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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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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2-10 17:14 조회3,1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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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끼의 노래

손수자_동화작가

 

세상 모두가 인연에서 비롯된다면 ‘축서사’의 원고 청탁도 어떤 연이 닿았음이 분명합니다. 몇 해 전 누군가에 의해 나의 손에 들어온 계간 ‘축서사’ 첫 장을 펼쳤을 때였습니다.

‘나는 축서사 동쪽 계곡에 사는 물이끼입니다’로 시작되는 글귀와 초록물이끼 사진 한 장이 내 가슴에 콕 박혀 자꾸만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때맞추어 원고청탁도 있어 나는 그 첫 글귀로 자판을 두드려 동화 ‘축석사 물이끼’가 태어났습니다.

虛明自照하여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不怒心力이라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마음은 거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거울에 묻은 때와 먼지를 없애고 깨끗이 닦으면 거울 앞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물체가 비춰집니다. 우리 마음도 고요해져서 맑고 밝아지면 모든 사물은 스스로 환히 비출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보고, 저절로 알고, 저절로 비출 수 있습니다.

내가 물이끼가 되어 무여 큰스님의 신심명(信心銘)을 동화로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 번도 축서사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전생에 나는 축서사 물이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축서사 동쪽 계곡에 있는 물이끼가 되어 나는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축서사 동쪽 계곡, 물이끼가 있는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납니다. 그 소년은 생김새와 달리 무척 고민이 많아 보입니다. 안타까워 마음만 동동거리던 물이끼는 어느 날 소년이 있는 계곡에 나타난 노스님과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생활이 어려워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 소년을 축서사에 맡기고 떠나버린 어머니를 원망하며 중이 되기 싫다고 외치는 소년 설봉에게 노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스님, 저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아버지와 엄마까지 날 버린 걸요.”

“네 마음은 지금 흙탕물과 같단다. 마음이란 말이다. 거울에 비유할 수 있어. 거울에 묻은 때나 먼지를 없애고 깨끗이 닦으면 크고 작은 모든 물체를 비추게 되듯이 우리 마음도 고요해지고 맑고 밝아지면 모든 사물을 환히 볼 수 있단다.”

노스님은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잠시 올려다 본 후 말을 이었어.

“억지로 믿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마. 저절로 보고, 저절로 알고, 저절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하지만 설봉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

결국 스님의 말씀을 듣고 축서사 계곡에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한 설봉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마음을 보이게 됩니다. 물이끼는 합장한 채 저절로 보고 알고 느끼도록 설봉이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물이끼의 눈에 비친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난 그 때 느꼈어.

어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설봉이 머리는 노스님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 있을 지도 몰라. 난 여기서 그런 풍경을 여럿 보았거든.

“억지로 믿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마. 저절로 보고, 저절로 알고, 저절로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콸콸 흐르는 물소리 속에 노스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어.

조금씩 빗줄기가 약해질 때, 설봉이가 맑은 얼굴을 하고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았지. 난 두 손을 합장한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어.

설봉이가 훤한 그의 얼굴처럼 환한 마음으로 다시 찾을 때까지 가슴 앞에 모은 이 두 손을 풀지 않은 채로 기다리기로 했어.

나는 축서사 동쪽 계곡에 사는 푸른 물이끼란다. 겨울에도 늘 푸른 물이끼 말이야.

나는 교사이고 작가이며 또 불자입니다. 그러기에 늘 마음이 깨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실은 인생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잘 사는 아이, 가난한 아이,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린 아이, 아버지가 없는 아이, 할머니가 맡아서 기르는 아이, 그들은 상처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유심히 보면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들로 자신을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늘 싸움을 걸기도 합니다. 또는 지각을 하거나 고집을 부리며 교실 분위기를 흩뜨려놓습니다. 그런 아이들 속에서의 가르침이란 무척 힘이 듭니다. 한 순간이라도 마음의 거울을 닦지 않으면 늘 흙탕물처럼 흐려져 버립니다. 또 저마다 환경이 다른 아이들은 서로 애를 먹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그들만이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착한 아이만 예뻐하고 미운 아이는 내쳤습니다.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조용히 해라, 공부해라, 어쩜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말을 더 많이 썼습니다.

좀 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대하며 다가갈 수 있도록 늘 두 손 모으지만 마음과 달리 거울 속은 먼지가 금방 앉았습니다.

내일은 잘 하리라, 더 사랑하리라, 더 좋은 말만 해주리라, 다짐하건만 못난 행동만 보면 선생님이란 미명 아래 화를 내고 미움을 만들어 뾰족하게 내 마음은 물론 아이들의 마음까지 찌르곤 했습니다.

마음 닦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 나는 소년 설봉이를 앞세워 제일 먼저 나 자신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거울을 반짝 반짝 닦아 윤이 나도록 하고 싶지만 부족한 중생은 마음뿐입니다.

부처님 앞에 서면 늘 배고프고 모자랍니다.

새해에는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보고, 저절로 알며, 저절로 비출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늘 닦는 그런 나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맑은 소리로 맑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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