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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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8-09 17:55 조회3,358회 댓글0건본문
삶과 수행
기후스님
산뽕잎 나무의 색깔이 한층 더 짙어지자 이내 빨간 오디가 조롱조롱 열리고 그것들이 검게 물들어 가니 다람쥐들이 그걸 따먹는다고 분주하게 오르내린다.
어미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어린 것은 땅에서 주워 먹는다. 그러기 전에는 공양간 곁에 있는 텃밭 근처에서 분주하게 오가던 그들이 어느 날 보이지 않기에 어디로 갔는가 하고 살펴 보았더니 해우소 가는 뚝덤 위에 있는 고목 뽕나무 곁으로 일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옮겼던 것이다. 오디가 익기 전에 밥 남은 것 등등 그들이 먹을 만한 것들을 가끔 납작한 돌 위에 내어 놓으면 그 부드러운 꼬리를 살랑거리며 맛있게 요기를 하던 그네들이었다.
무릇 그 어떤 생명이건 분주하게 오가고, 날고, 기면서 소리 내며 움직이고 있는 것은 각자가 자신들의 몸을 보호하면서 생명을 부지하고 싶은 생명성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몸짓이리라. 인간의 삶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의지(意志)력을 발휘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내용적 풍요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까지 상당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다양한 내용의 경험을 축적해 오면서 사는 것이 이런가 하며 어렴풋하게나마 삶의 윤곽이 드러나는가 하다가도 생소한 새로운 문제와 부딪치는 경우나 질병 등등 전혀 예기치 못했던 그 어떤 대상이나 내용들을 만나게 될 때는 여태껏 나름대로 그려왔던 자신의 삶의 세계가 마치 추운 겨울철에 유리그릇이 깨어지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좀 더 안정되고 윤택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행복한 자신을 가꾸기 위해서 종교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늘 함께 하고 있는 삶이란 것에 대한 정체를 나름대로 분명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그것이 무슨 선물 꾸러미를 풀어서 그 내용물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물품이 아니라서 언어나 이론처럼 그렇게 쉽게 헤아려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불만스럽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런 상황들에게서 도망가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런 여러 유형들의 고통을 제공하고 있는 삶에 대한 근거와 속성들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경주하는 삶을 수행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보통명사일 뿐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 수행이 특수한 사람에게나 집단에게만 사용되는 언어로 생각하고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는 수행을 많이 한 어떤 이들이 그들의 내공을 통해서 어느 순간에 자신의 집 문제나 장래의 행, 불행들을 단번에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그런 분들이 있는가 싶어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스승은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그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기만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만 한다면 스스로의 문제 해결에도 바람직하지 못하거니와 부처님의 가르침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붓다도 우리와 똑같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양새나 그 내용에 대해서 숱한 회의를 품고 출가해서 여러 방면의 스승들에게 배웠으나 끝내는 자기 스스로 물어서 그 대답을 얻었지 않았는가?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진동이 연기라고 하는 근원적인 파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그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 인연의 이론에 대해서 여러 형태로 설명도 하고 이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확인해서 자신이 안고 있는 삶의 회오리바람에서 벗어나서 태평가를 부르려고 한다면 섣부른 이해나 얄팍한 관념의 세계에선 힘들게 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누 겁의 업습이 그 정도의 인식에서 호락호락 넘어갈 그런 뿌리가 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해서 마음을 한 군데로 모아서 그 업풍들이 함부로 나부되지 못하도록 하는 정진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의 중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며 그 흐트러진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것을 일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화엄경> 십지품에서도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냈다.’고 하듯이 삶의 중심세력도 수행의 진원지도 결국은 하나의 마음에서 파생된 생명성의 편린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원화 시킬 수 있는 딱딱한 그 어떤 물질이 아니라 이 세계를 포용하고도 남을 수 있는 텅 비었으면서도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따습게 포장되어 있는 정신력의 결정체이다. 그 위대한 것은 출가와 재가, 또는 남녀라는 등식의 좁은 울타리에서 갇혀 있길 싫어한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면 저절로 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가능하게 되면 관심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사는 과정에서 무엇이 제일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거의가 인간관계라고 하였다. 그것의 연결고리는 결국은 마음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수행이야말로 이 시대 지성인이 갈망하는 참 웰빙의 으뜸이요, 모든 이가 희망하는 행복을 찾게 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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