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 실천, 불국토 만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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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11-03 14:28 조회3,420회 댓글0건본문
임완숙_시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
비바람이 심한 늦은 밤이었다. 필라델피아 변두리 한 작은 모텔에 허름한 여행가방을 든 노부부(老夫婦)가 찾아들었다. 마침 인근 도시의 행사와 주말이 겹친 날이어서 객실은 터질 듯이 만원이었다.
“미안합니다. 손님. 빈 방이 없습니다.”
노부부는 어깨가 축 처져서 비바람이 요란한 추운 유리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당혹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빛이 역력했다.
“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다른 숙박업소를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젊은 종업원은 친절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빈방은 없었다. 실망한 노부부가 현관문을 밀고 나가려는 순간 종업원의 목소리가 다급히 그들을 돌려 세웠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주무실 데가 한 군데 있긴 합니다만….”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종업원이 웃으며 말했다.
“ 비록 누추하지만 제가 쓰는 작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오늘밤 프론트 담당이니 방에 들어가 잘 일이 없으니까요.”
종업원은 모텔의 뒤편에 위치한 벽난로가 있는 아담한 작은 방으로 노부부를 안내했다. 종업원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노부부의 잠자리를 보살펴 주었다.
이튿날 아침, 맑게 갠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밝은 얼굴로 노부부는 간밤의 젊은 종업원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내 평생 여행지에서 어젯밤처럼 편안한 잠자리는 처음이었소. 정말 고맙소. 내 결코 당신의 친절을 잊지 않으리다.”
그로부터 2년 후 모텔의 그 젊은 종업원은 뉴욕으로부터 온 한 통의 낯선 편지를 받았다. 놀랍게도 편지 속에는 젊은이의 친절을 잊지 못한 노부부의 초대장과 뉴욕행 비행기 표가 들어 있었다. 편지에 적힌 주소로 노부부를 찾아간 젊은이를 그들은 두 손을 덥석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시골의 작은 모텔의 종업원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오. 그래서 당신을 생각하며 호텔을 하나 지었으니 이 호텔의 총 지배인이 되어 당신 마음대로 운영해 주시오. 부디 우리 부부의 제안을 거절하지 말아주오.”
노부부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궁전 같은 아름다운 호텔로 그를 데려갔다. 눈앞에 나타난 호텔을 보자 그는 그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당신이라면 이 호텔을 세계 최고의 호텔로 만들 거라 믿소.”
호텔의 총 지배인이 된 그는 하루 서너 시간씩 밖에 자지 않으며 전력투구(全力投球) 성실하게 일했다. 그 결과 이 호텔은 중요한 국제회의나 정상회담이 열리면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머무는 초특급 호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Waldolf Astoria Hotel), 맨하탄의 중심 뉴욕 5번가에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호텔이다.
이 이야기는 1897년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세운 윌리암 월도프 아스토(Wiliam Waidolf Asto)와 아스토리아 호텔의 초대 지배인으로서 ‘호텔의 왕’이라 일컫는 죠지 볼트(George C Boldt)에 얽힌 아름다운 실화(實話)이다.
나는 우리 불교 수행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에 대해 논(論)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즐겨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현대를 살면서 우리의 삶에 육바라밀이 어떻게 적용되고 또 일상생활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바람 부는 한밤중에 자기의 안락한 공간을 낯선 노부부에게 내주는 행위는 보시바라밀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종업원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은 지계바라밀,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호텔 경영에 몰두하는 모습은 인욕과 정진바라밀, 그리고 오로지 최고의 호텔을 만들겠다는 일념(一念)은 선정바라밀이요, 지혜로운 생각과 판단으로 일을 도모함은 반야바라밀의 실천과 같다. 그리고 아스토리아 호텔을 세계최고의 호텔로 올려놓고 ‘호텔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마침내 화두를 타파하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열반의 경지에 나아간 것과 다름 아니다. 훗날 로렌스 강의 천 섬(Thousand Island)에 볼트 성(Boldts Castle)을 지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고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다운 회향(回向)까지 잘 마무리 한 일생이라 하겠다.
흔히 열반에 이르는 육바라밀의 수행을 우리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관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불교를 교설(敎說),즉 문자 속에 가두어 놓고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유일하게 적나라한 우리의 삶 그 자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종교인데도 말이다.
삼계(三界)의 스승이신 부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일을 항상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법 수행의 지름길이다. 어린이는 잘 뛰놀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자는 연구실에서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농부는 밭에서 직장인은 일터에서 힘써 일하는 그것이 수행이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 곳에서 복덕은 쌓이고 지혜가 열리며 자비는 일어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임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유촉하셨던 것이다.
“생(生)한 것은 반드시 멸(滅)하는 법이니 방일(放逸)하지 말라. 불방일(不放逸)로써 나는 정각에 이르렀으며 무량한 선(善)을 낳은 것도 불방일(不放逸)이니라.”-대품반야 卷1-
열반은 분명 우리 불자들에게 있어 궁극적으로 증득해야 할 최고의 경지이다. 모든 악(惡)이 멸하면 일체는 선(善)이 되고 모든 사(邪)가 파하면 일체는 정(正)이 되는 까닭이다. 무상(無常)하고 괴롭고(苦) 무아(無我)였던 일체는 곧바로 상(常) 낙(樂) 아(我)의 일체로 전환하며 대자비가 일어나는 세계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육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첫째로 하루에 두 번, 아침에 일어나서 10분,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10분 동안 자신을 돌아보며 겸허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 언제나 정직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자. 자기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잘 갈고 닦아서 100퍼센트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의 빛이 되도록 하자.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남을 도우려 노력하자. 일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수입과 시간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회향하도록 하자. 그리하여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되도록 내 이웃에게 불법 전하기와 불법외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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