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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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4-28 15:42 조회3,116회 댓글0건본문
참된 수행법
참선했는데도 깨닫지 못하면 다른 방편을 써도 됩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평생 동안 참선을 했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떤 과보가 있어서입니까?”
나는 말했다.
“콩을 심은 곳에서 삼이나 보리가 나는 법이 없고, 풀뿌리에서는 소나무나 대춘(大春)나무가 돋아나지 않습니다. 참선은 효과가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공부라고는 하지만, 참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오히려 참구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영명스님이 ‘참선해도 깨닫지 못하고 배워서도 성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저 듣기만 해도 영원히 도의 종자가 된다. 그러면 어느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생생토록 사람 몸을 잃지 않는다. 그러다 깨달음이 터지기만 하면, 한 가지를 들어서 천 가지를 깨달을 것이다’고 한 것은 모두 진실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속담에는 ‘한 조각의 착한 일을 잠시만 닦아도 많은 이익을 얻는다’ 했고, 부처님 말씀에는 ‘다섯 번만 부처님 명호를 불러도 무수한 보물로 보시한 복보다 훌륭하도다’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헛된 말들이겠습니까? 최초에 발심한 동기는 생사대사의 해결 때문이었는데 수십 년씩 참선을 해서 설사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따로 방편을 구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모든 허망한 생각을 끊고 부지런히 수행하십시오. 그리고는 참구하는 화두만을 향하여 꿋꿋하게 정진하여 살아도 화두와 같이 살고 죽어도 화두와 같이 죽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확실히 깨닫지 못했다면 절대로 쉬지 마십시오. 이런 각오만 있다면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세의 중생이 한 순간만이라도 불퇴전할 생각을 하면, 그것이 바로 정각(正覺)이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은 참으로 극진하다 하겠습니다.
요즈음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이와는 반대입니다. 처음 발심을 해도, 그 발심이 온당하질 못합니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 처해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날까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가는 참된 주인공을 찾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가 버립니다. 이 때문에 이리저리 생각생각 하여 생사대사를 신속히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구 치닫는 생각이 오히려 깨달음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생사대사를 깨닫겠다는 바른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허망한 생각이 스스로를 가려 버리고 맙니다. 그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어 생사대사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 생각을 바꾸게 되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부류는 잘난 체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총명함을 여전히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스승과 벗이 그의 잘못된 깨달음을 꾸짖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오직 입으로만 깨달으려 하므로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알음알이에 빠져 들어갈 뿐입니다. 사이비 반야로 육식(六識) 속에서만 허우적거리면서 스스로 확실히 깨달았다고 말하며,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저 입으로 지껄이고 귀로 듣는 것만 복잡하게 많아질 뿐입니다. 교화의 방편이 쇠퇴하자 이런 잘못에 빠지지 않는 자가 드뭅니다.
둘째 부류는 총명하지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매양 스승에게만 의지하는데, 잘 안되면 참선은 효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공부가 아니어서 전혀 영험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10년 20년을 계속해도 확실한 효과가 없는 것만 한탄스러워 하며 갑자기 여태껏 해오던 수행법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염불을 가장 빠른 수행법이라고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염주만 세면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혹은 ‘일대시교(一代時敎)는 부처님 입으로 선양한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참선을 했어도 깨닫질 못했으니 비록 참선하는 것만은 못하다 해도 경전을 연구하는 것이 그래도 선인(善因)을 심는 것이다’하며, 경전을 읽는 것이 헛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사람 만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은 숨어서 더러운 얼굴로 육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혹은 비밀스런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혹은 죄와 허물들을 참회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바른 믿음을 어기고, 이단에 깊이 빠진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원래 믿음은 없었는데, 어쩌다 인연(因緣)이 닿아 발심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잠시도 좌선을 하지 않고 8식(八識)을 기반으로 해서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집니다. 화두도 깨닫지 못하고 수없는 생각을 때도 없이 일으킵니다. 이들은 채 3~4년도 참선을 계속하지 못하면서도, 경솔하게 참선으로는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이들은 할 일 없이 생각마다 육진(六塵)에 헤매고 마음은 몹시 산란합니다. 죽음의 문을 향해 가면서도 반성할 줄을 모릅니다.
총림의 기풍이 시들어가고 조사의 도가 희미해진 때에 참선하는 수행자가 끝내 물러서지 않겠다는 철석같은 몸과 마음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오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것입니다. 참선을 하여 신심을 내는 것은 천생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것이고, 백세에 한 번 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한 순간에 진실한 해탈을 얻으려 하지 않으면 한 생각 굴리는 사이에 번뇌의 구름이 수만 리나 덮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반야의 씨앗이 다시 마음에 들어가길 바라지만, 이것은 마치 썩은 곡식에서 싹이 움트길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선림고경총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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