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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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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8-09 17:40 조회3,2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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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

법안심_서울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릴 때부터 종종 아침밥을 지어야 했다. 육남매 형제 중 언니가 두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귀가 밝았던 나는 새벽기도를 떠나는 엄마의 일을 전수 받아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통하여 육남매 우리 형제들은 당연한 것처럼 부처님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실천수행을 보고 자란 나는 아이들에게도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경제적인 부담감을 감수하고 큰아이를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 부속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게 되었다.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한 법당과 불자 교사들로 이루어져 있어 마음속으론 너무 흡족했다.

나는 곧 어머니들의 모임인 연화어머니회에 가입하였고, 여러 어머니들의 추천을 통해 1학년 간부생활을 벅찬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조계사 비구니스님의 가르침과 일 년에 한 번씩 봉행하는 수계법회, 찬불가, 반야심경 암송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참 불자로 거듭났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김천 직지사로 수련회를 가게 된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다른 어머니의 부러움을 사며 지도 선생님과 함께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회원인 아이들을 인솔하여 가게 되었다.

팔월의 무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는 캠핑과 산행, 강의, 놀이 등에 아이들이 적응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지쳐가는 아이들을 위해 한 명 한 명씩 목욕을 시켜주며 무더위를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밤에는 화장실 가는 길에 함께 가주랴, 엄마 보고 싶다며 보채는 아이 달래랴, 바지에 실례하는 아이 신경 쓰랴, 잠자리가 바뀌어 잠 못 이루는 아이 재우랴, 산채 음식이 맞지 않다며 먹지 않는 아이 구슬려 음식 먹게 하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온밤을 하얗게 새워야 했으니.

그러나 피곤한 몸과 마음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이렇게 힘든 경험을 하고 돌아가면 아이들이 다시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 같아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묘안을 짜내어야 했다.

행자스님들의 시장보기를 도움 받아 야채튀김, 떡볶이, 김, 깍두기, 김치, 카레, 자장 등 기발한 음식을 만들고 간식으로 옥수수, 감자, 수박, 자두 등을 잘 챙겨 먹였다. 공양주 보살님께서는 “공양주 생활 20년에 떡볶이는 처음 해 본다”고 말해 우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은 특별히 내 아이처럼 포근히 안아주고 옷도 갈아입히고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그때서야 표정이 달라지고 한층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했던 연화어머니회 회원들은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과 선생님 식사 챙기기, 수업도구 만들어 돕기, 뒷청소 등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누우면 다리에 알이 베기고 엉덩이가 아파서 신음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잠깐 눈 붙이다보면 새벽예불 시간이 되고, 예불 후에 백팔배를 올리니 내 몸 이겨내기에 한계가 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약이 있었으니 바로 직지사 송차(솔잎차)였다. 송차를 마시고 나면 피곤함이 다 어디로 갔는지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오는 길엔 수련회 때 배웠던 노래를 틈틈이 익혀서 청백으로 나누어 릴레이를 시켰다. 고단한 몸이라 모두 골아 떨어져 잘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갈 때와는 달리 너무 씩씩하고 활발해져서 가끔씩 통제가 어렵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아우 대견한 녀석들, 고생은 했지만 고맙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조잘댔던지, 부모들로부터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몇 차례 맛있는 밥을 대접 받기도 했다. 그때의 엄마들과 아이들이 대학진학을 앞둔 지금도 모임을 갖고 있다. 아마 늙어서도 만나지 않을까 싶다.

6년 동안의 간부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아이 둘을 불교학교에 보내서 불자의 기본자세와 평상심, 기도법, 불교인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고 효를 근본으로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의 노력들이 너무나 흡족하다. 내가 아주 대단한 일을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랄까.

내일의 희망인 어린이 포교를 위해서 각 사찰들이 관심을 조금만 기울일 수 있다면 어린이들이 부처님과 조금은 더 가깝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어린이 불교는 바로 우리 불교의 미래이다. 무엇보다도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불교, 비록 어려운 수행이지만 쉽게 다가가 깨달음의 깊이를 알아가는 종교, 신심이 깊어질수록 신비감을 주는 그런 멋스러운 종교로 성장해 나아갈 때 우리 불교의 미래도 한층 더 밝아지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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