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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실상 일깨우는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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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2-10 17:04 조회3,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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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실상 일깨우는 게송

이광세 법사

 

『화엄경』은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신 후 깊은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낸 부사의(不思義) 경전(經典)으로 대승경전의 꽃이라 불리운다. 신라 화엄종의 개조 의상스님이 이 경(經)의 진수를 7언시 30구절 210자로 정리한 한 내용이 바로 <법성게>이다.

<법성게>는 중생들로 하여금 제법실상(諸法實相)과 우주를 꿰뚫어 보는 혜안(慧眼)을 갖추게 한다. 이른바 명(名)과 상(相)에 집착(執着)하여 헛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경책하고, 아무런 욕심 없는 텅 빈 자리의 무명진리(無名眞理)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을 일러주는 명문(名文) 게송(偈頌)이다.

글의 첫자가 법자(法字)로 시작하여 마지막도 법자(法字)로 끝나게 되는데, 이는 마음의 참 자리가 곧 법임을 널리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1. 法性圓融無理想 (법성원융무이상)

법(法)과 성품(性品)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양이 없다.

먼저 여기에서 법성(法性)과 불성(佛性)이 무슨 뜻인가를 알아야 한다. 법성이란 법의 체성이란 뜻이며, 우주(宇宙)의 모든 현상이 지니고 있는 진실불변(眞實不變)한 본성인 진여(眞如) 법성을 뜻한다. 즉, 항상 변하지 않는 법의 법다운 성(性), 제법(諸法)의 체성, 만물의 본성진여, 진상, 법계 등을 법성(法性)이라 하는 것이다.

불성(佛性)이란 심색(心色)을 말하며 진여법계(眞如法界)를 뜻한다. 두 가지 모양이 없다는 것은 마음과 물질이 둘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별 현상이 아니라 두루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법성(法性)이 원융하다는 것이다.

2.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法)은 움직임이 없어 본래(本來)부터 고요하다.

대자연(大自然)은 겉으로 봐서는 고요해 보이지만 실상(實相)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쉼없이 흐르는 가운데 고요해 보이는 강물의 모습이 바로 모든 사물의 진리(眞理)이다. 삼라만상 모든 현상은 생멸(生滅)의 변화와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제법은 부동하지만 본래는 이와 같이 상주불멸(常主不滅)하고 여여적적(如如寂寂)한 그 자체이다.

3.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서 온갖 경계가 끊겼다.

모든 것이 끊어진 실상(實相)의 자리를 말한다. 곧 인간(人間)의 탐욕으로 생긴 모든 것을 다 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명예와 탐심 때문에 다투고 있는데 이것은 진리(眞理)가 아니다. 또, 현상적으로 말할 수도 없으니 일체의 사념(思念)과 사의(思議)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아가 현상을 초월한 것을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도 없으니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다. 따라서 법성(法性)이란 어떤 생각과 의미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4.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깨달은 지혜만이 알 뿐, 이 외에 다른 경지로는 알 수가 없다.

완성된 부처의 경지라야 아는 것이지 알음알이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5.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참된 성품이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다.

진실(眞實)이라고 생각할 때는 또다른 환상이고, 가상이라고 생각할 때는 또하나의 실상(實相)이다. 때문에 본질(本質)이니 현상이니 하는 것도 부정(否定)되며, 진실과 가상 역시도 부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임과 동시에 환상이고, 진실임과 동시에 가상이기 때문에 매우 미묘하다.

6.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자기성품(自己性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

모든 실상(實相)의 존재(存在) 유무나 생멸(生滅)은 존재 그 자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상호상관한다는 연기(緣起)의 법칙(法則)으로 이루어진다. 자성(自性)을 갖추지 않았으니 모든 현상이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작년에 핀 꽃은 금년에도 피지만 중생은 인연과 업(業)에 따라 그 이름과 모습을 바꾼다. 이처럼 자아(自我)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에 꾸준한 수행(修行)을 통해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7.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일체 가운데 하나가 있다.

하나라고 하는 개체 가운데 모든 우주(宇宙)의 원리가 들어 있고, 그 무수한 원리(原理) 역시 하나로 결집되어 있다. 연기법의 근본원리는 하나하나의 이것과 저것은 그 자체로 존립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낱낱의 ‘나’ 모두는 우주만큼이나 큰 생명(生命)들이 한데 겹쳐진 생명의 우주이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중중무진’이라고 한다. 형상 있는 것(有形)의 최대(最大)는 천지(天地)이고, 형상 없는 것(無形)의 최대는 허공(虛空)이며, 이보다 더 큰 것이 심법계(心法界)이니 이는 곧 인식(認識)의 주체(主體)가 마음이란 것이다.

8.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곧 일체(一切)이고 일체가 곧 하나이다.

하나 그 자체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 그 자체가 하나이다. 하나가 곧 많은 것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다. 이것과 저것은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장(場)에 함께 있다.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수많은 관계도 이와 같다. 그 낱낱의 우주법계를 이루는 원인(原因)이 낱낱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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