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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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11-03 14:25 조회3,140회 댓글0건본문
김종환_자유기고가
개신교 장로대통령의 정부가 들어서기 무섭게, 곳곳에서 공직자들의 종교차별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혜월스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자비보살 혜월 스님은 논을 만들고 밭을 일구는 일에 매우 열심이어서 ‘개간 선사’로 불리었다고 한다. 한번은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를 팔아서 그 돈을 몽땅 들여 산비탈에 천수답 겨우 세 마지기를 개간하고도 아주 흡족해하자, 제자가 보다 못해 그 손해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혜월스님의 계산법은 달랐다. 매매행위의 결과로 주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문전옥답 다섯 마지기가 어디 다른 데로 가버렸거나 없어진 것도 아닌데다가, 논 판 돈은 품삯으로 지불되어 일꾼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었고 게다가 산비탈에는 새로운 논이 세 마지기나 따로 생겼지 않은가! 이익도 이만저만한 이익이 아닌데 그게 어째서 손해란 말인가?
테두리를 치지 않고 생각하는 보살행자의 계산법과 좁은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는 범부들의 계산법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보살행자는 모든 것에 차별을 두지 않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마음 즉 평등심으로 일체중생을 넉넉히 품어 안을 뿐 사사롭게 이익을 도모하는 법이 없지만, 범부들은 언제나 ‘나’라는 허상의 이익을 위해 그때그때 적절히, 이를테면 지연이나 학연, 이념 혹은 종교연 등의 테두리를 치고 그 테두리 밖의 타자들에 대해서 차별심을 일으키고 배척한다. 테두리와 테두리가 얽히고 설켜 서로 부딪치는 세상은 그래서 늘 크고 작은 갈등과 이익다툼으로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권력이란 어느 면에서 그런 갈등과 다툼을 예방하고 조정하기 위해 부여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권(權)자는 원래 ‘대저울로 잰다’는 뜻인데, 저울같이 공평하게 균형을 잘 잡아야 권위(權威)를 세울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권도(權道)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요는 권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평무사함을 그 바탕으로 삼아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직자들의 불편부당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질 않은가.
만약 어느 공직자가 불편부당의 의무를 저버리고 종교편향적인 행태를 보인다면, 그것은 물론 법 규정을 어긴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법 이전에 그가 만약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할 것이다. 그런 공평치 못한 마음으로 참된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런 차별심을 가지고 천국이 자신의 것이 되기를 소망할 수 있을 것인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복이나 천국은커녕, 그런 공평치 못한 차별심을 헤집고 귀신만 스며들 뿐이다.
귀신은 무슨…, 하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결코 코웃음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들
(유태교,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등) 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피비린내 진동하는 저 수많은 종교폭력을 유발한 광기. 도대체 그 광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구약성서는, 문자 그대로 가감 없이 읽는다면, 소위 이교도들을 죽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할 것을 요구까지 하는 극단적인 차별적 배타성을 띠고 있다. 그 극단적 차별심이 어찌 살인귀를 불러들이지 않겠는가.
불교의 역사엔 그런 대규모 종교적 학살 행위가 없다. 그건 무엇보다도 불교의 포용성과 상호존중의 정신이라는 미덕 때문일 것이다. ‘나’라는 고정불변의 궁극적 실체가 없다는 무아법, 모든 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연기법, 너와 나는 똑 같이 부처가 될 가능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라는 불성사상,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려는 자비정신…. 게다가 방편의 융통성은 서로 상충되는 것들조차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들 중 어느 가르침에도 나를 내세우고 상대를 배척하려는 우월적 차별심 따위는 없다. 물론 크든 작든 테두리 따위도 없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성공을 원한다면, 부디 공평무사하되 차별심으로 테두리를 치는 일은 그만두길 간절히 바란다. 만에 하나 정권이 실패로 끝나기라도 한다면 그로 인해 고단해질 백성들의 삶이 너무 가슴 아프질 않겠는가. 공평한 일처리로 꼭 성공한 정권이 되길 간절히 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성실히 실천하면서도 언제나 ‘네 이웃’에 테두리를 쳐서 종교차별하는 공직자분들. 부디 ‘네 이웃’에 쳐진 ‘같은 신앙을 가진 이웃’이라는 테두리를 지우고 대신 ‘네 이웃’을 일체중생으로까지 넓히길 간절히 바란다. 차별로 인해 빚어지는 반목과 다툼으로 지새우기엔 우리네 삶이라는 게 너무 짧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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