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따라 극락과 지옥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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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11-03 14:17 조회3,438회 댓글0건본문
- 명정스님의 ‘차 이야기 선 이야기’-
예전에 꿈을 해몽해 주고 살아가는 이가 있었다. 나라 임금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생각하기를 ‘꿈이란 허망한 것인데 그것을 해몽해 주고 살아간다니 이것은 반드시 사람을 속이고 돈을 받는 짓일 것이다. 벌을 주어야겠구나.’하고서는 그 해몽하는 이를 불러들였다.
임금이 억지를 써서 하는 말이,
“짐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궐 용마루의 기왓장이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더라. 이것이 무슨 조짐이냐?”
“예, 임금님. 그것은 궁중에서 내일 정오가 되기 전에 어느 한 사람이 죽을 조짐입니다.”
“저 놈을 당장 옥에 가두거라.”
임금은 꿈도 꾸지 않고서 그런 황당무계한 얘기를 꾸며댔는데 그것을 해몽하였으니, 엉터리 수작임이 증명되었으므로 하루를 지내보고 요사스럽다는 죄목을 씌워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런데 막상 한나절이 지나자 갑자기 궁녀들끼리 싸움을 하더니 궁녀 하나가 죽었다. 임금은 꾸지도 않은 꿈을 지어서 이야기를 하였을 뿐인데 해몽한 사실대로 사람이 죽었으니 하도 이상해서 그 해몽하는 이를 불러다가 물었다.
“네가 꿈을 해몽해 주고 살아간다기에 짐이 생각해보니, 꿈이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인데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여 너를 죽이려고 일부러 꾸지도 않은 꿈을 꾼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네가 해몽한 것과 같이 사람이 죽었으니 어찌 된 일이냐?”
“예, 임금님. 실은 꿈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면서 꾸는 것만 꿈이 아니라 대낮에 눈을 뜨고서도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이 곧 꿈이라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은 꿈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평소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마음에 따라 거지도 되고 왕자도 되며, 생각에 따라 지옥과 천국이 판이하게 벌어진다.
희망에 부풀어 밝게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살아가며 생각하는 발상부터 무언가 다르고 차이가 난다. 아무리 역경에 처해 있더라도 겨울이 지나면 봄이 멀지 않듯이 참고 견디어 밝은 희망의 태양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머지않아 축복이 오리라는 신념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하루종일 퍼붓는 소나기는 없는 법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느끼고 시련을 겪는 가운데 배운다. 돌이켜보면 아프고 아쉬운 부분도 있고, 생각에 잠겨 볼 일도 있는데 삶이라는 이름의 전차, 손쉽게 끌고 다닐 수 있는 간단한 게 아닌 것이다.
먼저 신념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이 신념은 행선지요, 표지판이요, 노선이다. 만약에 행선지가 없는 차라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아니 얼마나 무모하게 헤매겠는가. 그래서 이 신념이란 진리의 이상향으로 향해서 가는 원동력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떤 기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가슴에는 무엇을 하나 가득히 품고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다음 두 사람의 시구에서도 알 수 있다. 두 분 다 이 글을 짓고 나서 십년독상(十年獨相), 즉 영의정을 지냈다 한다.
만수번음앵세계(萬樹繁陰鸚世界)
일강소우로평생(一江疎雨鷺平生)
우거진 숲 속 앵무새 세계요
추적추적 비 내리는 강은 해오라기 평생일세.
얼마나 화평하고 평화로운 글인가.
상풍고목응우수(想風古木鷹羽垂)
설월공산호양정(雪月空山虎養精)
서리바람 고목에 매가 깃을 드리우고
설월 공산에 범이 정기를 기르네.
마음가짐에 대한 좋은 선게가 있다.
면상무진공양구(面上無嗔供養具)
구리무진토묘향(口裡無嗔吐妙香)
심내무진시진보(心內無嗔是珍寶)
무구무염즉진상(無垢無染卽眞常)
성 안 내는 환한 모습 더 없는 진수성찬
따뜻하고 다정한 말 오묘한 향기라오
원만한 마음가짐 무한한 보배이며
해맑아 때 안 낌이 영원한 참됨일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밝은 모습으로 고운 말 바른 말로 주변 사람을 대하며 또한 마음 속으로도 원만한 생각을 지닌다면 거기가 바로 극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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