구라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연민의 마음, 하루하루의 삶에서 수 없이 만나는 작은 사랑의 마음이 바로 부처님 되는 마음, 부처님 오시는 길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고야 말 부처님의 아들딸인 우리 또한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그와 같은 작은 사랑을 끊임없이 퍼뜨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오신 부처님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 오시게 하는 길입니다. 한없는 자비심으로 항상 우리 곁에 머무시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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