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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앎이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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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5-21 13:47 조회3,0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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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앎이란 무엇입니까?

객승이 물었다.

“저는 반평생 동안 학문을 닦아왔습니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언교(言敎)를 섭렵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마주하면 언제나 늘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자극에 초연하지 못하고 애증(愛憎)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나는 말했다.

“그대의 앎을 개괄적으로는 설명하기는 했지만 핵심을 찌르지는 못했습니다. 앎에는 영지(靈知)도 있고, 진지(眞知)도 있으며 망지(妄知)도 있습니다. 영지는 바로 도(道)이고, 진지는 곧 오(悟)이고, 망지는 즉 문자로 아는 것입니다.

앎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두 같지만 나눈다면 하루와 영겁(永劫)처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이치는 헤아려 보지 않고, 대충 알고 허망한 집착을 내고 시비를 일으켜 도의 근원을 흐려 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매몰시켜 버립니다.

배휴가 말한 것처럼 ‘혈기가 있는 생명체에게는 반드시 앎이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앎은 다 똑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영지를 말한 것입니다. 영지는 범부와 성인, 미혹과 깨달음에 관계없이 조금도 차이가 없는 앎입니다. 이것은 본래부터 마음 바탕에 넉넉히 갖추어진 것으로서 더하거나 덜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엄경에서 ‘일체의 법이 마음에 상즉(相卽)한 자성(自性)임을 알았다면, 지혜의 몸을 성취하는 것이 다른 깨달음에 의한 것이 아니다’고 한 것과 같으며, 원각경에서 ‘헛꽃(空華)인 줄 알았다면 윤회가 없으리라’ 한 것과 ‘허깨비인 줄 알고 그래도 떠나면 방편을 쓸 필요가 없다’고 한 것과 다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진지(眞知)는 바로 오입(悟入)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구름이 활짝 걷혀서 사량분별을 뚝 끊고 알음알이를 내지 않기를 마치 무슨 일을 오랫동안 잊었다가 문득 기억해 내듯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해탈하여 모든 것이 다 진실해집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 나머지는 결코 옳을 리가 없습니다.

또 원각경에서 ‘중생은 아는 것이 장애[解]가 되지만 보살은 깨달음[覺]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세 중생이 성도하기를 바라거든 깨달음[悟]을 구하지 마라. 그것은 다문(多聞) 만을 더하고 아견(我見)만을 키울 뿐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망지(妄知)를 통해서 깨달으려는 것을 통렬히 지적해 한 말입니다.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고 성품을 밝히는데 종일토록 수많은 변론으로 결론에 도달하려는 것이 바로 이 망지입니다. 이것은 따져볼 것 없이 이미 그 이전에 잘못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께서는 설산(雪山)에서는 깨달은 그림자만을 보이셨고, 최후로 대중 앞에서 꽃 한 가지를 들어 깨달은 이치를 나타내셨습니다. 조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서로 동일하지 않았으나 가까이 하면 마치 불무더기와 같았고, 태아(太阿)의 검처럼 날카로웠으며 우레와 같이 우렁차고 독약같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어묵동정(語默動靜)하는 사이에 끝내 바느질한 흔적도 지름길도 용납하지 않은 데는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종문(宗門)에서는 깨달음의 자취를 찾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법진(法塵)이라고 비난했고, 견해의 가시라도 배척하였습니다.

종문에서 이렇게 한 것은 미(迷)와 오(悟)를 둘 다 잊어버리고 신령한 근원에 젖어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혹 이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걸핏하면 허망을 드러내는 것은 마치 봉사가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을 나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길을 밝히는 효과가 없을뿐더러 계속 횃불을 들고 있다가는 손마저 태우게 될 것입니다.

나 또한 진지(眞知)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으로서 망지(妄知)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내 자신을 경책했을 뿐입니다.“

- 천목 중봉스님의 ‘산방야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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