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 무상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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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8-22 16:25 조회3,728회 댓글0건본문
지상강론-법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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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 무상의 삶
이광세 법사
16. 生死涅槃常共和(생사열반상공화)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한다.
열반에 머무를 때는 죽고 사는 생사(生死)에 노닐고 생사(生死)에 머무를 때는 늘 열반에 노닌다. 생사 그 자체도 연기 관계로 생사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는 중도 연기실상으로 여래법신(如來法身)이며 화엄의 세계이며 비로자나불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꽃이 씨앗으로 남기 위해 꽃의 모습을 감추듯 씨앗이 스스로를 비우면서 꽃이 되는 이치와 같다.
어느 것이든 그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비워내고 있는 생성과 소멸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전체로서 하나 된 중도의 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생사와 열반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같다고 한 용수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생사의 끊임없는 변화 곧 무상을 깨달아 사는 것이야말로 바른 지혜이며 모든 불만족을 벗어나는 길이다.
17. 理事冥然無分別(이사명연무분별)
이와 사가 하나 되어 분별이 없으니
진리와 현상은 은은하여 분별이 없으니 연기실상법에서 보면 이(理)와 사(事)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事)는 그대로가 연기실상의 이(理)이기 때문이다. 인연의 비움이 이(理)이며 비움이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사(事)이므로 비움은 모습을 갖지 않은 것 같으나 모습을 통해서 비움이 드러나고 비움을 통해서 모습이 살아나니 비움과 나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양면일 뿐이다.
앞서 생사와 열반이 한 치의 틈도 없다고 한 것처럼 스스로를 비워내는 이야말로 스스로를 나투게 하는 힘이며 스스로를 나투는 모습이야말로 비움을 값지게 한다. 비움의 이도 나툼의 사도 한 쪽만으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고, 따라서 비움과 나툼은 매 순간 함께 하면서 법계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18. 十佛普賢大人境(십불보현대인경)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과 큰사람의 경지이네.
열 분의 부처님의 내밀한 성취와 이를 표상하는 보현보살에 속한 지혜 덕상의 부처님 세계가 보리심이며 대원력이다. 십불(十佛)은 보리심을 말하고 보현보살은 대원력(大願力)을 말하며 이 보리심과 대원력을 말로 나타내자니 큰 사람의 경지라 하고 있다.
부처란 존재로서 무엇이 아니라 인연처에서 제 모습을 그 자체로 보고 있는 깨어있는 활동이다. 부처님과 보살과 큰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마음의 활동이 온 생명의 법계를 드러내면서 부처님이 되어 있기에 법계가 따로 있고 중생의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마음마다 법계가 되어야 깨달은 삶이라 할 수 있다.
19. 能仁海印三昧中(능인해인삼매중)
부처님께서 해인삼매 가운데서
능인이란 비로자나 부처님이며 우리의 마음이다. 능인이 해인삼매이며 해인삼매가 능인이다. 능인과 해인삼매는 수행자가 행의 지멸을 완성하여 하나된 세계로 있는 것을 나타내며 이것을 중(中)으로 나타내고 있다.
법계는 잘 사는 것만을 어짐(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어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은 깨달은 마음(能仁)을 근본으로 하는 데서 발생하는 부처님의 빛이며 어울림에서 제 모습으로 빛나는 해인삼매이다.
따라서 잘 살고 잘 죽는 생사를 떠나서는 부처님 모습을 찾을 수도 없고 삼매도 있을 수 없으니 생사를 떠나서 부처님을 찾고 삼매를 구한다면 이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20. 繁出如意不思議(번출여의부사의)
뜻대로 부사의함을 나타내시고
삶의 내용을 생각 없이 그저 지켜보거나 매이지 않는 생각으로 생각의 너머를 보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이러한 중에 번개처럼 일어나는 통찰이 그대로 삶의 전체가 된다. 생각을 떠났으면서도 생각 그대로 절단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생각을 넘어서는 부사의한 생각이고 부사의한 부처님의 활동이 된다.
21. 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배 비가 허공에 가득하니
살아가는 모든 곳이 서로에게 베푸는 덕으로 가득하니 허공은 그저 허공이 아니라 생명이 베푸는 덕으로 가득한 곳이다. 텅 빈 듯 보이지만 덕으로 가득 차 있는 법계의 빈 모습이 인연 따라 제 모습을 이루는 것이 생명의 실상이니 생명의 인연은 모습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제 모습만을 생명으로 보게 되면 고립된 삶이 되고 스스로를 작게 만들며 이웃도 아픔으로 버려두게 된다.
하지만, 생각 너머까지 작용하는 허공 가득한 덕을 알게 되면 부사의한 곳에서 일어나는 생명나눔을 이해하게 되고 뭇 생명의 바람 없는 나눔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에게 두려움 없는 나눔을 펴는 것이 보살의 행이며 그 자체로 생명의 본질을 실천하는 길이고 보배로운 비가 되어 우주의 생명을 드러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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